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영웅시대(4) 염파/ 인상여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兩虎共鬪 其勢不俱生 양호공투 기세불구생
두 호랑이가 다툰다면 둘 다 무사할 수 없는 기세 (廉頗藺相如列傳)
조(趙)나라 인상여가 염파 장군과 맞부딪치기를 피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조(趙)나라 혜문왕은 운이 좋았다. 용맹한 장수 염파(廉頗)가 승승장구하여 조나라의 위신을 세워주었을 뿐 아니라 현능한 문신 인상여(藺相如)가 지혜롭게 왕을 보필하였기 때문이다.
근심이 있다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진(秦)나라의 위세가 날로 강하여 위협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5개의 성과 맞먹는 옥구슬

조나라에는 ‘화씨의 벽’(和氏璧)이라 불리는 큰 옥구슬이 있었다. 본래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발견하여 초왕에게 바쳤던 보물인데 초 위왕 때에 사라졌다가 조나라까지 흘러왔다. 초나라에서 분실되었을 때 마침 벼슬을 얻으러 왔던 장의(張儀)가 혐의를 받아 매를 맞았던 그 구슬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빛이 났던지, 완벽(完璧)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후에 진시황이 차지하여 황제의 옥새(국새)로 만든 이후 1천년 간 중국을 지배하는 왕조의 상징물로 전해졌다. 위진 남북조를 거쳐 송-양-수-당나라까지 내려오다가 후당의 마지막 황제가 불타 죽을 때 함께 실종되었다고 한다.

귀한 벽옥이 조나라에 있다는 것을 안 진(秦) 소왕이 혜문왕에게 사신을 보내 ‘성 15개를 줄 터이니 화씨벽과 바꾸자’고 청해왔다. 진나라 왕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대신들과 함께 고심하고 있을 때 무현이라는 대신이 자기 가신을 소개했다. “신에게 인상여라는 가신이 있습니다. 용맹하고도 지모가 뛰어난 사람이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혜문왕이 인상여를 접견한 후에 그를 믿고 화씨벽을 맡겼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들고 진나라에 가서 바치자 진왕은 옆에 앉은 비빈들과 신하들에게 화씨벽을 차례로 보게 해주었다.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인상여가 다가가며 말했다. “하온데, 화씨벽에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흠이 한 군데 있사옵니다. 제가 일러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완벽하게만 보이는 구슬에 흠이 있다는 말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흠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진왕이 화씨벽을 내주자 인상여는 구슬을 받아쥐고는 물러나 기둥 앞에 우뚝 기대어 섰다. 그리고 잔뜩 분개하여 말했다.

“대왕께서 화씨벽을 얻고자 하시므로 조나라 왕은 조정 대신들을 다 불러놓고 상의를 하셨습니다. 모두들 진나라의 탐욕을 의심하여 반대했습니다만, 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 사기극은 있을 수 없으니 하물며 큰 나라끼리의 교제에서 그런 일에 속임수가 있겠는가. 또한 구슬 하나 때문에 강한 진나라의 비위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자 우리 왕께서는 닷새 동안 목욕재계하신 후 신에게 화씨벽을 받들고 진나라에 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신은 대왕께서 조나라에 성을 줄 마음이 애초부터 없으셨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화씨벽을 돌려받은 것입니다. 만일 신을 해치려 하신다면, 이 구슬은 신의 머리와 함께 이 기둥에 부딪쳐 깨질 것입니다.”

진왕은 구슬이 깨질까 당황하여 거듭 사과했다. 관리를 불러 지도를 가져오게 한 다음, 손가락으로 지도를 가리키며 여기서 저기까지 성 15개를 조나라에 넘겨주라고 명했다. 그러나 상여는 그 또한 거짓으로 여기고 말했다.

“화씨벽은 온 천하가 인정하는 보물입니다. 조나라 왕께서 닷새간 재계를 하셨으니, 대왕께서도 닷새간 재계하시고 마땅한 의식을 여신 후에야 신은 감히 구슬을 바치겠습니다.”

진왕이 조나라 사신들을 영빈관에 묵게 하고 닷새간의 재계를 하는 동안, 인상여는 수행원에게 허름한 옷을 입게 하고서 화씨벽을 품고 샛길로 나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하였다.

닷새 후 조왕이 예를 갖춰 인상여를 접견할 때에 상여가 말했다.
“신은 결국 땅을 얻지 못하고 조나라 왕께 죄만 지을까 두려워 화씨벽을 이미 조나라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다시 아뢰옵건대, 진나라가 먼저 성 15개를 조나라에 떼어주신다면, 조나라가 어찌 감히 구슬을 바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대왕을 속였으니 이제 삶아죽이셔도 좋습니다. 다만 군신들과 먼저 이 일을 깊이 상의해 주소서.”
상여의 목을 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진왕과 다수의 대신들은 인상여의 대담함과 충성심과 기지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조왕은 상여를 빈객으로 대접하고 돌려보냈다. 인상여는 귀국하여 상대부가 되었다. 결국 진나라와 조나라는 성과 화씨벽을 바꾸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 자존심을 꺾는다”

그 후 진나라가 조나라를 친 뒤에 화친을 맺게 되었다. 인상여가 왕을 받들고 회맹에 나가 또 한 번 왕의 위신을 지켜주었으며, 그 공으로 상경이 되었다.

귀족인 염파는 인상여가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앉은 것을 못마땅히 여겼다. “마주치기만 하면 반드시 모욕을 주리라.” 염파가 벼른다는 말을 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길을 피해 다녔다. 같이 마주칠만한 자리가 있으면 병을 핑계대고 나가지 않을 정도였다.

보다 못한 가신들이 말했다. “염파를 그리 무서워하며 피하시니 저희도 부끄럽습니다.”

인상여가 말했다. “나는 진나라 조정에서 진왕을 질타하고 그 신하들을 모욕한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노둔하다 해도 염파가 무서워서 피하겠는가. 오늘 강대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함부로 침범치 못하는 것은 이 나라에 염파와 내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두 호랑이가 다툰다면 둘 다 무사하지 못할 것이니, 나라가 위태로와질 것이다. 나는 오직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기에 그와 부딪치기를 피하는 것이다.”

염파가 그 말을 전해 듣고는 스스로 어깨를 드러내고 가시나무 채찍을 등에 지고서(負荊請罪) 인상여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 천박한 인간이 장군의 깊은 뜻을 미처 몰랐소이다.”

두 사람은 마침내 화해하고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다. 두 사람이 합심하여 제나라와 위나라를 치고 진(秦)나라를 격파했다.

“왕께서는 애초부터 조나라에 성을 줄 마음이 없으셨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화씨의 벽을 돌려받았습니다. 만일 신을 해치려 하신다면, 구슬은 신의 머리와 함께 기둥에 부딪쳐 깨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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