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肉食者鄙 未能遠謀 육식자비 미능원모
“높은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능히 멀리보지 못 한다.” (<春秋左氏傳> 장공10년)
노나라 충신 조말이 군주에게 직언하려는 것을 만류하는 사람들을 뿌리치며


잠시 노(魯)나라 얘기를 삽입해야겠다. 제 환공이 즉위한 직후 얘기다.

제 환공은 즉위 이듬해 노나라를 공격했는데, 아직 흐트러진 민심이 수습되기 전이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제나라나 노나라 송나라 위나라 등 제후국들의 군세는 대략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뚜렷한 패자가 등장하기 전이었다. 진(晉)나라 정나라도 그리 허약하지 않았고, 남쪽 내륙에서는 초나라도 힘을 키우고 있어 힘의 균형은 팽팽했다. 제나라는 부패했던 양공이 죽고 잠깐 동안의(공손무지의) 난리를 거쳐 새 군주 환공이 즉위한 직후였기 때문에 군의 활동성이 높았다. 환공은 예전부터 손봐주고 싶던 고만고만한 나라들을 정복한 뒤에 그 여세를 몰아 노나라를 공격했던 것이다. 재상 관중은 이 공격을 찬성하지 않았다. 아직 제나라 민심이 안정되지 못한데다 공격의 명분도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공은 송(宋)나라 힘까지 빌려 공격을 강행했다. 노나라 장공 10년이다.

노 장공은 맞서 싸우려고 군사를 불러 모았다. 과연 두 나라를 맞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지레 항복하는 것이 나을 것인가. 전쟁을 눈앞에 둔 나라라면 마땅히 따져봐야 할 문제였다.

노나라 사람 중에 조말(曺沫)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높은 관직에 있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 알려진 무인이었던 것 같다. 장공이 맞서 싸우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뵙기를 청했다. 그러자 조말의 친구들이 만류했다. “그런 일은 높은 사람들이 어련히 알아서 결정했겠는가. 굳이 찾아가서 무슨 말을 더하려는가(肉食者謀之 又何間焉).” 그러자 조말이 대답했다. “높은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멀리 내다보질 못한다네(肉食者鄙 未能遠謀).”

장공이 면담을 허락했다. 조말이 담대하게 물었다.

“항전을 결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싸우실 건지요.”

장공이 말했다. “생활에 필요한 옷과 음식을 감히 독점하지 않고 백성들과 나눌 것이다.”

그러나 조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정도의 작은 은혜로는 백성에게 두루 미치지 못할 것이니, 백성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장공이 또 말했다. “제사에 쓰이는 희생이나 보물의 품목을 더 늘리지 않고 반드시 신실한 정성으로 행할 것이다.” 그러나 조말은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정도의 정성으로는 가볍습니다. 신의 복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백성들의 송사에 크고 작은 게 있으니 능히 다 살필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반드시 인정을 가지고 살필 것이다.” 조말이 비로소 절하며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충실한 방책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한번 싸워볼만 하니 저도 이 전투에 따르기를 청하옵니다.”

조말은 전투를 지휘하는 장공의 수레에 함께 타고 진영으로 나갔다.

장공이 지휘하는 노나라 군대는 제나라군의 기세를 꺾고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장공이 조말의 계책을 따랐기 때문이다. 처음에 장공은 밀려들어오는 제나라 군을 향하여 성문을 열고 응수하려 했다. 그러나 조말이 “아직 시기가 아닙니다”하고 만류했다.

제나라군이 다시 북을 치며 밀려들어왔으나 조말은 또다시 응전을 말렸다. 제군이 세 번째 밀려들어오자 그 때에야 조말은 반격에 찬성했다. 노나라 군대는 갑작스레 성문을 열고 밀려나가 제군을 무찔렀다. 제군은 어지러이 도망하면서 멀찍이 물러났다.

조말이 장공에게 말했다. “무릇 전쟁이란 용기에 달려 있습니다(夫戰 勇氣也). 첫 번째 북소리에 적군은 용기가 일었으니 응전하지 않은 것이고, 두 번째 북소리에도 응전하지 않으니 적군의 용기는 시들해졌으며, 세 번째 북소리에 적군의 용기는 이미 지친 반면 아군의 용기는 상대적으로 넘쳐나므로 비로소 응전하여 이긴 것입니다.”


<이야기 PLUS>
이 전쟁에 관한 기록은 <사기>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노나라 중심 역사인 공자의 <춘추>에 나온 것이다. 자세한 얘기는 <좌씨전>에서 옮겼다. 조말과 친구들의 대화 중에 나오는 ‘육식자(肉食者)’는 곧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 고기와 흰쌀밥을 먹는 것은 부자이기에 가능한 것인데, 기원전 7세기에 해당하는 춘추시대에 이미 높은 사람과 부자가 동일시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부와 권력은 그 옛날부터 동반되는 속성을 지녔던가 보다.

여기 등장하는 조말은 <사기>에 나오는 이름이다. <좌씨전>과 <곡량전>에는 조귀(曹劌)로 표기되어 있다. 조말은 지혜롭고 충성스러운 노나라의 무장이었다. “고기를 먹는 사람(즉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는 말에서 그의 강직한 성격도 읽을 수 있다. 군주를 상대하여 ’무엇으로 싸우려 하는가‘라고 담판 짓는 장면도 예사롭지 않다.

그의 말 속에는, 군주가 먼저 민심을 얻기 전에는 전쟁을 해도 승산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국가가 백성에게 옷과 쌀을 나눠주거나 예산낭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민심을 얻을 수 없으니 무의미한 전쟁(결과가 뻔한)이 될 것이이라고 반대한다. ‘크고 작은 소송을 잘 살펴하겠다’는 말은 곧 공정하고 공평한 정치를 다짐하는 말이다. 그제야 조말은 전쟁을 해볼만하다고 답했다. 내정이 공정하지 못하여 원성이 자자할 때 굳이 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켜 국민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려 하는 지도자들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심을 얻지 못한 채 외국과 경쟁한다는 것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첫 번째 북소리에 적군은 용기가 높았으나,
두 번째 북소리에 적군의 용기는 시들해졌고,
세 번째 북소리에는 이미 지쳤습니다.
아군이 그제야 응전하니 쉽게 이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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