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여섯가지 반역(六逆)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大義滅親 대의멸친
큰 의를 이루기 위하여 친족이라도 버린다. (春秋左氏傳)
위나라 대부 석작이 패군(悖君) 주우와 함께 자기 아들을 처단한 일을 말함

위(衛)나라는 주나라 이왕 때 뇌물을 써서 후작(侯爵)이 되었고 뒤에 주 유왕이 죽은 뒤 융적을 물리칠 때 출동하여 공을 세운 보상으로 공작(公爵)으로 승격했다. 본래 주나라 창업자 문왕의 아들인 강숙의 나라이므로 주나라와는 형제 나라다. 공작을 받은 위나라 군주는 무공(武公)이다. 무공은 희후(釐侯)의 둘째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맏아들 공백이 군주가 되었는데, 둘째 아들 화(和)가 이복인 형을 몰아내고 무공이 된 것이다. 희후는 생전에 둘째 아들 화를 무척 사랑하였다. 후위를 첫째에게 물려주는 대신 둘째에게는 많은 재물을 남겨주었는데, 화는 그 재물로 무사들을 모아 형을 몰아냈다.

집권 과정이야 어쨌든 무공이 다스리는 동안 위나라는 평온했다. 무공이 59년에 죽고 아들 장공이 나라를 물려받았다. 장공은 즉위 5년에 제나라 태자의 누이 장강을 아내로 맞았다. 그녀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 장공은 진(陳)나라 여인을 다시 부인으로 맞았고 우여곡절 끝에 진 부인의 동생에게서 아들 둘을 얻었다. 장공은 맏아들 완(完)을 부인 장강의 양아들로 삼게 하여 태자에 봉했다.

그런데 장공의 애첩 하나가 또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의 이름은 주우(州吁)였는데, 병술을 즐겨 익히며 전쟁놀이를 좋아했다. 장공은 주우를 총애하여 군사(軍事)의 일을 맡겼다. 주우는 교만하여 자주 말썽을 일으켰다. 대부 석작이 참다못해 장공에게 간했다.

“주우가 군사 방면에 조예가 있긴 하나 첩의 소생입니다. 그에게 군사를 맡긴다면 장차 큰 화근이 될 것입니다.”

장공이 듣지 않자 주우는 더욱 강력하게 주장했다.

“대저 천한 자가 귀한 이를 방해하고 젊은이가 늙은이를 능멸하며 소원한 자가 친근한 자를 이간하고 신참자가 고참을 이간하며 지위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압력을 가하고 음탕한 자가 의로운 자를 파괴함은 이른바 여섯가지 반역(六逆)이라 하는 것입니다(且夫賤妨貴 少陵長 遠間親 新間舊 小加大 淫破義 所謂六逆也).”

그래도 장공은 주우를 아끼는 마음에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석작의 아들 후가 주우와 어울려 다니므로 석작이 꾸짖었다. 석후는 아예 집을 나가 주우 무리와 함께 기거했다.

장공이 죽고 완이 뒤를 이어 환공이 되었다. 석작은 이때부터 건강문제를 핑계하고 정치에서 물러났다. 주우 무리의 행패가 심하므로 환공이 그의 직위를 박탈하자 주우는 무리를 이끌고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나라 밖에 기거하는 주우 곁에는 비슷한 사연을 지닌 반역자들이 모여들었다. 주우는 정(鄭)나라에서 도망쳐온 단(段)과 어울려 한 패가 됐다. 정나라 장공의 친동생으로서 자신을 편애하는 어머니 무강을 믿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쫓겨난 단이 바로 이 사람이다. 주우는 패거리를 규합하여 위환공을 기습했다. 환공이 죽고 환공의 동생 진(晉)은 형(邢)이란 곳으로 달아났다.

목적을 달성한 주우는 이제 단의 은혜를 갚고자 정나라를 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아직 민심이 그를 따르지 않으므로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다. 참모인 석후가 그 아버지 석작에게 찾아가 상의하니 석작이 말했다. “백성의 복종을 얻으려면 먼저 주우의 지위에 대하여 천자의 승인을 얻어야 할 것이다. 마침 진(陳)나라 군주가 천자와 가까우니 먼저 가서 상의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위나라 대부 석작의 영향력은 인근 나라에 두루 미치고 있었으며 진은 위나라의 오랜 우방이다. 더구나 진나라는 주우가 죽인 환공의 어머니 나라가 아닌가. 주우 일행이 떠나기 전에 석작은 진후에게 먼저 편지를 보냈다. “나도 늙어 이제 능력이 없습니다. 이 두 놈은 실로 임금을 죽인 자들이니 귀국에서 처치해주시기를 감히 부탁드립니다.” 석작의 조언에 따라 진나라로 찾아간 주우와 석후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석작이 무사들을 보내 주우를 처단하고 또 가신을 따로 보내 석후를 처치했다. 그동안 피신해 있던 공자 진이 돌아와 환공의 뒤를 이었다. 그가 선공(宣公)이다.

이야기 PLUS
위나라의 명망 높은 대부 석작에게는 두 가지 아픔이 있었다. 신하로서 왕이 시해되는 불충을 목격해야 했고, 아버지로서 아들의 거역을 당하는 불효를 겪어야 했다. 그 두 가지 해로움을 일거에 해소하는 길은 단 하나였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내리사랑은 흔히 맹목적이라 하지만, 석작은 역시 냉철했다. 처음에는 화근을 끊어보려고 장공에게 하기 어려운 충고를 했지만 듣지 않자 침묵하면서 철저히 자신을 감추었다. 불효 불충한 천하의 패륜적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분노를 누르고 칩거하다가 마침내 일을 꾸밀 수 있는 기회가 오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일사천리로 두 패륜자들을 제거하고 역사를 바로잡았다.

때때로 대의(大義)란 자잘한 인의(仁義)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대의를 위하여 혈육의 정이라는 작은 의리쯤 희생할 수도 있는 것은 그가 대인(大人)이기 때문이었다. 군주인 장공은 막내아들에 대한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일을 그르쳤고, 신하인 석작은 아들에 대한 사사로운 정을 냉정히 끊어냄으로써 일을 바로잡았던 것이다. <춘추 좌씨전>에 이런 말이 있다.

“석작은 순수한 신하다. 주우를 미워한 나머지 아들 석후도 죽여버렸다. 대의를 위하여 친척이라도 죽인다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 아니겠는가(大義滅親 其是之謂乎).”

“천한 것이 귀한 자를 방해하고, 젊은이가 늙은이를 능멸하며. 먼 사람이 가까운 사람을 이간하고, 신참이 고참을 이간하며, 낮은 자가 윗사람을 압박하고, 음탕한 자가 의를 파괴함은 반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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