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기 산업부 기자.
최홍기 산업부 기자.

밸런타인데이가 초콜릿을 전하며 남녀간의 애정을 확인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부담스런 연례행사로 변질되고 있다.

여전히 초콜릿만 주고받는 연인도 있지만 일부는 밸런타인데이 선물의 가격이 상대방에 대한 애정의 척도인 것처럼 고가의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초년생 김모(24)씨가 처한 상황도 비슷하다. 단순히 초콜릿만 받을 줄 알았는데 여자친구가 수십만원짜리 선물을 같이 준다고 ‘선전포고’하면서 남모를 고민에 빠졌다. 다음 달 있을 화이트데이를 생각하면 선물을 받고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어 답답하다는 것이다.

유통업계는 이런 연인들을 위한 타깃으로 고가의 한정 기획상품을 경쟁하듯 쏟아내고 있다.

매년 밸런타인데이 시즌이 되면 식음료업체와 유통업체 등은 초콜릿 상품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친다.

최근에는 초콜릿뿐만 아니라 명품지갑, 시계, 보석류 등 고가의 선물이 밸런타인데이 열풍을 타고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애먼 연인들의 지갑을 노리고 있다.

실제 백화점 등 일부 매장에서는 밸런타인데이 기획상품으로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짜리 명품을 내놓고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고가의 한정 상품이지만 실제 수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최근 밸런타인데이 시즌을 맞아 고급 초콜릿 외에도 명품 브랜드 상품을 찾는 고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불황이지만 특정 명품 선물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할 수 있는 프로모션으로 연인들을 유혹하는 고가 마케팅은 이미 수년전부터 계속돼왔다.

다만 요즘은 고가의 명품 선물이 당연하다는 듯이 밸런타인데이 기획상품으로 다수 등장하면서 주고받는 사람들의 부담감이 커졌다는 게 문제시되고 있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선물을 주고받는 연인 사이에서 더 부담이 되는 이유는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 관계성과도 연결된다.

밸런타인데이 딱 1개월 뒤면 화이트데이가 기다리고 있다. 밸런타인데이 기획상품은 그대로 화이트데이 기획상품으로 이어진다.

요즘이야 남녀불문 서로 주고받는 트렌드가 있다지만 유통업계 입장에서는 이만한 특수도 없다.

서울에 위치한 한 백화점에서 고가의 선물을 집어든 여성 고객은 “한두푼도 아니고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한 기념일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출했다”면서 “화이트데이에는 내가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같이 있던 다른 일행은 “주변 지인들은 우리보다 더 비싼 선물을 샀다”며 “요즘에는 같이 주고받는 트렌드도 있으니 상대방도 그에 맞는 선물로 다시 화답해주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결국 선물을 받은 연인은 그에 맞는 고가의 선물을 되돌려줘야하는 게 공식처럼 일반화되고 있다.

그 근원도 모호한 밸런타인·화이트데이가 고가의 선물을 주고받아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기념일처럼 돼버렸다.

고가의 기획상품을 내놓는 유통업계를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이른바 ‘능력’이 되는 소비자의 소비를 문제 삼을 생각도 없다.

단지 남녀간의 사랑에 값을 매겨야 하고 대가성 선물이어야 하는 불편한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이제는 밸런타인데이가 연인들의 즐거운 이벤트 데이에서 부담스럽기만 한 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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