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합종연횡(2)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眾口鑠金 積毀銷骨 중구삭금 적훼소골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이며, 여러 사람의 비방은 사람을 파멸시킨다 <張儀列傳>
장의가 위 애왕에게 진(秦)을 섬기도록 설득하면서 합종가의 말들은 다 잊으라며

장의(張儀)는 위(魏)나라 출신으로 소진과 함께 귀곡자에게서 유세술을 배웠다.

소진은 항시 스스로를 장의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고 존중했다. 동문인 손빈을 시기했던 방연과는 상반된 관계였달까. 그러나 실력이 낫다고 해서 반드시 더 일찍 출세하는 것은 아니다. 장의도 학업을 마친 뒤 여러 제후들에게 유세하였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혓바닥만 무사하다면

한번은 초나라를 찾아가 재상을 면담하여 술을 마셨는데 그 집에서 벽(璧= 옥으로 만든 제기. 벽옥은 매우 귀한 보물이었다)이 없어졌다. 재상의 문객들이 혐의를 장의에게 두었다.

“장의는 가난하니 행실이 좋지 않아, 분명 상군의 벽을 훔쳤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장의를 붙잡아 수백 대의 매질을 가하고 그래도 승복하지 않으니 놓아주었다.

장의의 아내가 피범벅이 되어 돌아온 남편을 보고는 “그러게 글을 배워서 유세하지 않았던 들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을 거 아니오”하며 안타까워했다. 장의가 말했다. “다 괜찮소. 내 혓바닥이 무사히 붙어있는지만 봐주시오.” 아내가 헛웃음을 치면서 “혀는 그대로 붙어있구려”하고 대꾸하니 장의는 “그럼 됐소”라고 말했다.

친구인 소진은 이미 여섯 나라의 합종맹약을 성사시켜 여섯 나라의 재상 관인을 차고 부귀를 누리고 있었다. 장의가 고생하고 있는 터에 어떤 사람이 와서 넌지시 말했다.

“선생께서는 애초에 소진과 좋은 사이셨습니다. 재주도 그보다 나은데, 지금 소진은 요로에 들어가 있거늘 어째 그를 찾아가 선생의 뜻을 펼 기회를 얻지 않으십니까.” 그 말이 옳다 여겨 장의는 조나라로 찾아갔다.

소진의 처소에 가서 문지기에게 명함을 건넨 뒤에 객사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소진의 수하들은 그를 소진에게 안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떠나도록 놓아주지도 않았다. 하인배들과 같은 밥을 먹으며 여러 날 기다린 끝에 마침내 소진이 찾아왔는데, 그를 당하에 앉힌 채로 소진은 거만하게 친구를 힐책했다. “어쩌다가 자네 같은 사람이 스스로를 이처럼 곤란하고 수모를 겪는 지경에 이르게 했는가. 내 자네를 왕께 천거하여 부귀하게 해줄 수야 없겠는가마는, 자네는 거두어 쓸 만한 존재가 못되네.” 그리고는 냉정하게 일어나서 들어가버렸다.

옛 친구에게 도움을 기대하고 찾아왔다가 오히려 모욕을 당했다. 장의는 곧장 소진의 집을 나왔으나 갈 데가 없었다. 집에서는 모두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제후들은 모두 소진에게 의지하고 있으며 마땅히 찾아갈 만한 대상이 없었다. 그래서 진(秦)나라로 향했다. 조나라를 곤경에 빠트려 소진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길은 소진이 대항하고 있는 진나라뿐이었다.

먼 길을 걸어 진나라에 도착했으나 맨 몸뚱어리 하나로 도착한 걸인행색의 그가 높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도성에서 떠돌고 있을 때 한 부유한 차림의 상인이 우연스럽게 그를 보고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물었다. 여러 대화가 오간 끝에 상인은 만족해 하면서 장의의 성공을 위해 후견을 자청했다. 좋은 옷을 입히고 선물 사는 비용까지 제공하여 마침내 장의는 진나라의 벼슬아치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소개를 통해 진 혜왕과 만나 유세하니 그동안 소진의 합종책에 가로막혀 함곡관 동쪽에 갇혀있다시피 했던 혜왕은 숨통이라도 트이는 듯 기뻐했다. 장의는 진 혜왕의 객경이 되었다.

숙소로 돌아온 장의가 후견인에게 보답하려 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상인은 짐을 꾸려 떠나려 했다. “당신의 도움으로 현달하게 되어 이제야 은덕에 보답하려 하는데 무엇 때문에 저를 떠나려 하는 겁니까.”

그러자 상인이 고백했다. “사실 저는 선생을 잘 모릅니다. 선생을 잘 아는 분은 저의 주인이신 소군(소진)입니다. 소군께서는 장차 진나라가 조나라를 정벌하여 제후들 사이의 맹약이 깨질 것을 염려하고 계신데, 선생님만이 진나라의 정권을 잡고 휘두를 수 있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분노하게 만들고 저를 시켜서 몰래 비용을 대드리게 한 것입니다. 이 모두가 소군의 모계(謀計)입니다. 이제 등용되셨으니 저는 돌아가 복명하겠습니다.”

처음에 누군가 곤경에 빠진 장의를 찾아가 소진에게 찾아가도록 부추긴 일부터 진나라에 등용되기까지, 이 모두가 용의주도한 소진의 계책이었던 것이다.

장의는 그제야 이마를 치면서 말했다. “이는 나의 술책에도 있는 것인데, 미처 깨닫지를 못하였구나. 내가 소진에게 미치지 못함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말했다. “나를 대신하여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시오. 또한 내가 있고 소군이 그 자리에 있는 한, 조나라에 대한 정벌은 하지 않을 것이오.”

장의는 진나라의 재상이 된 뒤에 초나라에 격문을 보냈다. “지난 날 내가 그대와 술을 마실 때 나는 그대의 벽을 훔치지 않았건만 그대는 모진 매질을 하였다. 이제 그대는 나라를 잘 지킬 궁리를 해라. 내가 그대 나라의 성읍을 훔칠 것이다.”

장의는 제후들 사이의 합종을 깨기 위해 처음에 위(魏)나라의 재상이 되어 진과 손을 잡게 했고, 초나라에 가서 재상이 되어 진과 화친하게 하였다. 이 무렵 소진이 조나라에서 죽자 장의는 한(韓)나라와 제나라 조나라 연나라를 차례로 돌며 진나라와 맹약하게 하였다.

소진이 여섯 나라를 묶어 진나라에 대항하게 한 것을 장의가 모두 뒤집어 여섯 나라가 진나라를 섬기면서 서로 경쟁하게 만든 것이다. 15년간의 평화는 깨지고 전국은 다시 패권을 다투는 전쟁에 돌입했다. 소진의 방책을 합종책이라 하고 장의의 방책을 연횡책이라 한다.

빈털터리로 떠돌고 있을 때 한 부유한 상인이 다가왔다. 대화가 오간 끝에 상인은 후견을 자청했다. 좋은 옷을 입히고 비용까지 제공하여 마침내 장의는 진나라의 벼슬아치들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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