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진시황⑤-환관 趙高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贏糧躍馬 唯恐後時 영량약마 유공후시
식량을 휴대하고 말을 타고 달려가도 오히려 늦을까 두렵다 <이사열전> 
호해가 후계를 논하기 이르다고 하자, 조고가 시간이 촉박하다며     

대륙을 장악한 후 강성했던 진시황의 힘은 급속히 쇠퇴하고 있었다. 그 스스로 세상과 담을 쌓고 아방궁에 갇힌 것이 문제였다. 정치를 승상 이사에게 맡기고 자기 몸을 환관 조고에게 맡겼으나, 그들 두 사람은 백성이나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일신의 출세와 영달을 목표로 황제의 비위를 맞추면서 최고 자리에 오르고 보니, 이제는 권력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가 마지막 목표가 되었다. 그들의 권력을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은 황제뿐이다.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리고 황제의 입을 대신할 수 있다면 그 목표는 보장될 것이다. 

영악한 조고가 황제를 신선처럼 받들며 ‘속세 사람들과 마주쳐서는 안 되는 존재’로 살게 만든 진정한 이유가 여기 있었을 것이다. 역사의 수다한 간신배들과 무엇이 다르랴. 

황제의 편지를 바꿔친 환관 조고 

어느 날 하늘의 운석이 동쪽 땅에 떨어졌는데, 누군가 거기에 ‘진시황이 죽어 땅이 나뉜다’는 말을 새겼다. 어사들이 급파되어 주민들을 모아놓고 심문했으나 실토하는 자가 없자, 어사들은 주민들을 한꺼번에 처형해버렸다. 그래도 흉흉한 소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해 7월 진시황은 산동(山東)의 평원진이란 곳을 순행하던 중 병이 들었다. 언제나 진시황 곁을 지키며 황제의 수족노릇을 하던 환관 조고(趙高)와 둘째아들 호해(胡亥)가 동행하고 있었다. 또 긴 여행 중에도 국사를 처리하기 위하여 승상 이사가 수행 중이었다. 

진시황은 스스로 더 살 여력이 없음을 알았던지, 변방으로 보냈던 맏아들 부소를 급히 불러들이려 했다. 기력이 다했으므로 환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편지를 써서 곁을 지키고 있는 환관 조고(趙高)에게 맡겼다. 

“너는 함양으로 돌아와 있다가 나의 수레가 도착하거든 상을 치르고 함양에 안장하라.”

‘죽음’이란 직접 표현은 없지만 자신이 궁으로 돌아가기 전에 죽게 될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중거부령 조고는 편지를 보내지 않고 보관해두었다. 맏아들이 아무 낌새도 채기 전에 진시황은 수레 속에서 죽었다. 통일을 완성한 지 11년째, 향년 49세였다. 

황제가 죽었건만 수레를 끌고 함양으로 돌아가는 수행원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조고를 비롯한 오륙명 정도의 환관들만이 황제의 임종을 알았다. 

황제의 숨이 끊어지자 환관 조고는 즉시 감추어두었던 왕의 편지를 가지고 둘째 왕자 호해와 담판을 벌였다. 

“왕께서 붕어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후계는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황제께서는 오직 장남에게 이 편지만 남기셨는데, 장남이 돌아오시면 황제에 즉위하실 것이고 왕자께서는 한 치의 땅도 가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호해는 아직 어린데다 어리숙했다. 더구나 황제의 명에 따라 어릴 적부터 조고를 스승으로 모셨기 때문에, 오히려 조고에게 견해를 묻고 싶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리 하면 되는 게 아니겠소? 현명한 군주는 신하를 잘 알고, 현명한 아버지는 아들을 잘 안다고 들었소. 아버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후계를 정하지 않으셨으니 나는 여기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조고의 생각과 달랐다. 이미 머릿속에 제국의 미래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구상을 그려놓고 있던 조고가 호해를 꾸짖듯 깨우쳐(?) 주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제 천하의 대권을 잡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공자와 저와 승상 이사의 손에 달려있을 뿐이니 우리가 정하기 나름입니다.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것, 남을 통제하는 것과 남의 통제를 받는 것이 어찌 같다고 하겠습니까. 왕자께서 마음만 정하시면 천하는 왕자의 것이 됩니다. 이런 기회는 다시없을 것입니다.” 

호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형을 막고 아우가 나서는 것은 불의요, 아버지의 조서를 받들지 않는 것은 불효요, 재능이 천박하면서도 남의 공로를 빼앗는 것은 무능이니 이 세 가지는 도덕을 역행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조고는 알량한 지식을 곁들이며 호해를 설득했다. 

“옛날 은나라를 세운 탕왕이나 주나라를 세운 무왕이 모두 자기 임금을 죽이고 왕이 됐지만 천하가 그들을 의인으로 칭송하면서 부도덕이라거나 불효라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대저 큰일을 도모할 때는 작은 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작은 일을 돌아보다가 큰일을 잊으면 나중에 반드시 해롭게 되며 의심이 생겨 주저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결단하여 감행하면 귀신도 피해가게 되고 반드시 성공하실 것입니다.”

아직 장례는커녕 황제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기도 전이었다. 나약한 호해는 깊이 주저하였으나 조고는 이미 결심한 터였다. 호해가 결심을 굳히기도 전에 수행중인 이사를 찾아갔다. 

“황제께서 돌아가시면서 장남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셨는데, 함양에 와서 장사를 지내고 후사를 세우라는 말 뿐, 구체적인 유지가 담겨 있지 않습니다. 황제의 유서는 호해가 가지고 있고 황제의 붕어를 아는 사람은 아직 우리 몇몇뿐인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태자를 정하는 일은 승상과 나 두 사람의 입에 달려있으니 먼저 의논을 구합니다.” 

이사는 깜짝 놀랐다.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시오. 이런 일은 신하로서 논의할만한 일이 아니오.”하고 손사래 쳤다. 모반이 아닌가. 그러자 조고가 교묘한 논리로 이사를 설득했다. 

“황제의 20여명 아들들을 승상께서도 모두 알고 계십니다. 맏아들 부소는 강직하고 용맹스러워 사람들을 믿고 분발하게 하는 사람이니, 즉위하면 반드시 몽염 장군을 등용하여 승상으로 삼을 것이니 승상께서는 결국 인수를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호해는 인자하고 독실하며 욕심이 적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공자들 가운데 이런 분이 없으니 후사로 내세울만하지요. 공께서는 깊이 생각하여 결정하십시오.” 

“너는 함양으로 돌아와 있다가 나의 수레가 도착하거든 상을 치르고 함양에 안장하라.” 
환관 조고는 편지를 보내지 않고 보관해두었다. 진시황이 죽었건만 수행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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