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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이리 창작우화] 장자(莊子)와 채팅을 나누다#68. 장자의 검술
황이리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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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24  15: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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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장자의 검술  

아무리 공평무사한 사람이라도 자신이나 자기 가족과 관련된 일을 냉정하게 잘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무리 공정하게 한다 해도 어느 정도는 과장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겸손하여 스스로 깎아내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장자도 말하기를 친아버지는 자기 아들의 중매를 설 수 없다(親父不爲其子媒) 하였다. 
장자의 아들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장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래도 자기 입으로 자랑하기는 민망할 터이니, 내가 아는 장자의 검술실력을 잠깐, (장자가 분주한 틈을 타서 우리끼리 얘기로) 귀띔해 드릴까 한다. 장자의 검술실력이라고? 그렇다. 검술(劍術). 진짜 칼싸움 얘기다. 

때는 조(趙)나라 문왕 때다. 왕이 검을 좋아하여 날이면 날마다 궁 마당에서 검술시합을 열게 하고 그것을 즐겼다 한다. 천하의 검객들이 자기 실력을 과시하고 응분의 상을 얻기 위해 조나라로 몰려들었다. 많을 때는 삼천 명이나 되는 검객들이 식객노릇을 했다고 하니 그 비용만 해도 엄청났을 것이다. 로마 말기의 황제 네로가 건장한 노예/포로들을 검투사로 양성하여 콜로세움을 피로 물들이게 했던 일과 유사했던 모양이다. 문왕이 주최하는 검술시합에서 겨루다가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1년에 1백 명을 넘었다 한다. 3년이나 지속되었으니 궁중에는 언제나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볼거리로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 태자를 비롯하여 궁중의 뜻있는 대신들은 걱정이 쌓여갔다. 검객들을 먹이고 포상하느라 왕실의 재정은 고갈되었고, 왕실이 가난해지니 국력도 쇠퇴하였다. 왕은 백성을 보살피지 못하고 세금만 거둬가니 백성의 원성은 높아가고 주변 제후국들은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태자가 측근의 신하들과 은밀히 상의하였다. 
“누가 임금을 설득하여 검술시합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천금을 상으로 내리리라.” 
“혹시 장자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가 말했다. 태자는 당장 천금의 사례를 지참하여 장자를 초청하도록 지시했다. 사자가 달려가자 얘기하자 장자는 황금을 받지 않고 태자에게로 왔다.
“태자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시키려고 천금을 보내셨습니까?”
이런 저런 얘기는 생략하겠다. 장자는 태자의 근심하는 바를 귀담아 듣고는 시원스레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저도 검술에는 제법 솜씨가 있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그러나 임금께서 좋아하는 검객은 모두 더벅머리에 근육이 두툼하며 낮게 기울어진 관을 쓰고 장식 없는 끈으로 그것을 매었으며, 눈은 부릅뜨고 말을 더듬습니다. 선생께서 지금처럼 유복(儒服=옛날 선비들의 유교식 복장)을 입고 임금께 나아간다면 일을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서양의 총잡이들이 카우보이 복장을 즐겨 입었듯이, 춘추시대 유랑검객의 복장을 갖추어야 왕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충고였다. 
