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금융부 팀장
김영 금융부 팀장

[현대경제신문 김영 기자] 정부 차원의 소멸시효완성채권 소각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민간 금융사까지 동참해 업체별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조 단위 시효만료 채권을 소각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시효만료 채권의 소각 필요성을 밝혀 왔다. 법적 채무 부담이 사라진 시효만료 채권에 대해 금융사들이 추심을 포기하지 않아, 서민들의 빚 부담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상당수 금융기관에서는 원리금 연체 발생 후 5년이 지난 ‘소멸시효완성채권’에 대해 소송 등의 방법을 동원해 그 시효를 연장해 왔다. 시효가 20년가량 되는 장기 채권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가계부채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도 금융사들은 소액의 이자라도 받을 요량으로 시효만료 채권 소각에 부정적 또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연체 기록이 삭제되지 않은 채무자들은 정상적 금융거래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서민들의 경제적 재기를 막는 약탈적 금융의 일례”라는 힐난이 쏟아진 이유다.

그렇기에 이번 시효만료 채권 소각에 대한 여론은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다.

야권 및 금융권 일각에서 “빚을 지고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도 있으나, 금융회사가 사회공동체를 우선시 하는 것 자체는 나쁠 것도 없어 보이다.

오히려 천민자본주의로 지적 받아온 우리 사회의 그릇된 발전 행태와 이윤만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해 온 금융사들의 태도가 이번 일을 계기로 변화되길 기대해 본다.

다만 이번 채권 매각과 관련 다소 걱정스런 부분도 존재한다.

새로운 관치금융의 출현 가능성이 그것이다. 금융위원장 주재 간담회 이후 민간 금융사들은 즉각 시효만료 채권 소각 동참 의사를 밝혔다. 정부 시책에 민간 기업이 공감을 표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관치금융의 재현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모 금융사 관계자 역시 “정권 의지가 아니었다면 민간 금융사들이 줄지어 채권 소각에 동참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채권 소각에 따른 금전적 부담 보다는 정부가 지시하고 민간 금융사가 뒤따르는 이 같은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되는 건 아닌지가 더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과거 정부에서는 관치를 통해 낙하산 인사를 금융기관 임원으로 내려보내고 부정한 청탁 내지 공정치 못한 금융지원 등을 일삼았다. 현 정부의 시효만료 채권 소각이 누군가의 사익 추구를 위한 관치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금융정책 추진에 있어 관치의 형태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무시한 정책 추진은 또 다른 분란의 불씨를 낳을 수도 있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아직 정부의 역할 범위와 시장 참여 정도와 관련해 구성원 간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마땅히해야 할 일은 해야겠지만 그 이상을 관여하는 건 시장질서를 흔들 뿐 아니라 또 다른 적폐를 낳을 수도 있다.

부디 이번 사례가 관치금융 부활의 계기가 되지 않길 재차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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