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항우와 유방④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天之亡我 非戰之罪也 천지망아 비전지죄야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못해서 망하는 게 아니다 <항우본기> 
한나라 군사에게 쫓긴 항우가 최후를 맞게 되자 스스로를 위해 변명하면서   

전세를 뒤바꾼 것은 회음후 한신(韓信)과 양(梁)왕 팽월의 공로였다. 
한신은 본래 회음땅에서 남들에게 찬밥이나 얻어먹으며 평범하게 지내던 젊은이였는데, 초나라 항량이 군사를 일으켜 회수를 건널 때 따라나서면서 풍운의 길을 열었다. 

개천에 숨은 용(龍), 소하가 알아보다  

한신은 후일 천하무적 항우를 병법으로 물리친 유일한 장수였으나, 그러한 기회를 얻기까지 거친 과정은 파란만장하여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그 일화만 해도 작은 책 한권은 될 것이나, 상세한 얘기는 생략한다. 다만 그가 한군(漢軍)의 대장이 된 이야기만 되새겨본다.

항우의 수하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한신은 스스로 유방의 진영으로 찾아갔는데, 거기서도 쉽게 기회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말단 군관으로 있다가 어떤 사건으로 처형될 위기를 맞았다. 13명의 동료가 목이 떨어지고 그의 순서가 되었을 때 한신은 큰 소리로 “한왕께서는 천하를 취할 생각이 없으신가 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장사를 이리 쉽게 죽이겠습니까?”라고 외쳤다. 책임자인 하후영이 그의 범상치 않음을 보고 처형을 중단했다. 이후 승상 소하(蕭何)와도 교유하게 되었으나 한신은 여전히 도위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한신이 마침내 기다리기 지쳐 군진을 이탈해 떠나버리자 소하가 깜짝 놀라 즉시 말을 타고 뒤를 쫓아갔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오해하여 왕에게 “승상께서 달아났습니다”하고 보고하니 한왕 유방은 팔 하나를 잃은 듯 놀라 안절부절못하였다. 

며칠이나 지나 소하가 돌아와 급히 떠나야 했던 이유를 보고하자 왕은 의아해하며 “지금까지 군진을 이탈하여 달아난 장졸이 한둘이 아닌데, 그대가 뒤쫓아 가 붙든 사람은 하나도 없었소. 한신은 대체 어떤 사람인데 공이 직접 뒤를 쫓아가야 했던 게요?”하고 물었다. 소하가 말했다. “왕께서 그저 한중에서 계속 왕 노릇하는 것으로 족하시다면 굳이 그를 붙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장차 천하를 원하신다면 한신 말고는 함께 도모할 인물이 없습니다. 이제 그를 붙들고 말고는 왕의 의향에 달려 있습니다.”

유방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 역시 장차 동쪽으로 진출하고자 하오”하자 소하는 “그를 크게 쓰지 않으면 다시 떠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왕이 “그렇다면 그를 장군으로 삼겠소”라고 하자, 소하는 “장군 정도의 직책으로는 붙들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대장으로 삼겠소”라고 하자 소하가 “아, 다행입니다” 하고 말했다. 소하의 의견에 따라 왕은 좋은 날을 골라 재계하시고 단장을 설치하여 엄숙한 의례를 갖춘 뒤에 한신을 대장으로 임명했다. 

후일 한신은 한왕의 명으로 옛 한(韓)나라 땅에서 초군을 물리치고 그곳에서 왕이 됐다. 한왕이 한신을 버리려 하였으나 항우가 있는 한 그의 도움 없이는 뜻을 이룰 수 없으므로 그에게 제나라 땅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연대를 유지한다.  

개천에 숨은 용(龍), 소하가 알아보다  

마지막 전투는 해하라는 곳에서 이루어졌다. 항우군이 해하에 진을 치고 있을 때 한나라 유방의 군대와 응원 나온 한신과 팽월의 군대도 해하로 모여들어 몇 겹으로 성을 에워쌌다. 밤중에 항우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를 들었다. 그 유명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그들은 모두 한나라 군사들이었으나 고립감에 싸여있던 항우는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한(漢)군이 이미 초나라 땅을 모두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하여 초인이 이리도 많은가.” 어느새 한군이 초나라 사람들을 동원하여 자신을 에워싼 것으로 오인했던 것이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을 만한데(力拔山氣蓋世) / 시운이 불리하여 추(애마 이름) 또한 나아가지 않는구나. / 추가 나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옳은가. / 우(虞)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좋은가.‘

술을 마신 항우는 눈물을 흘리며 말에 올라타 포위망을 뚫고 남쪽으로 내달렸다. 그를 따르는 기병이 800명이었다. 다음날 아침 한군이 5천의 기병으로 뒤를 쫓았다. 항왕이 회수를 건널 즈음 따르는 군사는 100여기에 불과했다. 

달아나던 항우가 강변 늪지에 고립됐을 때 따라온 기병은 겨우 28기였으며, 뒤를 추격하는 한나라군은 수천이었다. 항우는 남은 군사들에게 말했다. “지금 이곳에서 곤경에 처한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결코 내가 싸움을 못해서가 아니다..” 

항우를 놓친 한군이 포위망을 좁혀올 때 항우는 강가에 있었다. 강을 지키던 정장이 배를 대고 기다리다가 타기를 권하니 항우가 말했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데 건너면 무얼 하겠는가. 내가 강동의 젊은이 8천을 데리고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었는데 지금 한 사람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받아준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느냐. 그들이 아무 말 않는다 해도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겠느냐.”

항우는 추격해온 한군에게 돌격하여 혼자 힘으로 다시 수백 명을 죽였다. 그 사이에 10여 군데 상처를 입은 항우는 한나라 군이 바라보는 앞에서 스스로 자기 목을 찔러 죽었다.  

죽기 직전 항우는 한나라 군사들 중에서 예전에 자기 부하였던 여사동이란 기병을 발견하고는 “한왕이 나의 머리에 천금과 만호의 읍을 내걸었다 하니 내 목을 가져라. 내 그대들에게 마지막 은혜를 베풀겠다”라고 하였다. 항우가 쓰러지자 한군이 달려들어 항우의 몸을 가지려고 자기들끼리 짓밟으며 경쟁하느라 여러 명이 다치거나 죽었다. 여사동을 비롯한 네 사람이 항우의 몸을 나누어 가지고 포상을 받아 후(侯)가 되었다.

겨우 스물네 살에 세상 앞에 나서서 3년 만에 천하를 거머쥔 천하장사였건만, 그가 칼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자마자 세상은 그에게 반란하여 그를 없애버리고 말았다. 

이로부터 중국은 한(漢)나라가 되고, 한족(漢族)이 중국의 혈통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한왕이 내 머리에 천금과 만호의 읍을 내걸었다 하니 내 목을 가져라. 내 그대들에게 마지막 은혜를 베풀겠다.” 항우가 쓰러지자 추격자들은 서로 항우의 몸을 가지려고 달려들어…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