그리하여 우리의 장자는 사흘이나 걸려 팔자에도 없는 (아니, 팔자에 있었으니 그랬겠지) 검복을 맞춰 입고 태자를 다시 만났다. ‘서부의 쟝고’ 정도의 건달스런 모습으로 제법 살기를 풍기며 태자를 따라 궁으로 들어설 때 걸음은 거침없이 성큼성큼하였고, 지그시 내려깐 눈에는 오만이 가득하였다. 태자가 천하의 검객을 데리고 온다는 전갈을 받고 벌써 칼부터 뽑아들고 기다리던 왕을 마주쳤을 때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카리스마에 압도되며 문왕은 가슴이 뛰었다. 
“그대는 무엇으로 나를 가르치려고 태자의 소개를 청하였소?”
“저는 대왕께서 칼을 좋아하신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칼로써 대왕님을 뵈려 합니다.”
“그대는 칼로써 몇 사람이나 대적할 수가 있소?”
“저의 칼은 열 걸음마다 한 사람씩 베면서 천리를 가도 막을 자가 없습니다.”
장자의 단호하고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왕의 얼굴에 반가움이 번졌다. 
“천하무적이로고!”
장자가 역시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대저 검술이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이쪽의 허점을 보여줌으로써 상대를 유인하고, 상대보다 늦게 칼을 뽑으면서 상대보다 먼저 공격하는 것입니다. 한번 실제로 이를 시험해 보이고 싶습니다.”
왕은 ‘하하’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우선 객사로 들어가 우선 좀 쉬시면서 기다려 주시오. 시합할 준비가 끝나면 선생을 모시겠습니다.”
문왕의 지시에 따라 그날부터 천하제일의 검객과 겨룰 사람을 뽑기 위한 ‘예선’이 시작되었다. 7일 동안 60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치열한 예선을 통해 5~6명의 선수가 선발되었다. 
왕이 드디어 장자를 초치해놓고 겨루기를 청했다. 
“오랫동안 이 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장자가 검을 고를 차례다. 
왕이 물었다.
“선생께서 평소에 쓰는 칼은 길이가 어떻게 됩니까.”
“아무렇거나 괜찮습니다. 저에게는 세 가지 칼(三劍)이 있는데, 임금께서 원하시는대로 쓰겠습니다. 원하시면 각 칼의 특징을 먼저 설명드리겠습니다.”
왕의 허락을 받고 장자는 설명을 시작했다. 
“세개의 칼 삼검 중 첫째는 ‘천자의 칼(天子之劍)’로, 곧장 내지르면 앞을 가로막을 것이 없고, 위로 쳐올리거나 아래로 내리치면 위아래에 걸리는 것이 없으며, 좌우로 휘두르면 사방에 거칠 것이 없습니다. 이 칼을 한번 쓰기만 하면 제후들의 기강이 바로 서고 천하가 복종합니다. 둘째는 ‘제후의 칼(諸侯之劍)’입니다. 용기 있는 자로 칼끝을 삼고 청렴한 사람으로 칼날을 삼으며, 현명하고 어진 사람으로 칼등을 삼고 충성스러운 사람들로 칼자루의 테를 삼으며, 호걸들로 칼집을 삼지요. 위로는 둥근 하늘을 법도로 삼아 해와 달과 별의 세 가지 빛을 따르고 아래로는 땅을 법도로 삼아 사계절을 따르고 가운데로는 백성들의 뜻을 헤아려 사방의 온 나라를 편안케 합니다. 이 칼을 한번 뽑으면 나라 안에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됩니다. 세 번째는 ‘서민의 칼(庶人之劍)’입니다. 더벅머리에 살쩍은 비쭉하며 낮게 기운 관을 쓰고 장식 없는 끈으로 관을 묶고 소매가 짧은 옷을 입고 부릅뜬 눈에 말을 더듬거리면서 임금님 앞에서 치고받고 싸우되 위로는 목을 베고 아래로는 간과 폐를 찌릅니다. 마치 투계와 같은 것이지요. 일단 목숨을 잃고 나면 전혀 국사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임금께서는 천자와 같은 자리에 계시면서도 서민의 칼을 좋아하시니 저는 황공하오나 임금님을 낮게 보고 있습니다.”
그제야 임금은 장자의 옷소매를 잡아끌고 당상위로 올라갔다. 그로부터 문왕은 석 달 동안 궁 밖을 나가지 않았으며, 검객들은 모두 흩어졌다고 한다.

* 장자 한마디: 
諸侯之劍 以知勇士爲鋒 以淸廉士爲鍔 以賢良士爲脊 以忠聖士爲鐔 以豪桀士爲夾 
제후의 칼은 용기 있는 자로 칼끝을 삼고, 청렴한 사람으로 칼날을 삼으며, 현명한 사람으로 칼등을 삼고, 충성스러운 이로 칼자루를 삼으며, 호걸로 칼집을 삼는다. (<장자> 30. 說劍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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