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영웅시대(1)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賣僕妾) 不出閭巷而售者 良僕妾也
매복첩 불출여항이수자 양복첩야
노복을 팔 때 좋은 노복은 마을을 벗어나기도 전에 팔린다 (<史記>張儀列傳)
진(秦)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가려던 진진이 왕의 추궁을 받자 스스로 변증하며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는 말이 있다. 뛰어난 인물이 반드시 난세라야 태어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난세에는 수많은 사건들이 벌어지므로, 군주들은 태평성대보다 더 적극적으로 재주 있는 인물들을 찾아 등용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인물들이 검증될 기회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영웅이 검증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가. 몰려든 두뇌들 사이에 경쟁과 정쟁은 또 얼마나 치열하겠는가.

전국시대 말기 중원은 하루도 전쟁이 그치는 날 없이 시끄러웠다. 정치가나 장수들만 득실거린 것도 아니다. 이 시기에 다양한 치세의 철학과 이론, 정치 방법을 가지고 군주들에게 유세하는 세객(說客)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좋은 아낙은 재혼도 빠르다”

진진(陳軫)은 진 혜왕(秦惠王)에게서 장의와 총애를 다투었다. 왕의 총애를 차지한 장의가 먼저 진진을 헐뜯어 말했다. “진진이 많은 예물을 가지고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를 사신으로 왕래하는 것은 두 나라 사이를 좋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초나라가 진나라와 친선을 더하지는 않으면서 진진을 후대하고 있는 것은, 진진이 진나라나 대왕보다는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진진은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가려고 합니다. 그 이유를 한번 물어보심이 옳을 듯합니다.”

혜왕이 진진에게 물었다. “그대는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가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 진진은 “그렇습니다.”하고 시인했다. 임금이 “장의의 말이 사실이었구나.”라고 말하니 진진은 태연히 대답했다.

“그것은 장의 뿐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들이라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옛날 오자서는 자기 임금에게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왕들도 그를 자기 신하로 삼으려고 다투었으며, 효자 증삼은 자기 어버이에게 효성이 지극하였기 때문에 천하의 부모들이 그런 자식을 얻고 싶어 했습니다. 노비를 팔 때 그 마을을 벗어나기도 전에 팔리는 사람이 좋은 노비이며, 소박맞고 고향에 돌아왔더라도 그 마을에서 바로 재가하는 아낙이 좋은 아낙입니다. 지금 진진이 임금께 충성스럽지 않다면 초나라가 어떻게 진진을 충성스런 사람으로 여기고 탐내겠습니까. 또한 이 나라에서 충성을 바치면서도 버림받으려는 마당에 신이 초나라가 아니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혜왕은 그의 말을 옳게 여기고 더 추궁하지 않았다.

진진이 초나라로 간 뒤에 진 혜왕은 장의를 재상으로 등용하였고, 진진은 초나라에 망명하였다. 진진은 초나라에서 중용되지는 않았으나, 진나라와의 외교에 여전히 그를 활용하였다.
초왕이 그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했다.

한 번 공격으로 두 나라를 정벌하다

진진이 수년 만에 모국으로 돌아가 왕을 접견하니 혜왕이 물었다.

“그대는 이제 초나라 신하가 되었는데, 초나라에 가서도 과인을 생각하였소?”

그러자 진진이 말했다.

“월나라에 장석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뒤에 초나라에 가서 벼슬하여 집규가 되었는데, 얼마 후에 병이 났습니다. 초나라 왕이 시종에게 물었습니다. ‘장석은 본래 월나라의 미천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초나라에 와서 벼슬을 얻고 존귀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월나라를 그리워하겠는가.’ 시종이 대답하기를 ‘사람은 병이 났을 때 고향을 생각하는 법입니다. 그가 월나라를 그리워한다면 월나라 말을 할 것이고, 월나라를 아예 잊고 스스로를 초나라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초나라 말을 할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시켜 들어보게 하였더니 장석은 월나라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지금 신은 버림받고 쫓겨서 초나라로 갔지만 어찌 진나라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혜왕은 ‘좋소’하고는 지금의 정세를 의논하였다.

“지금 한(韓)나라와 위(魏)나라가 싸움을 벌인지 1년이 되었는데도 그치지를 않고 있소. 어떤 사람은 과인이 개입하여 구원하는 게 낫다 하고 어떤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어찌 해야 좋겠소. 그대가 그대의 왕을 위해 계책을 내는 마음으로 과인을 위해서도 계책을 내주시오.”

진진이 대답했다. “일찍이 변장자라는 사람이 호랑이를 찔러죽인 일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변장자가 호랑이를 공격하려 할 때 객관의 시동이 말리면서 말했답니다.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소를 잡아먹으려 하는데, 먹어봐서 맛이 좋으면 분명히 서로 다툴 것입니다. 서로 다퉈서 싸우게 되면 큰 놈은 상처를 입고 작은 놈은 죽게 됩니다. 그 때에 상처 입은 놈을 찔러 죽이면 한꺼번에 두 마리 호랑이를 잡았다는 명성을 들으실 것입니다.’ 변장자가 그 말에 따랐습니다. 과연 두 호랑이가 싸워서 한 놈은 죽고 한 놈은 다쳤기 때문에 나중에 다친 호랑이를 쉽게 찔러서 죽이니 단번에 두 호랑이를 잡는 공을 세운 것입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오래 싸우고 있으니 두고 보시면 결국 강한 쪽은 타격을 받고 약 쪽은 망하겠지요. 그 뒤에 타격받은 나라를 정벌하시면 일거양득이 될 것입니다. 신의 임금에 대한 계책과 대왕을 위한 계책이 다를 게 무어겠습니까.”

과연 혜왕은 두 나라의 싸움이 그친 뒤에 군사를 일으켜 두 나라를 동시에 정벌하였다. 모두 진진의 계책에 따른 것이다.

호랑이 두 마리가 소를 놓고 다퉈 서로 싸우게 되면 큰 놈은 상처를 입고 작은 놈은 죽게 됩니다. 그 때 상처 입은 놈을 찔러 죽이면 한꺼번에 두 마리 호랑이를 잡았다는 명성을 들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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