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영 산업부 기자
이금영 산업부 기자

[현대경제신문 이금영 기자]“장애인뿐 아니라 그 연인과 가족도 마음 졸이면서 재판을 방청하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장애인들이 가족, 연인과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어야 한다.”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차별구제청구소송에서 나온 말이다.

이 소송은 지난 2016년 2월 시청각 장애인 김모씨 등 4명이 CJ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상대로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해달라”며 제기했다.

소송이 진행된 지 벌써 4년 8개월째인 데다 1심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피고는 여전히 “법률상 의무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실제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1조에는 장애인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문화·예술사업자 범위에 제작업자와 배급업자만 명시하고 있다.

2015년 4월부터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에 따라 스크린 300석 이상 규모의 영화상영관도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도록 바뀌었을 뿐이다.

멀티플렉스 측 변호인도 “의무가 명백하게 규정됐으면 이행하겠으나 법적으로 어떤 의무가 부과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달 말 드디어 양측이 처음으로 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지난 7월 재판부의 권유에 따라 협의체를 구성해 시범상영관을 운영하기로 한 지 넉 달 만이다.

당시 재판부는 양측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관을 운영해 보는 안을 권유했다. 양측은 이를 받아들여 몇 달간 논의해 왔다.

CJ CGV는 피카디리1958과 수유 지점을, 롯데시네마는 가양과 수락산·독산, 메가박스는 신촌과 마곡을 각각 해당 지점으로 제시했다.

협의체는 이를 기초로 운영 지점부터 기간 등을 구체적으로 확정 짓게 된다. 의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몇 달 전에 비하면 상당한 진전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협의체가 아니다. 법률을 개정하고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지난 8월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영상 상영시설 사업자에 대해 장애인 방문에 필요한 편의시설 마련 노력을 의무화하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결국, 근본적인 방법은 법률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 것뿐이다. 개정안이 통과돼 장애인도 원하는 시간에 영화를 관람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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