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원로 별세, 신진 세력 부상

[현대경제신문 김영 기자] 올 한해 재계에선 원로 경영진들의 안타까운 별세 소식과 함께 젊은 경영진의 부상 소식이 유달리 많이 들려왔다. 4차 산업혁명의 큰 물결 속 재계 또한 발 빠른 세대교체에 나선 모습이다. 그런가하면 일부 재계 인사들의 경우 사법리스크에 발목 잡히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발인식 <사진=LG그룹>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발인식 <사진=LG그룹>

재계 큰 별 김우중·구자경 별세

지난 9일 대우그룹 창업자인 김우중 전 회장이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1년여 전부터 지병을 앓고 있던 고인은 생전 본인이 세웠던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명을 달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출신인 김우중 전 회장은 경기중과 경기고를 나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 한성실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만 30세였던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 45세 때인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후 그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명언 등을 남기며 그룹의 세계화를 적극 추진, 대우를 자산규모 국내 2위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한창시절이던 1998년에는 대우가 국내 총 수출액의 14%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우그룹은 IMF 외환위기와 함께 대규모 부실이 세상에 드러났고 부도덕한 기업이란 낙인이 찍히며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김 전 회장에 대해서도 17조원대 추징금이 선고됐다.

그룹 해체 후로는 베트남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인재양성 사업을 주도해 왔다.

김우중 회장이 세상을 떠나고 5일 뒤인 14일에는 구자경 LG그룹 2대회장의 별세소식이 들려왔다.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난 구자경 명예회장은 현재 LG그룹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진주사범대학을 나와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아버지 권유로 사업에 참여 1970년부터 1995년까지 LG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구 명예회장 재직 시절 LG는 전자와 화학을 필두로 우리 산업계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는 거대그룹으로 성장했다.

김우중 전 회장과 구자경 명예회장 별세 소식에 대해 재계에선 ‘한 세대의 종언’이란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그들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등과 함께 한국 산업화 1세대의 상징적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GS그룹 수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허창수 GS그룹 회장(왼쪽)과 새 그룹 수장에 오른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 <사진=GS그룹>
GS그룹 수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허창수 GS그룹 회장(왼쪽)과 새 그룹 수장에 오른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 <사진=GS그룹>

세대교체 GS, 교체 준비 한화

지난 3일 GS그룹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용퇴 소식을 전했다.

이날 허 회장은 그룹 수장에서 물러나기로 했으며, 후임으로 막냇동생인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을 지목했다.

허창수 회장은 “글로벌 기업 도약을 위한 안정적 기반을 다진 것으로 나의 소임은 다했다.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혁신 리더십을 갖춘 새로운 리더와 함께 빠르게 변화하는 사업 환경에 대응해 세계적 기업을 향해 도전하는데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시기”라고 용퇴사유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선 GS그룹의 사실상 창업주였던 허창수 회장의 사임에 대해 ‘용기 있는 선택’이라 평가하면서도 ‘의외의 결정’이란 의견들이 나온다.

허창수 회장은 2004년 LG그룹 구씨와 동업관계를 청산할 당시 허씨 집안 대표로 협상을 주도했고, 이듬해 출범한 GS그룹의 1대 회장으로 취임 오늘날 GS을 만든 장본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허태수 신임 회장에 대해선 2007년부터 GS홈쇼핑을 이끌며 글로벌 감각과 리더십, 미래 비전 제시 능력 등을 충분히 입증해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큰 형인 허창수 회장보다 9살 어리다는 점에서 다음 세대와 연결고리 역할을 무난히 해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와 관련 GS그룹은 이번 인사를 통해 경영진 세대교체 방침도 분명히 했다.

허창수 회장의 넷째동생이자 지난 10여 년 간 GS건설을 책임져 온 허명수 GS건설 부회장이 상임고문으로 물러났으며, 허창수 회장 사촌동생이자 50대인 허연수 GS리테일 사장이 부회장으로 허 회장 아들이자 40대인 허윤홍 GS건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특히 허윤홍 신임 사장의 경우 내년부터 GS건설 내 신사업 추진 업무를 책임지며, 차기로서 경영능력을 점검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 또한 올 한해 김승연 회장 자제인 오너 3세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을 본격 착수했다.

