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사령관 악의(樂毅)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善作者不必善成 善始者不必善終 
선작자불필선성 선시자불필선종
일을 잘 꾸미는 사람이 반드시 끝까지 잘 이루란 법은 업다.
제나라의 이간책에 너어간 것을 후회하는 연 혜왕에게 악의(樂毅)가 보낸 편지 中 

자지(子之)가 왕을 속여 왕 노릇을 하게 되자 연나라의 젊은 관료들 사이에 불만이 팽배했다.

그 중심에는 태자 평(平)이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제나라가 연나라를 집어삼킬 음모를 꾸몄다.

내란으로 지친 나라를 집어삼키다

제나라 민왕은 먼저 연나라 태자 평(平)에게 밀사를 보냈다. 밀사가 제나라 왕의 거짓 제안을 전달했다. “태자께서 큰 듯을 품어 군신의 대의를 바로잡겠다 하시니 원하신다면 도와드리겠소.”

자지로부터 왕권을 되찾을 꿈을 꾸고 있던 태자 평은 그 말을 믿고 군대를 모아 왕궁을 공격했다. 군대를 이끈 장수는 시피다. 그런데 태자의 군대는 성공하지 못했다. 자지가 거머쥔 왕의 군사들과 태자가 동원한 반란군이 지루한 공방전을 벌이게 되었다. 본래 적은 병력으로 국왕에 대항하여 일으키는 거사라는 것은 전광석화로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법이다. 내전상태로 돌입하면서 시간이 늘어진 것은 성 밖에서 공격해야 하는 태자군에게 결코 유리한 일이 아니었다. 믿었던 제나라의 응원군마저 오지 않았다.

지휘관인 시피는 약삭빠른 사람이었다. 반란이 실패로 끝나면 장차 군사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을 덮어쓰게 될까 두려워 시피는 재빨리 줄을 바꿔 섰다. 모두가 태자의 명령 때문이라고 원망하면서 뒤돌아 태자의 군사들을 공격했다. 반란군 내부의 자중지란은 결국 시피가 전사하면서 끝이 났다. 태자는 시피의 시신을 저자거리에 내걸어 뭇사람들이 보게 했다.

수개월에 걸친 태자와 자지 사이의 내란으로 연나라는 피폐하였다. 수만 명의 병사와 백성들이 죽었고, 백관들은 어느 장단에 따라야 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하였다.

그제야 제나라군이 진격해 왔다. 본래는 태자군을 응원하기 위해 오기로 돼있는 군사들이었지만, 지금 목적은 내란으로 피폐해진 연나라를 집어삼키는데 있었다. 제 민왕에게 용기를 준 사람은 바로 맹자(孟子)다. 이 무렵 제나라에 머물고 있던 맹자는 연나라가 왕권다툼을 하느라 백성의 목숨을 함부로 희생시키는 것을 보고는 제 민왕에게 “이 기회에 연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상(商)을 정벌한 것과 같다”며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제나라가 군사를 모아 연으로 진격해 들어가자 연나라 군사들은 맞서려고 하지 않고 백성들은 성문을 열어놓은 채 제나라 군을 맞아들였다. 연나라 왕 쾌는 내전 중에 죽었으며, 왕을 대리하던 국상(國相) 자지도 제나라군에게 죽었다.

제나라의 지배 아래 태자 평이 왕위를 이었다. 그가 소왕(昭王)이다. 소왕은 마치 월왕 구천이 오나라에 설욕하기 위해 와신상담하듯 스스로를 낮추고 국력을 길러 제나라에 보복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명한 사람들을 등용하여 정치를 쇄신해야 했다.

소왕이 곽외(郭隗)란 대신에게 말했다. “그대가 만약 현사(賢士)를 발견하거든 말해주시오. 그게 누구든 과인이 직접 찾아가 모셔오겠소.”

곽외가 대답했다. “현사를 우대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먼저 저를 불러주십시오. 저 같은 사람도 우대한다고 소문이 나면 저보다 현명한 사람들이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이 곽외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스승으로 받들자, 중원의 인재들이 연나라로 찾아들었다. 군사전략가인 악의(樂毅)가 위(魏)나라로부터, 음양오행의 대가 추연이 제나라로부터 찾아왔으며, 힘이 장사인 극신이 조(趙)나라로부터 귀순했다.

제나라 정벌, 다 잡은 꿩을 놓치다

소왕의 노력으로 연나라가 나날이 부강해진 반면 연나라를 정복했던 제나라 민왕은 점점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제 민왕은 60년이나 왕 자리에 있었다. 초나라를 이기고 삼진을 굴복시켰으며, 삼진과 함께 진(秦)을 함곡관까지 몰아부쳤다. 송나라를 격파했고, 한창 때는 진의 소왕과 함께 동제(東帝)와 서제(西帝)를 운운하며 중국을 양분하다시피 했다. 이때 지략가 소대(蘇代)의 충고를 따라 제(帝)라는 칭호를 유보함으로써 천하의 제후들로부터 존경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교만은 그 어떤 성공이라도 빛바래게 만든다. 제 민왕은 말년에 크게 민심을 잃었다.

연 소왕이 악의에게 제나라 정벌을 의논했다. 악의가 답했다. “제나라가 비록 민심이 들떴다 하나, 땅이 넓고 인구는 많으며, 대대로 천하를 제패한 업적이 있는 나라입니다. 단독으로 공격하여 이기기 어려우니, 조나라 초나라와 위나라의 힘을 합치도록 하십시오.”

소왕이 사신을 보내 세 나라에 의견을 물으니, 마침 제 민왕의 교만에 반감을 품고 있었으므로 앞다퉈 합종에 동의하였다.

연 소왕이 악의를 상장군으로 세우니 조나라는 상국의 직인을 주었다. 악의가 조-초-한(韓)-위(魏)-연, 5개국의 군사들을 통솔하여 제나라를 공격했다. 제나라군은 국경으로부터 패퇴하여 도성인 임치까지 물러났다. 연합군이 임치로 진격해 들어가자 제 민왕은 도성을 포기하고 거(莒)로 피신했다. 악의는 임치를 점령한 뒤 제나라의 보물과 제사용기들을 연나라로 실어보냈다. 곧 연합군이 해체된 뒤에도 악의는 제나라 땅에 머물며 이후 5년 만에 제나라의 성과 읍 70개를 함락시켜 모두 연나라의 군현에 귀속시켰다. 아직 거와 즉묵이 항복하지 않고 버티는 동안 연 소왕이 먼저 붕어하니 그의 아들이 즉위하여 연 혜왕이 되었다.

혜왕은 태자 시절 악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를 안 제나라가 이간책을 쓰니, 혜왕이 모함하는 말을 믿고 전쟁터에 있는 악의를 해임했다. 제나라 함락을 눈앞에 두고 해임된 악의는 그 길로 조나라에 망명했으며, 후임자인 기겁은 제나라 장수 전단에게 패했다. 이로써 거의 망하기 직전에 이르렀던 제나라는 기사회생으로 되살아났다.

제나라 군대가 진격해 들어가자 연나라 군사들은 막으려 하지 않고 성문을 열어놓은 채 제나라 군을 맞아들였다. 연왕 쾌와 왕 노릇을 하던 국상(國相) 자지는 제나라군에게 죽었다.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