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충신 오자서의 죽음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且鷙鳥之擊也 必匿其形 차지조지격야 필닉기형
새를 공격하려는 매는 반드시 자기 모습을 감춘다. <越王句踐世家>
월왕이 오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군대를 정비하려 하자 봉동이 때가 이르다며 

태사 백비는 틈날 때마다 오자서를 헐뜯었다. 급기야 오자서가 왕에게 반감을 품어 모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모함하자 부차왕도 차츰 오자서를 경계하게 되었다.
월나라는 어떻게든 오자서를 제거하려 했다. 대부 봉동이 꾸준히 뇌물을 보내며 백비를 조종했고, 백비는 탐욕에 눈이 멀어 그 역할을 충실히 대신했다.

간신의 모함에 충신이 죽다

한편으로는 미녀 서시(西施)의 전설도 있다. 월나라 범려가 백비를 통해 오왕 부차에게 미녀를 바쳐 부차의 정신을 흔들게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서시가 연못가에 서면 물고기들이 미모에 반해 헤엄치기를 잊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해서 침어(沈魚)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편두통이 있었는지 곧잘 이마를 찌푸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는데, 그 모습조차 아름다워 이를 흉내내는(효빈; 效顰) 여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나라의 패방이 임박했음을 느낀 것일까. 오자서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는데 아들을 데려갔다가 친구인 제나라 대부 포목에게 맡기고 돌아왔다. 백비가 이를 놓치지 않고 고자질하며 ‘오자서가 모반의 결심을 굳힌 증거’라고 주장하자 부차는 크게 진노했다.

오자서에게 촉루검(屬鏤劍)을 내려 보내자 오자서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이전에 그대의 아버지에게 천하를 얻게 해주었고 또 그대를 옹립하였다. 그대는 애초에 오나라의 절반을 내게 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받지 않았지. 그 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간신의 참언을 믿고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아아, 그는 홀로 서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는 부하들에게 “내 눈을 빼서 동문에 매달아놓아라. 월나라가 쳐들어오는 것을 똑똑히 보고 싶다.”라고 유언하고 자결했다.

“오왕 부차가 오자서를 죽였으니 이제 오나라에는 나라를 지킬 사람이 없고, 오왕에게는 아부를 일삼는 자들만 남았소. 오나라에를 쳐도 되지 않겠소?”
월왕 구천이 기대에 차서 묻자 범려가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하고 대답했다.

오왕 부차는 계속하여 다른 제후국들과 전쟁을 치르면서 패자로서의 힘을 즐겼다. 4년 뒤에는 북쪽 멀리까지 진격해 올라가서 진(晉) 정공, 노 애공과 함께 황지(黃池)란 곳에서 회맹을 가졌다. 이때 정예 병사들을 모두 이끌고 갔기 때문에 오나라 수도는 왕자들이 이끄는 노약한 병사들만이 남아있었다.
범려가 구천에게 말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마침내 구천왕은 군사를 총동원하여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수군을 포함해 약 1만2천명의 적은 군사였으나 정규군이 없는 오나라 도성을 함락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월왕이 저항하는 오나라 태자의 군대를 격파하고 태자를 죽였다.

오왕 부차 외로이 자결하다.

부차는 황지에서 급보를 받았으나 이를 제후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태연하게 회맹을 끝내고 귀국하면서 부차는 먼저 월왕에게 사람을 보내 강화를 청했다. 구천이 받아들였다. 그 또한 오나라 정병이 돌아오면 완전히 물리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4년 뒤 월나라가 다시 오나라를 공격했다. 오랫동안 제나라 진(晉)나라 싸우느라 지친 오나라군은 거듭 패했다. 3년 동안 이어진 전쟁 끝에 부차는 고소산에 고립되었다.

부차가 월왕 구천에게 사자를 보냈다.
“왕의 신하 부차가 지난 날 회계산에서는 왕께 죄를 지었습니다. 부차는 감히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으니, 이제 강화를 맺고 돌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바라건대, 회계산에서 제가 왕께 그러했던 것처럼 저를 불쌍히 여겨 용서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구천은 차마 모질게 할 수 없어서 허락하려 했다. 그러자 대부 범려가 가로막았다. 
“이제 하늘이 오나라를 월나라에 넘겨주는데, 어찌 하늘을 거스른단 말입니까. 날마다 쓸개를 씹으면서 회계산의 치욕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시던 일을 잊으셨습니까.”

왕이 대답하기도 전에, 범려가 기를 세워들고 북을 치면서 외쳤다.
“왕께서 나에게 소임을 맡기셨으니, 사자는 돌아가라. 썩 돌아가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 군사들은 전진하라.”

부차의 사자는 울면서 돌아갔다. 구천왕이 연민을 느껴서 부차에게 사람을 보내 제안했다.
“나는 그대를 죽이지 않고 용동으로 보내 1백호의 마을을 맡기겠소.”
그러나 부차는 사절했다. “감사하오나, 이제 늙어서 왕을 섬길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 자결하면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저승에 가서라도 오자서를 대할 면목이 없구나.” 월왕이 진격하여 부차의 시신을 수습하고 오나라 태재 백비를 주살했다. 태재 백비는 그 때까지 월나라를 위하여 자기 왕을 속인 사람이다. 그러나 월왕은 백비에게 왕의 신하로서 교활하며 불충했던 죄를 물었다.

고소산의 월왕에게 범려가 있었다면 일찍이 회계산의 오왕에게도 오자서라는 충신이 있었다. 월왕은 범려를 믿었으나, 오왕은 간신 백비의 꾐에 빠져 오자서를 물리치고 심지어 죽게 했다. 오왕 부차는 이로써 죽고 나라는 사라졌다. 월왕 구천은 이때로부터 천하의 패권을 쥐게 됐다. 한 사람의 거짓이 백 사람의 충심을 헛되게 한다.

간신 백비의 모함을 듣고 부차는 촉루검을 내려 보냈다.
오자서가 그 칼로 자결하면서 부하들에게 말했다.
“내 눈을 빼서 동문에 매달아놓아라.
월나라가 쳐들어오는 것을 똑똑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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