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며느리감 가로챈 노 혜공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履霜堅氷至 이상견빙지
서리를 밟았다면 곧 굳은 얼음이 얼게 됨을 생각하라. (<周易> 地卦)
어떤 징후가 보이면 머잖아 큰일도 닥칠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

노(魯)나라에서는 좀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군주 혜공이 아들을 결혼시키려고 송(宋)나라 공주를 데려왔다가 맘이 바뀌어 자기 첩으로 취한 사건이다.

본래 혜공의 본부인은 자식을 낳지 못했고, 부인의 시녀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식(息)이라고 하였다. 첫아들이긴 하나 시녀의 자식이므로 서자의 신분이었다. 식이 장성하였을 때 송나라와 중매가 성사되었다. <춘추좌전>에 따르면, 송나라 무공이 딸을 낳았는데 그 손바닥에 ‘노나라 부인이 된다’(爲魯夫人)는 글자가 쓰여 있어 노나라와 혼사를 맺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중자(仲子)였다.

그런데 그 딸의 미모가 출중했던 모양이다. 며느리 될 공주의 인사를 받은 혜공은 그만 마음이 변하여 아들 대신 자기가 신랑이 되고 말았다. 늙은 왕은 젊은 부인에게서 곧 아들을 얻었다. 혜공이 아들 이름을 윤(允)이라 하고 중자를 본부인의 자리에 앉혔다. 자연히 정실의 자식인 윤이 세자가 되었다. 황혼의 즐거움도 잠시, 이미 나이가 많았던 혜공은 재위 46년에 죽었다. 윤이 아직 어린 아기였으므로 서형(庶兄)인 식이 섭정을 맡으니, 그가 은공(隱公)이다. 은공은 서자로 자라 그랬는지 조심성 많고 겸손한데다 성품이 온후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에게 신부를 빼앗겼으나 원망하지 않았고, 어린 이복동생을 대신해 권좌를 맡았으나 그것을 빼앗아가질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권력의 자리란, 예나 이제나 욕심 없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다. 은공이 정사를 맡은 지 10년이 넘었을 때 혈육인 공자 휘(揮)가 접근해 간교한 계략을 내놓았다.

“백성들이 공을 좋아하기에 공이 지금 군주의 자리에 오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세자 윤(允)이 실제 주인으로 버티고 있으니 공의 지위도 안전하지가 않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제가 공을 위하여 윤을 죽일 터이니, 공께서는 온전한 군주가 되십시오.”

“왜 그런 일을 하려고 하는가?” 은공이 의아하게 여기며 물었다.

“공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형님은 아버님의 맏아들로서 노나라의 정당한 주인이 되셔야 할 분이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은 둘이 있을 수가 없으니, 윤을 처리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형님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는 덧붙여 말하기를 “일이 성사된 뒤에 저에게는 재상의 자리만 보장해 주시면 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은공은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그것은 아버님의 유지(遺志)에 어긋나는 일이다. 내가 이 자리에 앉은 것은 단지 윤이 아직 어리기 때문이었을 뿐, 본래 이 자리는 윤의 것이다. 이제 윤이 장성하였으니, 나는 곧 농사짓는 땅에 집을 짓고 노년을 준비할 것이며, 윤에게 자리를 돌려줄 생각이다. 그대가 재상이 되는 것은 윤과 상의하라.”

은밀한 제안을 거부당한 휘는 출세의 기회가 수포로 돌아간 것은 둘째 치고, 장차 태자가 왕위에 올라 오늘 일을 들으면 자기 목숨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기왕 저지른 일, 완벽하게 수습하여 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휘는 곧 태자에게 달려가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은공이 그동안 선량한 섭정으로서 나랏일을 잘 돌보았습니다마는, 그동안 권력에 맛이 들었는지 이제 태자마마에게 왕위를 돌려줄 날이 가까워오자 다른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오늘 태자마마를 살해하겠다는 말을 듣고 의분을 참지 못해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이대로 앉아서 당하시겠습니까?”

젊은 태자는 노회한 중신의 가식을 눈치챌만한 식견이 없었다. 휘가 윤을 위하여 자기 손으로 은공을 살해하겠다고 제안하니 그저 고마워하면서 허락했다. 휘가 계략을 써서 은공을 죽이니 윤을 즉위하여 환공(桓公)이 되었다.

-이야기 PLUS

누구와 반역을 논한 사람은 그 순간부터 편안할 수가 없다. 다행히 상대의 공감을 얻어 함께 반란에 성공한다면 천하를 자기 손에 넣을 수 있지만, 그 일에 실패하면 역적이 되어 가장 무서운 형벌로 고통을 당하고 자기 일족과 함께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적모의를 듣기만 한 사람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모의를 듣는 순간 그들의 은밀한 계획을 이미 알아버린 사람으로서, 본의와 상관없이 ‘위험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동참하지 않으면 ‘잠재적 밀고자’가 될 것이고, 그런 존재를 놓아두는 것은 공모자들에게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역모를 꾸민 공자 휘는 역시 잔꾀에 능했다. 시간을 끌지 않고 즉시 그 반대편으로 달려가 자기 음모의 ‘유일한 증인’을 제거함으로써 자기 목숨을 구하고 출세의 목적도 달성했다. 은공이 휘의 간계를 거절하기로 했다면 마땅히 그 죄를 물어 태자에 대한 충성심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후일 노나라 시인 염옹이 이 일을 상고하며 한탄하는 시를 지었다. ‘발호장군이 전횡을 일삼으니(跋扈將軍素橫行) 서리가 밟혔는데도 얼음 얼 것을 경계하지 않다니(履霜全不戒堅氷), 시골에 집만 지어놓고 편히 늙지도 못했네. 억울한 집 이야기 누구에게 털어놓을꼬.’

‘서리가 내리면 얼음이 언다’(履霜堅氷至)는 말은 <주역>의 괘사 중에 있는 말이다.

한편 휘의 간계를 받아들여 형 은공을 죽이도록 허락한 환공의 최후는 어땠을까. 잔꾀가 많은 휘를 재상으로 삼고 의지하니 그 장래가 밝았을 리 없다. 몇 번 세상의 비웃음을 사더니 마침내는 아내의 불륜으로 인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다음에 이어질 얘기다.

“허락하신다면 공을 위하여 태자를 죽일 터이니, 공께서는 온전한 군주가 되십시오.”
은공이 거절하자 휘는 곧장 태자에게로 달려갔다.
“은공이 흑심을 품어 그대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대로 당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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