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희 두레정치연구소 대표
한창희 두레정치연구소 대표
뱃머리를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인생항로가 달라진다.

필자와 술만 한잔하면 인생의 뱃머리를 잘못 잡았다고 ‘한창희의 3대실수’를 거론하며 술맛을 돋우는 고약한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친구말로는 필자가 정치를 하겠다고 뱃머리를 정치로 돌린 것이 첫 번째 실수란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아이디어도 풍부한 친구가 정치한답시고 열정을 낭비하며 백수처럼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 안타깝단다. 다른 직종에서 일을 했으면 벌써 두각을 나타내고, 사회에 엄청난 기여를 했을 거라며 격려(?)겸 핀잔도 준다.

둘째, 정치를 하려면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해야지 멍청하게 고향으로 내려와 정치를 하느냐는 것이다.

예수도 고향에서는 인정을 못 받아 기독교가 없고 유태교만 있단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에도 불교는 없고 힌두교만 있단다. 공자가 왜 주유천하를 했냐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고향은커녕 부인의 인정도 못 받았단다. 사실 악처하면 소크라테스의 부인을 우선적으로 꼽는다.

4대성인도 고향에서 인정을 못 받는데 하물며 한창희 네가 뭐라고 고향에서 인정을 받겠다고 귀향하여 정치를 하느냐는 것이다.
필자가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잘 아는 지역사람이 다 사라져도 대한민국 인구는커녕 지역구 인구도 변동이 없단다. 그 사람들을 믿고, 굳이 고향에서 정치를 시작하겠다고 고집한 것이 두 번째 실수라는 것이다.

또 ‘정치 학도답게 정도(正道)로 정치를 하겠다.’는 순진한 신념이 세 번째 실수란다. 정치를 하려면 재래식으로 적당히 정치자금을 만들어 베풀면서 정치하라는 것이다. 잘난 척하고 ‘1만원후원하기, 희망펀드’를 발행하여 투명한 정치자금으로 정치하겠다는 것이 우리정치풍토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이 되고 나서도 청렴하게 일만 열심히 하면 누가 알아주느냐는 것이다.
남들처럼 적당히 정치자금을 슈킹하여 주위사람도 챙겨주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일 열심히 하고, 시장시절 일한 업적이 많다는 것은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정치하려면 들키지 말고 적당히 정치자금을 마련, 눈치껏 사용하라는 것이다.
당신같이 순진한 사람은 우리 정치체질에 맞지 않는단다.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부정한 정치자금이 횡행하는 우리정치풍토에서 필자가 고생만 한다고 보고 속상해서 퍼붓는 친구의 말이 고맙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가족이나 주위사람에게 새삼 미안한 생각도 든다.

국가관과 정의감, 희생정신, 청렴등 고상한 말로 자위하거나 변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정치풍토가 타락해도 정도(正道)로 일하려고 하는 돌연변이 같은 반면교사(?)도 필요하지 않을까.

고향에서 인정받기 힘들다고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인정해주는 사람도 많다. 벌써 시장으로 2번 선출해주었다. 맡겨준 시장자리를 지키지 못한 건 나 자신이다. 아직도 택시를 타면 택시비도 받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고, 식당에서 밥값을 내면 받지 않으려는 아주머니도 있다. 길에서 만나면 건강 잘 챙기라고 격려하는 할머니는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 친구는 간과한 것이 있다. 고향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고향은 인정받기위해서가 아니라 무조건, 무한대로 봉사하는 곳이다. 누구나 고향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고향사람들은 밖에서 성공하면 자상스럽게 생각하지만 고향에 돌아오면 똑같은 형제로 생각할 뿐이다. 금의환향하면 잠시 반겨줄 뿐이다. 추앙할거라고 착각하면 오산이다.

그 친구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이 좋다. 집사람도 이해를 하고, 아이들도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이들이 엉뚱하게 빗나가 속 썩이는 일도 없다. 나는 축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밤에 잠자기 전과,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기도를 하는 습관이 있다. 좌선도 있고 와선도 있듯이 자세와 상관없이 누워서도 기도를 한다. 요즘엔 기도대로 되는 빈도가 잦아졌다. 감사할 따름이다.

스피노자는 세계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였다. 희망을 가지고 묵묵히 가다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등산할 때 정상을 밟았을 때의 기분도 상쾌하지만 친구들과 담소하며 등산하는 과정도 즐겁다. 케이블카를 제쳐두고 등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인생은 목표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아름답고 정의로운 것이 더 소중하다고 본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