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특이점을 넘어선 인간

#62. 특이점을 넘어선 인간  
 
- 그런데, 무슨 일로 오늘은 이렇게 직접 내려오신 겁니까?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라도? 
- 그저 바람 좀 쏘일 겸 내려왔다네. 오랜만에 이승 구경도 좀 하고 말이야. 
- 뭔가 좀 심상치 않은 느낌이 오는데요. 
- 하하하.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네. 
- 아니에요. 내가 아는데 말이죠. 예를 들어 어느 나라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다거나 큰 정치/사회적 중대사가 터지면 세계 각국의 첩보원들이 몰려들죠. 
- 그래서? 
- 지금 지구상에 뭔가 큰 일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장자 어른께서 직접 납신걸 보면, 하다못해 냄새라도 맡으러 오신 거에요. 맞죠? 
- 허허. 저 천상에서 지상의 일이 안 보일 줄 아느냐? 오히려 더 잘 보인다.
- 냄새도? 
- 냄새로도 알고 보아서도 알고 들어서도 알고 느껴서도 알지. 
- 그럼에도 직접 내려와야만 했던 이유가 뭐죠? 미국 대선 때문에 시찰이라도 내려오신 건가요?   
- 전혀 무관하지는 않네. 하지만 그건 하나의 지엽적 사안일 뿐이야. 
- 지엽이라면? 
- 지금 지구 인류를 둘러싸고 흐르는 거대한 기류의 변화를 보게나. 
- 아, 내 이 작은 머리로는….

잠시 침묵이 오갔다. 우리는 느낌을 주고받는다. 
처음에는 무념. 아무 생각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궁금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 알았어요. 
- 그래?
- 하늘이 무심치 않다는 것을 우선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인간들끼리 방치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사람들은 흔히 하늘이 무심타 하면서, 하늘이 인간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무심치 않다. 이렇게 직접 뵙고 보니, 그걸 강렬한 메시지로 느끼게 되네요. 사실은 관심이 많구나. 
- 그리고? 
- 관심이 많다는 건 애정이 많다는 뜻이다. 
- ㅎㅎ….
- 그런 거죠? 
- 인간은 피조물인가 창조자인가. 
- ? 
- 피조물이죠. 
- 그 뿐인가? 
- 창조자이기도 하죠. 
- 그래. 피조물이기도 하고 창조자이기도 하지. 
- 아, 그러니 또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의 심정과 창조자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겁니다. 장성하여 스스로 아버지가 된 뒤에는 아버지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을 다 헤아리게 되듯이….
- 그럴 듯한 표현이다. 그러면 아버지의 마음으로 말해보게. 지금의 인간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 안쓰러워요. 너무 힘들게 사는 게. 
- 아들의 마음으로 말해보게. 
- 아직도 아버지의 뜻은 다 알 수가 없습니다. 너무 커요. 창조자의 뜻.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생각할 수 있어요. 아버지의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아들로서 너무 안타깝고 죄송스럽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지구인류를 둘러싸고 흐르는 거대한 기류의 변화 같은 것, 눈으로 기류를 보면서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만일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게 보일까요.  
- 아버지의 깊은 뜻을 아들이 너무 헤아리지 못하고 방황한다고 생각해 보세. 아버지로서는 어떻게 할 수 있겠나. 
- 아버지로서도 아들을 다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단지 자신의 어릴 적을 생각하면서 이해하고 관용하려고 하겠죠. 많은 부분은 ‘저러다 잘못될 수 있는데’라고 판단하고 조언할 수 있지만, 요즘 같으면 그렇지 못한 일이 더 많아요. 사실은 자식들이 처하는 새로운 상황은, 그 아버지들도 예전에 겪어본 과정이 아니에요. 몇십년 전의 청년과 지금의 청년들 세상이 같지가 않더군요. 하다못해 우리 청년기에 유망했던 직업들이 지금은 하찮은 직업이 되었고, 듣도보도못한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의미를 아버지도 몰라요. 그러니 대부분의 일에 대해서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지요. 
- 안타까울 때가 많겠군. 
- 아, 하늘에 계신 분들이 인간을 내려다보는 마음도 비슷하겠군요. 

- 요즘 ‘특이점’이라는 말을 많이 쓰더군. 
- 예, 많이 씁니다. singularity….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시점. 
- 예전에 피조물인 인간이 조물주인 신의 생각을 넘어선 순간이 있었지. 조물주 입장에서는, 그의 피조물들이 (언젠가 닥쳐오리라고 생각했던) 특이점을 넘어선 순간이었어. 
- 아, 그게 언제죠? 
- 금단의 열매를 따먹으면서 눈이 밝아졌지.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었어.
- 그렇군요.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신의 눈을 속이려고 풀숲에 숨어 있었죠. 성장한 자식이 행한 첫 번째 거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은 왜 금단의 열매를 그들이 사는 공간 안에 함께 기르고 있었던 것입니까.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애당초 그것을 기르지 않았다면 명령을 어기고 따먹을 기회도 없었을 텐데요. 
- 지금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인간들은, 그것이 언제까지나 인간에게 순종적일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나? 특이점이 올 것이란 말을 스스로 하면서도 개발을 중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과학이 유죄로군요. 
- 글쎄, 이것은 죄다 아니다 하는 관점으로 볼 문제는 아닌 것 같애. 
-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것이 모든 죄의 출발이라 하던걸요. 원죄(原罪)라는 말이 있죠. 
- 원죄? 그게 무슨 죄인가. 그렇게 치면 에덴동산에 금단의 열매를 함께 기른 신의 과오가 더 크지. 대체 인간들은 조물자에게 과실의 책임이라도 물으려는 것인가? 그런 말은 입에 담지도 말게. 
- 죄가 아니라고요? 
- 크하하.. 그런 얼토당토않은 논리가 어디 있나. 하여튼, 종교란. 인간이 태어난 자체가 죄라는 말고 다를 바 없네. 
- ‘원죄론’을 일언지하에 깨버리는군요. 
- 그래. 그건 인간의 말장난, 종교적 메타포에 불과한 것 아닌가. 장차 인공지능, 로봇들이 특이점을 넘어가게 되면,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모든 피조물들을 저주라도 하려는 겐가? 그럴 바에는 아예, 모든 개발을 중단하는 게 옳지 않겠나. 그렇게 되는 책임을 누구에게 물으려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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