박숲 작가

<삽화=조민성 화백>
<삽화=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2장 레트로가든(1)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햇빛이 날카롭게 눈을 찔러댔다. 기타 소리를 쫓아 주변을 돌았다. 모텔 건물 뒤로 나 있는 찻길로 갔다. 왕복 이 차선 도로인 좁은 찻길이었다. 50미터 정도 걷다 보니 바로 옆에서 기타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같은 코드를 지겹도록 반복하고 있었다. 초보인가. 바레 코드를 연습하는 걸 보면 생초보는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상대는 집요한 성격인 것만은 분명했다. 줄을 긁어대는 소음과 두 개의 코드를 오가며 쉼 없이 반복하는 짓은 정말이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없었다. 코드를 정정해주지 않으면 죽기도 전에 돌아버릴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저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인간의 면상에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 흥분이 고조된 나는 뛰다시피 걸음을 옮겼다.

기타 소리가 나는 쪽을 따라가자 정체불명의 이상한 집이 나타났다. 전용 주거용의 집을 다른 용도로 개조한 형태였다. 벽을 허물어 경계를 없앤 마당에는 낡은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발 디딜 틈 없이 쌓인 물건들은 마당도 모자라 인도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물건이 쌓인 마당 곳곳에 기다란 쇠막대기가 수없이 박혀 있고 쇠막대기 꼭대기마다 색색의 플라스틱 바람개비가 꽂혀 있었다. 바람개비들이 바람에 빙글빙글 돌아갔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다. 발 디딜 틈 없이 쌓인 물건들은 두서없이 쌓여 있지만 고물상처럼 망가지거나 지저분한 물건들이 아닌 빈티지스러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도착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꽤 그럴싸했다. 하지만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려야 했다. 기타 소리를 쫓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발에 뭔가 걸려 넘어질 뻔했다. 거꾸로 세워놓은 벽시계였다. 나는 시계를 원래 상태로 똑바로 세웠다. 시곗바늘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바늘이 거꾸로 돌고 있었다. 게다가 초바늘이 보통의 초바늘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였다. 거꾸로 가는 시계라니, 기분이 묘했다. 시침과 분침은 숫자 12에 겹쳐 있었다. 정오를 가리키는지 자정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지만 초침은 엄청난 속도로 돌았다. 초침이 숨 가쁘게 도는 동안 시침과 분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나는 혼자 멈춰 있는데 나와 상관없이 주변 세계는 바삐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하루에 두 번 12시가 되면 이 세계를 돌고 있는 공기가 전혀 다른 공기로 바뀌고, 쇠를 긁는 듯한 저 기타 소리와 함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되는 건 아닐까, 엉뚱한 상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기타 소리가 다시 귀를 할퀴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든 물건들은 먼 과거에서 온 것처럼 하나같이 낡고 오래된 것들 천지였다. 복잡한 물건들을 헤치며 안쪽으로 걸었다. 기타를 긁어대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마치 못으로 쇠를 긁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어후 진짜 그만 좀 하라구요!”

안쪽 의자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다. 나는 벽 쪽에 세워진 고가구를 탕탕 두드리며 저기요, 하고 소리쳤다. 노인은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여전히 기타 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저 정도면 집착증에 가까운 거 아닌가. 나는 통로를 가로질렀다. 안쪽에는 여러 종류의 도자기와 옹기 종류가 두서없이 섞여 있었다. 서예 붓이 수북했고 청동 테두리의 손거울이나 옛날 머리빗도 보였다. 한쪽에는 LP 음반과 카세트 테잎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음반을 보자 잠깐 가슴이 설레었다. 마치 보물창고에 온 것 같았다.

노인은 무아지경에 빠진 기타리스트 폼이었다. 드드득, 띠리릭 끽끽끼기익.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팔뚝엔 소름이 올라왔고 신경이 거세게 화를 부추겼다.

“그만 좀 하라고요! 주변 사람 생각 안 합니까?”

노인은 여전히 꼼짝하지 않고 기타에만 집중했다.

“여보세요, 안 들리세요? 줄을 그렇게 마구 다루다니! 진짜 너무하시네.”

나는 노인의 품에서 기타를 거칠게 빼앗았다. 노인은 어어, 소리를 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한 표정이었다.

조율이라도 하고 치시든가요, 나는 투덜거리며 줄을 튕겼다. 의외로 깊고 중후한 울림이 손가락 끝으로 전해졌다.

“줄을 함부로 다루면 금방 끊어지는 거 모르세요?”

“……!”

너무 오랜만에 기타를 만져서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을 감고 1번 줄을 튕겼다. 줄이 약간 늘어난 느낌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어 이상한데, 나는 간단한 시연을 해보았다. 기타의 진동의 울림은 묵직하고 고급스러웠다. 노인이 벌떡 일어나 기타를 빼앗았다.

