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齊나라 주인이 바뀌다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以大斗出貸 以小斗收 이대두출대 이소두수
빌려줄 때는 큰 말로 재고, 거둘 때는 작은 말로 재다 (<사기>田敬仲完世家)
후하게 베풀고 적게 갚게 한다는 말로, 권력자가 인심을 얻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제 간공이 자아와 전상(田常) 둘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하라는 전앙의 충고를 무시한 것은 큰 실책이었다. 두 재상의 경쟁은 끝내 제나라의 운명을 바꾸었다.

전상은 자아를 경계하면서, 백성의 마음을 자신에게 끌어들이기 위해 후한 인심을 베풀었다. 곡식을 빌려줄 때는 큰 그릇(大斗)에 담아주고 거두어들일 때는 작은 그릇(小斗)을 썼다. 자연히 백성들은 전상을 좋아했다. 사람들은 노래하기를 “할머니가 뜯어온 나물은 모두 전성자에게 보내리”라고 했다. ‘전성자’는 대부 전상을 높여 부른 이름이다.

목숨 건 두 제후의 혈투

간공의 총애를 받고 있는 자아는 전상을 경계하여 구실만 생기면 제거할 생각이었다.

어느 날 저녁에 자아가 입조하던 중에 전역(田逆)이라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체포하여 가둬두게 하였다. 전씨들은 씨족의 결속이 강하였으므로, 전역이 갇힌 것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서로 내통하여 옥에 갇힌 전역으로 하여금 아픈 척하게 하고는 간수에게 술을 보내 취하게 한 다음 간수를 죽이고 전역을 빼내 숨겨두었다.

분개한 전씨는 내통한 전씨들을 모두 처형하려고 마음먹고 전표를 불렀다. 전표는 자아에게 충성하는 가신었는데, 성자와 같은 전(田)씨 혈족이었으나 종가와는 거리가 먼 방계자손이었다. 자아가 “내가 권세 잡은 전씨들을 모두 몰아내버리고 그대를 가장(家長)으로 세우려는데 괜찮겠는가”라고 묻지 전표는 말하기를 “저도 전씨이긴 하나 가문에서의 위치는 가장 보잘것없는 방계 자손입니다. 게다가 전씨 가운데서 주인님을 거스르는 자는 단 몇 사람에 불과한데 어찌 모두를 쫓아내야만 하겠습니까.”하며 사양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다. 전표는 자아가 한 말을 고스란히 전씨들에게 전했다.

성질 급한 전역이 말했다.
“자아는 간공의 총애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먼저 손을 쓰지 않으면 반드시 화를 입게 될 터이니 준비를 하십시다.” 그리고는 스스로 공궁에 들어가 자아를 감시하며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간공이 부인과 함께 누대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전상의 형제 네 사람이 수레를 타고 공실로 들어갔다. 자아가 맞으러 나오다가 심상치 않은 눈치를 채고 급히 문을 닫아걸게 했으나 전역이 칼을 휘둘러 환관들을 죽여버리고 안으로 짓쳐들어갔다. 전상이 자아를 찾아다니다가 술 마시던 간공을 발견하고는 안으로 들어갈 것을 권하자 간공은 창을 들고 그를 찌르려 했다. 곁에 있던 태사 자여가 얼른 “상은 지금 임금님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해악을 제거하려는 것입니다.”하고 만류하자 간공이 그만 두었다.

전상은 자리를 피했는데, 간공의 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달아나려 하였다.

그러자 전역이 칼을 겨누며 말했다. “머뭇거리는 것은 일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전씨 종족 아닌 자가 누가 있습니까. 내가 그대를 죽이지 않으면 전씨가 아닙니다.” 전상은 도망치기를 포기했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한편 달아난 자아는 급히 군사를 모아 궁으로 진입하려 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자 달아나다가 지방 사람들에게 붙잡혀 살해되었다.

100명의 후궁을 거느린 재상

간공 또한 측근들의 호위 속에 달아나다가 서주라는 곳에서 붙잡혔다. “진즉 전앙의 말을 따랐어야 했다.” 후회하였으나 때는 늦었다. 전상은 이미 사이가 틀어진 간공을 죽이고 그 동생 오를 옹립하니 그가 평공이다. 평공은 25년이나 군주로 재위했지만 실권은 모두 전상의 손에 있었다. 전상이 평공에게 말하기를 “덕치는 백성들이 바라는 바이니 주군께서는 그것을 하십시오. 백성들이 싫어하는 형벌의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라고 했다. 실제로는 형벌의 권한을 쥐고 자기 권력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전상은 자아와 안영의 후손이며 가신들을 모두 제거하고 제후 가문에서 힘 있는 자들을 모두 죽였다. 전상이 차지한 봉읍은 평공의 식읍보다 컸다. 나머지 영토도 거의가 전씨들 차지였다.

전상은 많은 여자들을 후실로 맞아들여 자식을 많이 낳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나라 여자들 가운데 키가 7척 이상 되는 처녀들을 보는 대로 불러들여 후궁을 삼으니 그 수가 100명이나 됐다고 한다. 이 여자들이 낳은 전상의 자식들이 아들의 수만 70명이나 됐다. 전상이 죽고 아들 반(盤)이 재상 자리를 물려받았을 때는 제나라 대다수 도시와 지방을 전씨 성 가진 대부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제후 평공 이후 선공이 51년을 재위하고 죽어 강공이 즉위한 직후 마침 진(晉)나라에서는 조한위(趙韓魏) 삼국이 독립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전씨들도 천자를 알현하여 독립된 제후의 지위를 승인받는 데 성공했다. 전씨로서 처음 제후가 된 화(和)는 제나라의 본래 주인인 여(呂)씨의 후손 강공에게 바닷가 마을 하나를 식읍으로 주어 보내버리고는 나라 전체를 차지해버렸다. 이후 제나라는 전제(田齊)라 불렸다.

전씨의 조상은 본래 진(陳)나라 13대 군주 진 여공의 아들이다. 주(周)나라 태사가 진나라에 들렀을 때 여공의 아들 완(完)의 미래를 점쳐 말하기를, “자기 대가 아니면 그의 자손 대에 다른 나라에 가서 주인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이후 진(陳)나라는 일찍 망했으나, 제나라로 망명했던 진씨의 후예들이 제나라를 차지하여 전국7웅의 하나가 된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 같으나, 내일의 하루가 어제의 하루와 똑같은 건 아니다. 세상은 그 다름을 만들어가는 사람과 다름을 즐기는 사람들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상이 키가 7척 이상 되는 처녀들을 보는 대로 맞아들여 후처를 삼았다. 100명의 후처들이 낳은 자식의 수는 아들만 70명이나 됐다. 곧 제나라 대다수 지방을 전씨들이 다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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