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산업1팀장.
김영 산업1팀장.

[현대경제신문 김영 기자] 최근의 한일관계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최악 상황에 놓여있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일본사회 우경화 심화에 따른 아베 정권의 몰상식한 만행이 도를 넘어서고 있고, 그런 일본에 맞선 우리 국민들의 반일(反日) 투쟁은 100여 년 전 독립운동을 방불케 할 만큼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일본은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존재라 할 수 있겠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문화·경제적으로 앞서 있다 근대화 과정을 겪으며 일본에 역전 당했고 이후 식민지배란 굴욕까지 겪다 보니 반일 감정이 민족정신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팔아넘긴 친일(親日)부역자들이 해방 이후 오히려 더 잘사는 모습을 보이고 군사정권 시절 반공(反共)이란 국가적 이데올로기 앞에 적극적으로 반일을 외치기 어려웠다는 점 또한 최근의 반일 투쟁 확산에 영향을 줬다고 본다.

다만 우리가 동아시아에서 계속 살아가야하고 일본이 지도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상 두 나라간 정치·외교·경제·군사적 연결고리는 끊을 수 없고 양국간 극렬 대치만 불러 올 반일이 한일관계 해결의 열쇠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반일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의 감정과 체력만 낭비하고, 일본과 연관됐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진 않을지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문제 원인이 아무리 일본에 있다 한들 그에 대한 우리의 대처가 그들과 똑같아선 안 된다고 본다.

그렇기에 이쯤에서 극일(克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 우리 정부는 사회 곳곳의 반일 움직임에 맞서 ‘일본을 이기자’란 뜻의 극일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권 특성상 극단적 반일은 부담이 되다보니 중재안 성격의 극일을 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극일은 민족 내면에 잠재한 일본 콤플렉스를 스스로 극복하고 일본보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 내자란 의미를 내포, 건설적 국가 건설을 위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다만 당시 극일은 한일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처음부터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 일본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었다. 이제 막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개발도상국 한국이 어떻게 비벼 볼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에 극일은 ‘일단은 일본을 쫓고 경우에 따라 경쟁하자’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일본 따라하기가 극단적 반일주의자들에게 친일로 여겨지기도 했다.

현재 우리는 과거와 달리 일본과 경쟁을 해볼 수준까지는 경제가 성장했다. 특정 부분에선 이미 일본을 크게 앞지르기도 했다.

반일이 한일관계 해결의 정답이 되기 힘들다면 일본보다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극일에 좀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을 가져보는 것 또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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