지난 11월 한화는 방산 및 IT서비스 융합계열사이자 군수사업체인 한화시스템을 상장했다.

한화시스템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그룹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52.91%)·헬리오스에스앤씨(32.61%)·에이치솔루션(14.48%) 등이 구주 100%를 갖고 있다.

이 중 비상장사인 에이치솔루션을 한화 오너가 3형제가 지분 100% 보유하고 있다. 에이치솔루션 지분율은 김승연 회장 첫째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가 50%로 가장 많고 둘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와 셋째 김동선씨은 25%씩을 보유 중이다.

업계에선 한화 3형제가 한화시스템 상장 차익을 지주사인 ㈜한화 지분 매입에 활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한화 3형제는 ㈜한화 지분을 김동관 전무 4.44% 김동권 상무・김동선씨 각 1.67%씩 보유 중이며 에이치솔루션을 통해 4.20%를 더 가지고 있으나,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선 지분 확대가 필요하다.

한화시스템 상장이 경영권 승계작업의 시작점이 될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2년 전 5만원대였던 ㈜한화 주가가 최근 그 절반 수준인 2만5천원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 또한 한화 3형제의 지분 매입 시도 가능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일각에선 내년도로 예상되는 한화종합화학 상장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회사는 에이치솔루션의 손자회사다.

이와 관련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화시스템과 한화종합화학 상장 모두 에이치솔루션 가치 증대를 의미한다”며 “한화 3형제가 지분 매입 또는 주식 교환 등을 통해 ㈜한화 지분율을 늘리는 건 당연하며 시기가 관건”이라 말했다.

파기환송심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
파기환송심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

국정농단 굴레 못 벗은 이재용

국내를 넘어 전 세계 전자업계 1등 사업자로 불리는 삼성전자의 오너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리스크에서 올해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8월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정농단’ 사건 핵심 인물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순실씨 등의 2심 재판에 대해 전부 파기환송심을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 혐의와 다른 공소사실을 합쳐 형량을 선고한 것이 위법하다는 점을, 이 부회장은 최씨 측에 건넨 뇌물액과 횡령액이 2심 때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재심이 결정됐다.

특히 대법원은 이 부회장에 대해 2심 재판부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정유라 말 구입액’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등을 문제 삼았다.

2심은 삼성이 대납한 정유라 승마지원 용역 대금 및 영재센터 지원급에 대해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았거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뇌물이 아니라고 봤으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말 구입액 자체가 뇌물에 해당하고 영재센터 지원금도 삼성의 경영권승계 현안과 관련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지급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이 부회장의 최종 형량은 2심(파기환송심) 재판을 통해 결정된다. 재계에선 기존 2심 때보다 인정된 범죄혐의가 늘어났다는 점에서 형량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선 재구속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1조원대 재산분할 소송을 앞둔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SK그룹>
1조원대 재산분할 소송을 앞둔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SK그룹>

1조 원대 이혼소송 휘말린 최태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아내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상대로 제기한 이혼소송이 1조원대 재산분할 소송으로 확전됐다.

지난 4일 노소영 관장은 지난해 1월 남편이 제기했던 이혼소송 관련 재산분할 맞소송으로 응대했다. 노 관장은 위자료 3억원과 함께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 중 42.29%(3일 종가 기준 1조4천억원 수준)를 분할해 달라고 요구했다.

노 관장은 본인의 SNS 계정에 올린 글을 통해 “지난 세월은 가정을 만들고 이루고 또 지키려고 애쓴 시간이었다”라며 “힘들고 치욕적인 시간을 보낼 때에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제는 그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됐다. 그 사이 큰딸도 결혼하여 잘 살고 있고 막내도 대학을 졸업했다”며 “그래서 이제는 남편이 저토록 간절히 원하는 ‘행복’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노소영 관장이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한 배경과 관련 업계에선 이해할만 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SK그룹 성장기 당시 노 관장 친정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 당시 정권의 상당한 비호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다만 노 관장의 요구조건대로 재산분할 소송이 진행될지에 대해선 의문이 큰 상황이다. 30년이 넘은 정경유착 사안에 대한 사실관계 입증이 쉽지 않고, 소송 과정에서 양측 모두 심각한 이미지 훼손이 우려되다 보니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가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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