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두 달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2016 국정감사 첫 날인 26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내 구내식당에서 오전 국감을 마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들이 갈비탕을 배식받고 있다. <사진=연합>
2016 국정감사 첫 날인 26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내 구내식당에서 오전 국감을 마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들이 갈비탕을 배식받고 있다. <사진=연합>

[현대경제신문 민경미 기자] [편집자주]'부정청탁과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우려와 기대 속에 28일 시행된다. 재계는 서둘러 김영란법 관련 매뉴얼과 강의를 마련하는 등 분주하지만 법무법인 관계자도 해석이 제각각이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경조사비 반환과 언론사 협찬요건 등 매뉴얼 수정이 잇따르고 있고 정보단절 가능성도 높아 ‘빈대 잡으려다 초간삼간 태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당초 검찰 비리 등을 막겠다는 본래의 취지는 사라지고 기업활동을 위축시켜 내수경제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재계 대관 관계자는 27일 “김영란법은 밥 먹는 것까지 일일이 감시하는 법이다. 이상적인 법으로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판례나 기준이 있으면 거기에 맞추겠는데 어디까지 적용되는지 몰라서 기업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두 달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로 방침을 정했다”면서 “그동안 쌓아놓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만나지 않고 전화를 이용할 것이다. 신규 인맥 네트워크를 쌓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라고 전했다.

부정청탁금지법은 직무 관련된 사항이 아니거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에 100만원 그리고 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비롯해 향응을 받게 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음식은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으로 정해 이를 어기게 되면 벌금 등에 처해진다.

권익위·법조계 “판례 쌓여야 정확히 알 수 있어”

김영란법 대상은 공직자, 언론사, 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다.

기업들이 당장 하루 앞으로 다가온 김영란법 시행 때문에 우왕좌왕하고 있다.

업계는 허술한 법체계와 적용대상과 사례 적용이 애매모호한 유권해석 탓에 기업들의 혼란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단 시범케이스에 걸리지 않으려 약속을 자제하는 등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재계 홍보팀 관계자는 “10월부터 저녁 식사 약속이 없어졌다”면서 “점심 식사 약속도 차 미팅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법조계는 위반 여부를 묻는 기업들의 질문에 판례가 쌓여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애매한 답변을 내놔 기업들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일부 기업, 매뉴얼·설명회 마련…대부분 ‘눈치작전’

일부 기업들은 교육과 매뉴얼 지침을 만들었지만 대부분은 어떤 것이 법에 저촉되고 안 되는지 판단하기 어려워 다른 기업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LG디스플레이는 8월부터 10월초까지 약 두 달간 10회에 걸쳐 서울, 구미, 파주 등 사업장에서 임원부터 반장 등 실무진까지 포함해 윤리교육을 실시한다.

또한 김영란법에 대한 안내를 포함한 ‘기본준수를 위한 임직원 가이드’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제작했다.

삼성그룹 사장단은 지난 21일 수요 사장단 회의를 통해 삼성 법무팀으로부터 김영란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법무팀 주관으로 1시간가량 이어진 설명회에서는 식사나 선물 등을 할 때의 주의점 등을 중점적으로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8일 회원사를 대상으로 김영란법 관련 기업윤리학교ABC를 열고 법 내용과 대응전략을 설명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들은 어떤 행동은 해도 되고 어떤 건 안 되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대관과 홍보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는 법무법인 태평양과 손잡고 청탁금지법 온라인 상담센터를 열었고, 지난 1일에는 권익위원회·태평양과 함께 무역업계 대응방안 모색을 위한 설명회도 개최했다.

제약협회는 지난 19일 전 직원 대상 설명회를 개최하고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전 임직원은 청탁금지법을 철저하게 준수한다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서약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성영훈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기업들의 혼란을 막고자 지난 21일 김영란법의 입법 당위성을 역설했다.

성 위원장은 “청탁금지법은 2011년 6월 김영란 전 위원장이 발의하겠다고 공표하고 5년3개월이나 걸렸는데 대단히 현실적인 법”이라며 “미국 20달러, 일본 5천엔, 독일 25유로, 영국 20~30파운드로 (접대비가) 우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투명성기구의 CPI(부패인식지수)라는 게 있는데 우리나라가 100점 만점에 56점, 168개국 중 37위에 그쳤다”면서 “이 법으로 제재 받거나 처벌받는 분이 한 분도 없고, 그런 상태가 몇 년 가서 더 이상 이 법이 필요 없었으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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