노인은 당혹감과 불쾌감이 뒤섞인 듯 이마와 눈 주변의 주름을 심하게 일그러뜨린 채 나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짓이야!”

“적당히 하셨어야죠, 기타를 함부로 긁어대는 소리가 얼마나 괴로운지 모르세요?”

“참견 마!”

“소리 땜에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잖아요.”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갑자기 나타나서 호들갑이야?”

“죽으려고요! 자살요! 왜요!”

“죽어? 자살? 허허, 방해해서 미안하네 그려.”

“미안하면 답니까? 기분 나쁘게 왜 그렇게 웃으세요?”

“방해 안 할 테니 가서 하던 일이나 마저 하지 그래.”

노인은 한쪽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쯔읏 소리를 냈다. 그러고선 다시 기타줄을 끼기기긱, 드득드득 긁어내리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그거, 화투장 아녜요? 하 그러니까 소리가 그 모양이죠. 기타에 대한 예의라곤 없는 분이시네.”

노인은 벌떡 일어나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비로소 기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순간 나는 반으로 쩍 갈라진 수박처럼 머리에 강한 충격이 왔다.

“어엇, 그 기타, 루, 루시퍼……!”

 

*

오래전 감쪽같이 사라졌던 기타를 우연히 만난다는 게 말이 될까. 살면서 누구나 한두 번쯤 겪게 되는 이상한 경험이 내게도 찾아왔다. 나는 너무도 놀라 정신이 얼얼했다. 뭔가에 홀린 듯 나도 모르게 노인의 품에서 기타를 빼앗았다. 노인이 소리를 지른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인은 얼굴을 붉히며 당장 나가라고 나를 떠밀었다. 마치 강도라도 마주한 듯한 표정이었는데 몹시 당황스러웠다. 신이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난데없이 나타난 문제의 기타 앞에서 나는 쩔쩔맸다. 결코 만나서는 안 될 저주의 물건과 마주친 것처럼 등골이 오싹했다. 기타를 중심으로 나와 노인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노인에게 떠밀렸지만 나는 기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둠 저 깊은 곳에서부터 희미한 빛이 서서히 다가왔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앞에서 혼란과 갈등에 빠진 기분이었다. 확인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과 그럼에도 꼭 확인해보고 싶은 두 감정이 목을 조여 왔다. 순간 사운드 홀 하단에 나뭇잎 스티커 자국이 눈에 띄었다. 왕관처럼 헤드머신을 한쪽으로 이어놓은 것도 그렇고, 여신의 몸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바디의 곡선, 나뭇가지에 매달린 여러 개의 나뭇잎으로 만든 사운드 홀. 내 입에선 호흡이 엉켰다.

“저, 저기요, 자, 잠깐만, 기타 좀 볼게요. 잠깐이면 돼요.”

“이건 안 팔아, 그만 얼쩡거리고 가 봐!”

“그냥 보기만 한다니까요.”

“안 판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구나!”

노인은 기타를 안은 채로 내게 달려들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기타를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쭈뼛거렸다. 노인이 어깨를 밀치며 저리 가! 소리를 질렀다. 바디의 푸른빛을 띠던 색이 흐려지긴 했지만 기타 루시퍼가 틀림없었다. 특이한 디자인이라 비록 색상이 변했다 해도 몰라볼 리가 없었다. 단지 기타를 보여 달라는 것뿐인데 노인은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었다. 기타의 바디를 잡은 손을 놓았는데도 노인은 다리로 나를 밀쳐 바깥쪽으로 밀어냈다. 실랑이를 벌이며 계속 밀리다 보니 어느새 가게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가게 입구에 서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뭐 저런 노인네가 다 있어, 나는 투덜거렸다. 어느 정도 호흡이 진정되자 먹구름처럼 궁금증이 몰려들었다. 가슴이 쉴 새 없이 쿵쿵 뛰었다. 마치 누군가 내 심장을 드럼 스틱으로 마구 쳐대는 것 같았다. 노인에게 차마 그 기타 때문에 내 인생이 단단히 꼬였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루시퍼와 비슷한 디자인의 기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뭇잎이 크게 파인 사운드 홀 안쪽에 네임카드가 붙었다면 기타 루시퍼가 확실할 것이다.

문득 당신과 손 대표가 나눈 대화를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그러니까 그 기타는 어떻게 됐다고?’ 그동안 나는 왜 한 번도 루시퍼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의도적으로 회피해왔을지도 몰랐다. 만약 저 기타가 진짜 루시퍼라면, 저 노인은 어떤 경로로 루시퍼를 갖게 된 걸까. 고교 시절 멤버들과 함께 기타를 훔친 뒤 열흘도 채 넘기지 못하고 기타는 감쪽같이 사라졌었다. 그리고 기타를 찾을 틈도 없이 우리에겐 갑작스러운 시련이 찾아왔었다. 그날 이후 루시퍼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거라 여겼다. 그토록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기타였다. 그런데 왜 저 노인이 가지고 있는 걸까. 나는 가게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혹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 대표가 당신에게 묻던 말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던 건 아니었을까.

