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 산업부 차장대우.
성현 산업부 차장대우.

정부와 삼성이 위험한 거래를 했다. 서로의 애로사항을 해소시키는 위험한 거래다.

삼성은 8일 “앞으로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신규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투자 목적으로 청년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를 꼽았다. ‘삼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조화시켰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5세대(5G) 통신, 바이오에 투자한다고 했지만 어느 분야에 얼마를,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투자하겠다는 알맹이가 없다.

‘선언적인 발표’라는 커뮤니케이션팀 직원의 설명이 전부다. 속시원한 대답이 아닐 뿐더러 급하게 준비한 티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 발표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공장에서 만난지 이틀만에 나왔다. 김동연 부총리와 이재용 부회장의 조우는 만남 이전부터 논란이 됐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 신분인데 그런 그를 경제부총리가 공개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현정부가 이 부회장의 죄를 용서해주는’ 시그널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또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큰 역할을 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분식회계 의혹으로 금융감독원의 감리를 앞두고 있으며 삼성 금융계열사들은 삼성전자 보유지분 탓에 금융당국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이에 청와대가 ‘정부가 재벌에 투자·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며 김 부총리는 이례적으로 본인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대기업에 의지해 투자나 고용을 늘리려는 의도도, 계획도 없다”고 반박했다.

현정부는 그만큼 일자리 창출 부담을 안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11일 발표한 6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 6월 취업자는 2천712만6천명으로 1년 전보다 10만6천명(0.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취업자 증가 폭은 올해 2월 10만4천명을 기록하며 1년9개월 만에 10만명대로 떨어졌다. 이후 3개월 연속 10만명대를 맴돌다가 5월에는 10만명선마저 무너졌다. 6월에는 10만명을 넘었지만 여전히 부진하다. 금융위기 이후 가장 좋지 않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일자리 창출을 강조해온 정부에는 큰 악재다.

그래서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의 만남은 부적절했다.

경제수장으로서 삼성의 현안을 듣고 규제 개혁을 논의하고자 했다면 굳이 뇌물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을 만날 필요는 없었다. 이 부회장의 의중을 잘 알고 있는 전문경영인이면 충분했다.

결국 결과적으로 삼성은 선물 보따리를 풀었고 정부는 한시름 놨다. 묵시적 청탁이라고까지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삼성이 사회적 기대가 아닌 정부의 기대에 부응한 게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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