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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이리 창작우화] 장자(莊子)와 채팅을 나누다#67, 걱정과 비판 담당관
황이리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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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15  09: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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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걱정과 비판 담당관  

(5) 
왕은 마침내 걱정과 비판 담당관을 해고하기로 결심했다.
종일 백 마디 칭송을 듣다가 듣는 한두 마디 듣는 걱정은 말 같지도 않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찾아온 걱정과 비판 담당관에게 왕은 말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는데 그대는 혼자서 만사에 걱정인가. 그대의 정신상태가 이상해진 것 아닌가 걱정되니 일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라. 그대는 너무 지친 것 같다. 그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 
걱정과 비판 담당관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말했다. 
“왕이시여. 전하에게 그런 생각이 있다는 걸 진즉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분부는 즉흥적인 것도, 농담도 아니며, 오래 고민하고 망설인 끝에 마침내 결심하신 바일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주저할 것도 없이 기꺼이 그 뜻을 받들어 이 문을 나선 다음 곧 서울을 떠나겠습니다. 그러나 걱정과 비판 담당관으로 왕을 모신 지 30년에 쫓겨나는 못난 신하로서, 떠나기 전 마지막 한 말씀만 더 드리고자 하니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왕은 내키지 않았으나, 마지막 정리(情理)를 무시할 수도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짧게 말하고 떠나거라.”
    
신하는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마지막 큰 걱정을 왕에게 고했다. 
“태평성대가 지속되면 백성들의 마음에서 절제가 줄어들고, 생활에서는 아무리 품위를 지킨다 해도 역시 사치향락의 습성에 젖어들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나라에 근심거리가 자라나지요. 그것은 필연적으로 우환을 불러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지금 대왕께서는 아무리 제가 그것을 말한다 해도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이니 자세한 말씀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하다가 신하는 소맷자락에서 작은 노리개를 하나 꺼내 왕에게 바쳤다. 도기에 유약을 발라 구운 하얀 호리병 모양의 노리개였는데, 위에도 아래에도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 단순한 것이었다. 
“이게 무어지?”
시답지 않다는 듯 뚱한 어조로 왕이 묻자 걱정과 비판 담당관이 대답했다. 
“생각보다 중요한 물건이옵니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언젠가 일어난다면, 즉, 날마다 대왕께 머리를 조아리며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긍정과 칭찬 담당관들이 눈앞에서 모두 사라지고 소리쳐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 일이 호~옥시라도 벌어진다면, 왕이시여! 이 노리개를 깨뜨리소서.”
“그건 무슨 소리냐? 긍정과 칭찬 담당관들이 모두 어디로 간단 말이며, 어찌 감히 내 부름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괴이하도다.” 
“전하. 신도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옵니다. 그러나 앞으로 2년 안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신의 마지막 당부를 잊지 마소서.” 
걱정과 비판 담당관은 그제야 왕에게 큰절을 올린 뒤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6)
2년이 채 되기 전의 일이었다. 임금이 긍정과 칭찬 담당관들에게 둘러싸여 조회를 시작했을 때 내관 한 사람이 달려 들어와 전쟁소식을 전했다. 
“전하. 이웃나라의 군사들이 국경을 넘어 쳐들어왔다 하옵니다. 국경 수비대의 전령이 새벽길을 달려 서울에 도착했사옵니다.”내관이 종종걸음으로 왕에게 다가와 수비대장의 장계를 바쳤다. 
급히 서찰을 펼쳐본 왕의 얼굴에는 당황의 기색이 역력했다.
모여 있던 중신들이 서로 마주보며 한동안 눈짓을 주고받는가 싶더니, 정승이 입을 열었다. 
“전하. 일단 조회를 중단하시고, 국방을 맡은 핵심 신하들과 비상회의를 여심이 옳은 줄로 아뢰오.”
“그러자. 그러자.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누가 말 좀 해다오.”
그러나 고관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썰물처럼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병부대신을 불러라.”
왕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동안 고관들이 입술에 침을 바르며 칭송해온 바에 따르면 나라 일은 무엇이든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으며, 적의 침입 같은 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겁지겁 달려온 병부대신은 말했다.
“우리는 아무 대비가 없나이다. 싸울 수 있는 군인이 단 한 명뿐이라서 중과부적입니다.”
뜨악해진 왕에게 병부대신이 설명했다. 
“1백 명이나 되는 긍정과 칭찬 담당관들은 자식들을 모두 큰 나라에 유학시켜 그 나라 시민이 되게 하였기 때문에 모두 병역의무가 없나이다. 원정출산도 많았고요. 그들은 대개 외국에 살고 있거나, 지금 여기에 있더라도 곧 큰 나라로 달아날 것이 뻔합니다.”
“그래? 그러면 단 한 명의 군인은 누구의 자식인가?”  
“걱정과 비판 담당관만이 가난하여 자식을 외국에 보내지 못하였기에 그의 자식이 외국 시민권도 없이 입대해 국경을 지키고 있었사옵니다.” 
왕은 배신감과 함께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면 이제 나라를 버려두고 피신하는 길 뿐이란 말인가? 어디로 가라고?” 
“그러하옵니다. 우리는 이제 외국으로 달아나서 그곳 시민권자의 부모로 무사히 살 수 있습니다. 왕께서도 큰 나라에 이민 간 친척들을 찾아보십시오. 외국에 숨겨둔 아들이라도 있다면 이럴 때 의지할 수 있을 겁니다. 신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자들에게 살아날 길을 예비해두셨죠.”  
순진한 왕은 발을 굴렀다. 
“무슨 소리냐? 나는 숨겨둔 자식 같은 건 없단 말이다.”
“아, 역시 전하는 흠결 하나 없이 깨끗한 성군이셨습니다. 그러나 전하, 이제 얼른 피하시옵소서. 아무도 왕을 지켜드릴 사람이 없사옵니다.”
병무대신은 그 자리에서 관복을 벗어던지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급히 어딘가로 뛰어가 버렸다. 
“게 누구 없느냐?” 소리쳐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불안과 짜증이 밀려왔다. ‘에잇’ 방석을 집어던지고 나서 몸을 기대앉던 안석을 집어들었을 때였다. 그 아래 있던 무언가가 굴러 나왔다. 2년 전 걱정과 비판 담당관이 떠나면서 주고 간 노리개였다. 그것을 주춧돌에 깨뜨리자 작게 접은 서찰이 나왔다. 
‘전하. 일이 화급하오니 우선 피하여 몸을 보전하신 후에 재기를 도모하셔야 합니다. 곧바로 전하의 백마를 타고 동쪽 39번 국도를 따라 달리시오소서. 하루 낮 하루 밤을 달리면 멀리 지평선에 뫼산(山)자 형태로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은 지형이 나타날 것입니다. 향하여 오시다가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곳을 보시거든 그곳을 향하소서.’ 
왕이 하루 낮 하루 밤을 달려가니 과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 있었다. 멀리 몇 채의 집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누군가 높은 언덕 위 당산나무 아래 서 있다가 왕의 하얀 말을 알아보고 황급히 달려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계속) 
       
*장자 한마디
君子之交淡若水 小人之交甘若醴 (군자지교담약수 소인지교감약례) 
또한 군자의 사귐은 물같이 담백하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
- <장자> 산목(山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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