가로수 은행나무 옆에 서서 가게를 쳐다보았다. 화실 같은 곳에서 나왔을 듯한 물건들이 인도 옆에 쭉 늘어서 있었다. 한참을 서성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루시퍼일 리가 없어. 발길을 돌리려는데 특이한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입구 왼쪽 벽에 걸린 거울에 초록색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레트로 가든?”

이곳의 물건들은 모두 낡긴 했지만 고물상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묘하게 끌리는 곳이었다. 마치 휘파람처럼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공간이었다. 거울은 청동색 엔틱 모양 테두리로 감싸여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꾸로 달리는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거꾸로 가는 초침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정체 모를 이상한 기운이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마치 낡은 물건으로 가득한 노인의 가게가 과거로 이어진 통로처럼 여겨지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

모텔로 돌아오자 입구 작은 창구 안에서 사내가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꾸벅한 뒤 계단 쪽으로 갔다. 사내는 얼떨결에 고개를 마주 끄덕이며 스치듯 한쪽 입술을 아주 조금 끌어올렸다. 작고 마른 체격에 어울리는 인상이었다. 사내는 눈코입 얼굴형까지 모두 작게 타고난 것 같았다. 종일 좁고 탁한 조명 아래 앉아 있어서 그렇게 변했을지도. 환경에 맞게 진화하는 생물체처럼 말이다. 나는 재빨리 계단을 올랐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어떤 의문이 빙각의 일부처럼 삐죽 솟아올랐다. 그때 그 기타를 숨겼던 곳은 우리만 아는 공간이었다. 멤버들 중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이상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리가 없었다. 모텔 방은 낮인데도 불을 켜지 않으면 한밤중처럼 어두웠다. 방안을 둘러보았다. 이불과 베개와 침대 시트는 모두 낡고 더러웠다. 이렇게 누추하고 더러운 곳에서 내 생의 마지막을 보낸다고? 시체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자 끔찍했다.

‘누구를 위해서 죽어야 하지?’

알콜 기운이 빠진 탓인지 골프채로 두들겨 맞은 곳들의 통증이 몰려왔다. 내가 어릴 때부터 당신은 강하게 키운다는 명목하에 구타를 서슴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먹잇감으로 줄곧 길들여왔다. 그것도 매일 먹는 밥알처럼 특별할 게 없는 만만하고 부실한 먹잇감. 문득 저항감과 함께 억울한 생각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마치 내 안에 밀봉해 두었던 독성이 뚜껑을 열자마자 폭발하듯 밀려 나오듯 갑작스러웠다. 처음으로 당신에게 저항하며 뛰쳐나왔다. 차라리 내 손으로 나를 제거하는 것이 당신에게 맞아 죽는 것보다 훨씬 덜 비참할 것 같았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출생에 대해 의심을 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내 출생에도 큰 비밀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버지의 과도한 간섭에서 오는 폭력과 어머니의 나른한 삶에서 오는 지나친 무관심 탓이었다. 극과 극의 교육방식이었던 두 사람은 내게 미칠 영향 따위는 관심도 없었겠지. 한쪽이 사사건건 간섭과 조종으로 자신의 로봇을 원했다면, 다른 한쪽은 그야말로 자유로운 방목을 실천했다. 나는 타협의 방식을 배운 적이 없었다. 강하거나 약하거나 둘 중 하나만 중요했다.

부모는 양쪽 다 내게 행복을 알려주지 않았고 행복에 대해 말한 적도 없고 내가 행복한지 관심도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살아남아야 하는 이치 만을 주입했고, 어머니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법만 깨닫게 해줄 뿐이었다. 나는 극과 극인 두 사람 사이에서 병든 애완동물처럼 사육되었다. 나는 극단적 사고방식의 두 사람 사이에서 피해자였음이 틀림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분노를 꼭꼭 숨긴 채 모든 것에 순응하는 아이로 자랐다. 그 어떤 집단에 속해도 그저 공기처럼 지냈고, 불만이 있더라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아버지의 권력은 내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어깨의 날갯죽지를 따라 옆구리가 숨을 쉴 때마다 뼈가 들썩거리는 것처럼 아팠다. 통증이 올라올 때마다 가라앉았던 당신에 대한 증오가 뾰족한 가시처럼 살을 뚫고 올라왔다. 통증을 잊기 위해 남은 소주를 병째 들이켰다. 온몸이 불길에 휩싸인듯 혈관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개 같은 인생!”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내 인생이 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는 개처럼 죽는 게 맞겠지. 개는 어떻게 죽어야 마땅하지? 영화나 책에서 묘사된 개들의 죽음은 그야말로 개같이 죽던데. 그야말로 개 같던데. 당신은 나를 개처럼 키웠다. 개처럼, 이 아니라 진짜 개로 생각한 것이다. 개새끼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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