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진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아.

 
 

#60. 진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아.      

- 한국 정치가 아주 시끄럽지요? 
- 의견이 다른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 강해. 반드시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어 하니까 말이 많아지는 거지. 
- 그것도 좀 심하지 않은가요? 
- 한국 사람들이 열정이 좀 강한 편이긴 하지. 오죽하면 옛날 기록에도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한다 했겠나. 하지만 한국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니야. 이탈리아 사람들은 또 어떻구. 태양의 정기를 받은 스페인, 라틴 사람들의 열정도 그렇지. 거기도 조용한 날이 없어. 삼바 축제 같은 건 오히려 한국사람들이 따라오기도 어려울걸. 그게, 풍요로울 때는 축제지만, 배고프고 척박해지면 싸움이 되는 거야. 뭐, 근본적으론 인간이 다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어. 
- 그래도 정치판에서…
- 인간이 중시하는 경제적 이익과 권력 분배가 국회에 모여 있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시장보다 시끄러운 곳이 정치판이지. 요즘 소위 민주주의 국가라는 데가 거의 그래.  
- 하긴 그렇네요. 의회에서 넥타이 멱살을 잡고 싸우는 의원들 모습은 한국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그러면 정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만 할까요? 
- 사람들이 바뀌어야 되겠지. 권력이나 돈에 대한 숭배가 줄어들면 관심이 줄어들지 않겠어? 예를 들어 그 사회에서 어떤 직업이 가장 숭상되느냐.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어 하는가. 관심이 줄어들면 경쟁도 줄어들 테고 경쟁이 줄어들면 싸움도 줄어들겠지.
- 그렇겠군요. 그러면 이 질문은, 사람들이 과연 돈에 대한 숭배가 줄어들까. 근데 어려운 일이겠군요. 돈이 인간생활을 좌지우지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돈의 권능은 더욱 커지기만 했죠. 
-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아. 농경시대만 해도 사람들은 돈보다 인간의 도리를 더 중시하지 않았나. 가까이 한국만 보더라도 말이야. 
- 아, 돈의 노예가 된 지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네요. 
-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가 인륜도덕을 더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다가 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지. 이익만 좇느라 인간 도리를 무시하고 그런 나라들은 고대적에도 있었어. 대대로 있었지. 그게 그 사회나 나라의 망쪼야. 그러다가 나라가 망하면 새로운 기풍이 진작되다가… 또 시간이 좀 흐르면 다시 사치향락을 좇으며 다시 타락했다가….
- 그랬군요. 옛날 역사를 보면 늘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 나라나 왕조가 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죠. 
- 맞는 말이다. 기록으로 잘 남겨진 것 중 하나가 바로 히브리인의 역사인 구약성서 아닌가. 신 앞에서 정직하게 살면 복을 받다가, 그래서 사치향락에 빠지며 부패하면 타락하면서 국력이 약화되고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가 신의 벌을 받아서 망하고… 
- 벌을 받고 회개해서 다시 부흥하다가 또 다음 대에서 타락하여 망하고….
- 옳거니. 그런 반복이라고 할 수 있지. 인간의 역사는. 
- 그럼 지금 한국 사회 한복판에서 정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 그래. 좀 크게 봐야지. 싸움은 너무 살기 힘들어도 생기고 너무 풍족해서 탐욕이 넘쳐도 생기는 법. 먹고 살만하면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먹는 놈은 먹고 일부는 먹고살기도 힘들고, 이러면서 사회가 분열이 생긴 탓이라고 볼 수 있다. 
- 정의나 진실… 이런 문제 때문은 아닙니까? 
- 하하하... 정의나 진실? 과연 그런 문제일까? 잘 들어봐. 사람들은 자기와 입장이 같으면 서로 순응하지. 그런데 같은 입장이 아닐 때는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보기도 전에 반대를 해. 아주 이게 야만적인 일인데, 인간이 지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하지만, 절반은 여전히 야만이야. 본능적으로 핏줄에 끌리는 거지. 또 자기와 같은 생각을 말하면 다 옳다고 하고 다른 생각을 말하면 무조건 부정을 하는 속성이 있어. 지성이 우선하는 게 아니라, 기분이 우선한다고. 인간이 이성의 동물이냐 감정의 동물이냐 한다면, 일단은 반반이라고 말해야겠지만, 그래도 감정이 더 우세한 게 사실이야. 
- 음, 생각해 보니. 진실을 진실여부로 가리는 게 아니로군요. 하지만 이게 참 어려운 게… 인간인 이상 팔은 안으로 굽는 게 아니겠습니까. 
- 사람들 사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을 누가 하나? 
- 우선은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해주지요. 
- 그래도 순응하지 않을 때는 누구에게 부탁하나? 
- 법에게 묻지요. 
- 구체적으로 법관. 그래서 나라마다 사법제도를 두는 게 아니겠나. 
- 맞습니다. 
- 어떤 사람들이 법관이 되던가? 
- 사회의 덕망 있는 지도자. 요즘은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을 받은 사람들이 도맡죠. 
- 그렇지. 어느 쪽이든, 적어도 보통사람들보다는 뛰어난 법지식과 판단력과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들이 판관을 맡는다. 검사도 변호사도 모두 그 사회의 엘리트들이지. 
- ‘인품’은 빼고요. 새파란 젊은이들이 법 지식만 있으면 시험을 거쳐 판검사가 되질 않습니까? 사회적 윤리도덕이나 일반상식, 책임감 같은 것도 시험에 반영이나 되는지 의심스러운데 더구나 ‘인품’까지 바랄 수가 있겠어요? 
- 그래도 공부 좀 한 사람들이면 인품도 어느 정도는 생기지 않나? 
- 조금 나을지는 모르겠어요. 대체적인 수준으로는. 하지만 요즘은 그것에 대한 신뢰도 좀 바닥입니다. 
- 그래.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 한 사회에서 나름 뛰어난 수재들을 골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교양과 인품까지도, 윤리도덕과 사회에 대한 책임까지도 범인(凡人)들보다는 좀 나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지. 그런데 사회 엘리트들이 일반인들의 눈에도 존경할만한 도덕심을 갖지 못하고 불신을 받는다면 그 사회에 희망이 있겠나? 국민의 복종심을 끌어내지 못하는 불공정, 감정적 처벌과 범죄자들을 비호하는 부패비리가 사법 엘리트들 사이에 만연한다면 과연 그 사회가 앞으로 무사하겠나 말이야. 
- 한국은 좀 심각한 위기상황까지 갔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은? 
- 개혁을 위한 진통을 겪고 있죠. 그래도 대다수 사법엘리트들이 다 부패한 것은 아니니 나는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 좋군. 나도 한국사회가 무사하기를, 멀리서나마 진심으로 기원하네.     


● 장자 한마디
與己同則應 不與己同則反 (여기동즉응 불여기동즉반)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입장이면 순응하지만, 다른 입장이면 반대한다. 
同於己爲是之 異於己爲非之 (동어기위시지 이어기위비지) 
자기와 같은 생각은 옳다고 인정하지만, 자기와 다른 생각은 부정한다. 
(<장자> 寓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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