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재심 외치며 한달여 넘게 청와대 1인 시위
개인 문제 해결에서 출발, 사회운동가로 변신

<사진=이규환>
<사진=이규환>

[현대경제신문 김영 기자] 청계천 색동벽화를 제작했던 이규환 작가는 대기업에 의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며 10여 년 넘게 1인 시위 중이다. 그는 LG전자의 부정직(不正直)을 지적하며 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불공정(不公正) 또한 문제라고 외치고 있다.

지난달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건너편 보도에 10여 개의 피켓이 설치됐다. 청와대 1인 시위에 나선 이규환 작가의 것으로 그로부터 한 달여 넘게 이 작가는 현장에서 노숙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이규환 작가는 2008년 LG전자가 냉장고와 에어컨 등 제품 디자인에 본인 작품을 무단 도용, 저작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히고 있다.  

그는 LG전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2009년 1심에 이어 2010년 항소심까지 모두 패했다. 상고심은 열리지도 않았다. LG전자가 이 건에 대해 “법적 마무리가 됐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규환 작가는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았다며, 이 사건이 개인이 아닌 우리 사회 공정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사건 발생 후 십여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LG전자를 상대로 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이규환 작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건 발생 개요에 대한 설명부터 부탁한다.

2008년 2월 LG전자 디자인팀 측에 연락해 색동 이미지를 제품에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이후 LG전자에서 작업실로 사람이 찾아와 삼베느낌이 나는 색동벽화에 관심을 보였고 공동작업을 제안했다.

그 후 색동벽화 작품 문양을 이용한 냉장고 디자인을 LG전자 측에 메일로 발송했는데 별다른 소식이 없었고, 그해 9월 내 작품 디자인이 차용된 LG전자 제품이 출시됐다는 걸 알게 됐다.

LG전자 측에 이를 정식 항의했으나 “제품 디자인은 1월에 특허를 출원, 4월에 등록된 것으로 작가 작품과는 무관하다”란 답변을 받았다.

디자인팀과는 그후 연락이 되지 않아 당시 LG전자 대표였던 남용 전 부회장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냈고 LG전자 경영윤리팀에도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후 LG전자 특허부장이 찾아왔는데 그 또한 "저작권 침해는 아니다"고만 주장했다. 이에 2009년 2월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게 됐다.

- 저작권 침해를 주장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원고 패소 결정이 나왔다. 재판부의 판단 근거는 무엇이었나?

1심과 2심이 다소 차이가 났다.

1심 재판부의 경우 LG전자 측이 주장한 ‘작품의 독창성 없음’ 주장을 받아들였다. 삼베 이미지가 착용된 색동의 직조 문양이 일반적이라 독창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2심에선 아이디어 도용에 대해선 일부 인정하면서도 이를 저작권 침해로 규정한 판례가 없다며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1심과 2심 모두 잘못된 판단이라 생각했다.

우선 LG 스스로 삼베와 유사한 직조 이미지의 벽지 제품을 의장등록 한 바 있어 디자인의 일반성을 주장한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이디어 도용을 인정하며 판례를 이유로 침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라 본다.

-LG전자 측은 2010년 항소심 후 이 사건이 끝난 것으로 보고 있는데.

항소심 후 상고심을 기대했다. 원심 당시 미술 저작권 사건임에도 어문 저작권 사례가 적용되는가 하면 작품의 유사성 비교 등도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에 상고가 가능할 것이라 봤으나 상고심 재판부는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원심 진행 중 자료 제출에 있어 공문서 위조 혐의가 있다는 주장을 법원이 수용했고 이에 2012년부터 재심이 진행 중이다. 재심 중인 사건이니 당연히 끝난 사안이 아니다.

-재심의 경우 진행 자체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

8년여 동안 담당 재판관만 5명이 교체됐다. 증인 신청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지연만 되다 다른 판사에게 사건이 넘어가는 식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법관들이 내 사건 자체를 회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사진=현대경제신문>
<사진=현대경제신문>

-LG전자 측의 대응도 없고 재판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시위를 지속해 오고 있다. 이제는 청와대 앞까지 오게 됐다. 힘든 시위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예술가로 살다 보니 사회를 잘 몰라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주위에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그냥 넘어가라도 말하더라.

1인 시위는 혼자 대기업과 맞서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이것 뿐이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재판을 진행하며 LG전자도 문제지만 국가기관인 법원에게 큰 실망을 했다. 우리 사회 공정이 무너지고 있다고 봤다.

현 정부가 공정을 외치며 출범했고 이 문제에 대해 해결 능력도 있다고 보기에 여기서 노숙 투쟁 1인 시위에 나서게 됐다.

-예술가로서 삶도 멈춘 것으로 안다. 어떤 결말을 원하나

사건 이후 처음 몇 년은 간간이 작품 활동도 했으나 3년 전부터는 모두 중단한 상태다.

오랜 시간 1인 시위를 하다 보니 이 사건이 나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 어느 정도는 사회운동가가 됐다고 본다.

지금으로선 합의로라도 사건이 마무리되길 원하고 있다. 내가 받은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있길 바란다. 그게 사회 공정성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진짜 바람은 하루 빨리 사건이 해결돼 다시 색동 작업을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