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경제가 학자의 학설(學說)대로 흘러가던 시대는 지났다. 경제가 과학이던 시대도 더불어 지났다. 사회심리학적 변화에 따라 천태만상의 조화를 부리는 것이 경제의 속성이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진지도 오래이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경제학자들의 주장대로 정부의 예산운용을 쥐고 흔들어도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경제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당국자들은 적이 당황해하고 울상을 짓기 일쑤다. 

그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국민들에게 마땅한 이유를 설명해야할 책임이 있다. 일종의 변명이지만 핑계거리를 유효적절하게 잘 들러대는 자가 소위 유능한 당국자가 되는 것이다. 테크노크라트의 필수소양인 셈이다. 

안정되지 못한 민주주의 국가에가 겪는 진통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예상할 수 없는 경제적 변화양상이다. 예측이 불가해한 경제적파고로해서 부침이 심한양태를 겪는 과정에서 민생은 정치적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체질로 굳어지기 십상이다.

한국의 민생경제의 특성을 이렇게 진단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독특한 민생체질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정치경제적 양태변화라는 사회학적문제로 접근해서 정책적 처방에 따라 임상에 적용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아니나 다를까, 작금의 내란수준의 정치적 소요가 향후 대한민국의 변화를 시사해주는 바가 없지 않다. 한국적 민주주의발전과정에서 흔히 손가락질 받기 일쑤인 천민자본주의의 실체가 이번 정치적 소요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사태의 꼬투리는 말(馬)에서 연유되었다. 그것도 돈 많은 강남아줌마의 20대 초반의 딸이 방아쇠를 당긴 격이 되었다. 권력의 최정상을 마음먹은 대로 움직였다던 물신주의 아줌마가 도화선이 된 것이다. 그녀의 안하무인적 생각과 행태가 생활에 급급한 민중의 마음에 불을 당긴 것이다.

물론 소수 집권부류의 뇌화부동이 불을 옮겨 붙인 몫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정치모리배들의 정쟁으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번 정쟁은 어느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국면에서도 벗어나 있다. 가릴 수도 없게 되었다. 생각과 목표가 다른 자들이 아무리 청문회를 연다 해도 흑막에 접근할 수 없어서다.

오직 국민은 안다. 누가 역적이고 충신인지를 국민은 이미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말이다. 주말이면 수많은 민생들이 좌우로 갈려 축제 아닌 축제(?)를 벌리지 않는가. 아름다운 집회, 질서 있는 집회라는 모양새로 권력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렛대는 큰 바윗돌을 가볍게 움직인다. 그것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나라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국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국민자신도 안다. 이념이 다르다는 사회주의 자들고 너무 잘 안다. 김정은도 안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적 정점이라는 청와대에서만 몰랐던성싶다. 그래서 이 지경이 된 것이리라.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이 많다는 것을 탓해서는 안 된다. 부자로 산다는 것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부자로 살되 남을 하찮게 여기지 말라는 듯이다. 말을 엄청나게 좋아하던 여자애가 남긴 SNS에 ‘돈 없는 네 부모를 탓해라’라는 말에 열 받은 민생의 딸들이 오늘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

천민자본주의를 맘껏 누리던 어미와 딸이 남긴 마지막 말이, 새 한국의 도약적 발전의 도화선 역할을 제대로 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어떤 무엇이가를 디딤돌로 해서 또 다른 대한민국의 비전을 열어야할 시점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 리더를 좋던 싫던 선택해야한다. 민중의 선택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긴요한 시점이 목전에 놓여있다. 그래서 새해는 긴박한 해인 것이다. 길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민생의 운명이 좌우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민생의 원리가 작동되는 대한민국, 그리고 그 민중이라는 것을 리더를 자임하겠는 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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