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중남미 등 해외자원개발·이동통신사업 제자리걸음

 
 
[현대경제신문 송현섭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의 실형이 확정되면서 경영공백의 장기화로 그룹의 신사업 진출계획이 줄줄이 지연될 전망이다.

4일 재계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에 앞서 SK그룹은 구자원 LIG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잇따라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내심 선처를 기대했으나 결과는 오너 형제의 실형 확정으로 끝났다. 특히 판결 직후 그룹 공식입장은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최 회장은 최근 계열사 모든 등기임원직을 사퇴해 '백의종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대신 SK그룹은 위기경영을 위해 김상근 부회장 중심으로 운영되는 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한 비상 경영체제를 구축해놓고 있어 당장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오너의 결단과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적인 M&A나 해외 진출 등 대규모 신사업 추진에는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재계와 관련 업계에서 나오는 한결같은 우려이기도 하다.

우선 초기단계인 동남아·중남미 해외사업들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최 회장은 수년전부터 중남미·호주·중동 등 자원부국 정부 및 파트너 기업과 협상을 진행해왔다. 실제로 최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석유업체 CEO들은 물론 터키 도우쉬그룹과 1억달러 의 펀드를 조성하는 등 현지 주요 기업들과 전략적 협력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SK그룹이 계획한 동남아 신흥시장의 이동통신사업 진출계획도 암초에 부딪혔다. 당초 SK그룹은 SK C&C와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등 신규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었으나 해당 사업계획은 최 회장의 공백이 길어져 1년 이상 제자리걸음이다.

특히 신수종 사업발굴 등을 담당해왔던 최재원 부회장의 공백으로 국내사업도 악영향이 불가피한데 추후 수년동안 굵직한 M&A 추진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SK E&S가 1조원이 넘는 STX에너지 인수전을 앞두고 최종 불참한 것은 이 회사 대표이사를 맡고있는 최 부회장의 구속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부진한 그룹의 경영실적 역시 우려되는데 SK그룹은 지난해 인수한 SK하이닉스를 빼면 주력 계열사들이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정유·화학 등 업황 부진의 직격탄을 맞은 SK이노베이션은 물론 국내시장 포화로 잠재성장력이 떨어진 SK텔레콤도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SK네트웍스ㆍSK해운ㆍSK건설 등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일각에서는 최 회장에 대한 사면을 검토해달라는 의견을 제시되고 있으나 정부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이 최근 "기업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만큼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며 총수 부재로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SK그룹을 우회적으로 비난한 것은 이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특히 윤 장관은 "투자 의사결정이 과거보다는 조심스럽겠지만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차질 없이 진행)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SK측의 입장을 사실상 외면했다. 따라서 SK그룹은 계열사의 업무는 각자 자율적으로 처리하지만 M&A와 대규모 투자 등은 6개 주요계열사 CEO가 참여하는 수펙스협의회가 맡는 비상경영이 수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그룹의 미래를 내다보는 중장기 투자는 오너의 결단이 필수적"이라며 "수펙스 방식으로는 각 사의 의사결정 감독차원의 장치일 뿐 신규사업 진출 및 M&A를 비롯한 일사불란한 전략적 기업활동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또 "비상시스템이 작동해도 총수를 대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하이닉스 인수의 경우 실무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최 회장의 결단에 따라 성공을 거둔 케이스인데 전문경영인이 이 같은 전략을 밀어붙일 수는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한편 SK그룹은 지난 2003년 최 회장이 구속되던 당시 영국계 헤르메스펀드에 경영권을 뺏길 위기를 맞아 재계 백기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에서 탈출한 바 있다. 더욱이 이번 최 회장 형제의 구속사태에 따라 SK그룹이 또다시 위기국면을 맞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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