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지난 연말부터 불어 닥친 탄핵바람에 대한민국은 좌표를 잃고 표류하고 있다. 새해를 맞이했지만 국민은 묵은 때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온갖 조작과 유언비어 속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조차 모르고 정신을 놓고 있다. 

대통령탄핵이 헌재의 손에 의해 조만간 결정이 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태가 종결된다는 보장도 없어 보인다. 엉킨 실타래는 날이 갈수록 꼬여가고만 있어서다.  

한마디로 이 나라에는 믿을 구석이 단 한군데에도 없다는 말이다. 사법부의 지엄한 심판도 정치적 잣대로 들이대면 그 결과가 이상하게 굴절된다는 것에 국민은 익숙해진지 오래다.

세상에 없는 공정한 판결도 부지불식간에 시정잡배가 내린 판단만도 못한 것으로 둔갑되는 게 대한민국사법부의 신세이다. 탄핵은 대통령중심국가에서 최고 권력자에게 내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엄중한 심판이다. 사법부의 가장 막중한 심판인 동시에 엄청난 부담이 수반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국민은 마땅히 헌재의 심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볼 수밖에 없어야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무조건 승복해야한다. 이것은 그 누구의 승패가 달린 사안이 아니다. 여당이 지고 야당이 이기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아니기에 그렇다.

대통령은 어느 한편의 권력자가 아니다. 탄핵에 몰린 대통령을 둔 국민모두의 부끄러움이고 어쩌면 잘못이기 때문이다. 사안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국민은 무엇을 했는지 깊이 반추하고 반성해야한다. 그것이 민주국가의 국민 된 도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치켜뜨고 살폈어야할 언론도, 언필칭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도, 시퍼런 칼을 치켜들고 눈을 부라린다는 사법정의도 이 땅엔 없었다. 아예 ‘없었다.’는 말밖에 쓸 용어가 마땅찮다. 대한민국은 지난 4년여를 어둠속에서 헤매기만 했다는 말이다.

국민은 이미 두 패로 갈라졌다. 탄핵을 해야 한다는 쪽과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패로. 거기에 이념전(理念戰)이 판세를 더하는, 소위 색깔론을 내세워 세를 규합하고 있는 판국이다. 정말 이 정국의 향배와 이 나라가 지금 어디로 흘러가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탄핵여부가 결정되기도 전에 이미 정국은 대선전에 돌입했다. 여야가 비수를 꺼내들고 상대의 목을 겨누고 있는 형국이다. 적어도 탄핵대상인 대통령보다는 이 나라를 잘 이끌어 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갈라진 국민은 이들의 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많이 속아봤기 때문이다. 또 이 와중에 그런 소리가 제대로 들릴 턱도 없다. 

당장 질곡에 빠진 민생을 어떻게 위무한다는 말은 없다. 정권을 잡으면 청년실업도 해결하고, 골병든 경제도 고칠 것이라고 빈 공약만 해댄다. 그러면서 경쟁대상이 될 유력자를 골라 흠집을 내는 구시대적 선거전에 골몰하고 있다. 

색안경을 끼고 상대를 몰아 부치고 있다. 어마어마한 선심공세로 유권자의 헛배를 불리는 자도 있다. 방법은 결국 세금을 더 거둬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만이 이런 정책을 펼 것이라고 유세를 떤다.

그들의 눈에는 국민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오직 덩그런 권력의 자리에만 눈에 불을 켠다. 촛불과 태극기부대를 오가면서 꿈에 그리는 자리차지하기에 연일 바쁜 게 그들의 일과가 된지 오래다. 그리고 거리에 넘치는 인파가 자신들의 힘으로 이루어낸 국민의 소리라고 아전인수 한다. 민생을 무지몽매한 세 규합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게 여실하다. 그러나 국민은 격랑을 일으키는 주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람에 일렁이는 격랑이 상대를 탄핵이라는 벼랑 끝까지 몰고 갔다고 미소 지을 때가 아니다. 그 격랑이 바로 권력지상주의를 선택한 자들의 가슴팍을 내리누를 날이 미구에 올 것쯤은 알아야 한다. 

그런 새 지도자를 국민은 기대한다. 권력지상주의자의 파도타기를 국민은 섬세하게 뜯어보고 있다. 민생의 격랑과 그 향방이 두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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