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객원논설위원
김영인 객원논설위원

'삼국지'의 조조(曹操)는 후계자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조조에게는 아들이 더 있었지만, 말년에는 조비(曹丕)과 조식(曹植) 둘만 남아 있었다.

조조의 마음은 두 아들 가운데 작은아들 조식에게 쏠리고 있었다. 조식은 문장이 뛰어나고, 사람을 사귀는 교제의 폭도 넓었다. 그래서 조조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순리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큰아들을 두고 작은아들을 세우기는 어려웠다. 머리 좋고 결단력 있는 조조도 그게 고민이었다. 당연히 두 아들은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 관계에 놓이고 있었다.

큰아들 조비는 세자 자리를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궁리 끝에 조조의 참모인 가후를 찾아가서 상의했다. 하지만 가후가 들려준 말은 기껏 '교과서' 수준이었다.

"덕을 넓히고, 법도를 존중해 선비의 자질을 닦으십시오. 아침저녁으로 거르지 말고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처신하는 길뿐입니다."

그래도 조비는 가후의 충고를 따랐다. 언행을 신중하게 하며 때를 노렸다. 그러는 사이에, 기회가 왔다. 조조가 원정을 떠나게 된 것이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승리를 빌었다. 작은아들 조식은 뛰어난 문장력을 발휘했다. 아버지의 공적을 기리는 글을 바쳤다. 낭랑한 목소리로 읊었다. 멋있는 글이었다. 출정을 앞둔 조조와 장수들은 모두 기뻐했다.

조비 역시 무슨 글이라도 올려야 했다. 그렇지만 조비는 글을 짓지 않았다. 말조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바닥에 엎드려 단지 눈물만 쏟으며 아버지 조조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다.

대세는 그 '눈물 몇 방울'로 결정되었다. 조조는 물론이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고 만 것이다. 조비는 자신의 효심이 조식의 재간보다 낫다는 중론을 끌어내고 있었다.

글 재간이 뒤지는 조비는 이렇게 세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조비는 간사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버지 조조의 신뢰를 얻어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악어의 눈물' 작전을 동원한 것이다.

조비는 이런 '꼼수'로 세자가 되고 마침내 위나라 왕위에 올랐지만, 아무래도 동생 조식이 껄끄러웠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가능성' 때문이었다.

조비는 조식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지으라고 명령했다. 만약에 짓지 못하면 처형하겠다고 선언했다. 조식은 형 앞에서 유명한 '칠보시(七步詩)'를 읊어야 했다.

"콩깍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煮豆燃豆기)/ 가마솥 속에서 콩이 우는구나(豆在釜中泣)/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本是同根生)/ 왜 이렇게 급히 삶아대는가(相煎何太急)."

조식은 '같은 콩깍지에서 나온 콩'이라며 형제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 조식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여론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 대신 조비는 조식을 변두리로 쫓아냈다. 국정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변두리에서나마 한군데에 있도록 두지 않았다. 조식은 11년 동안 3군데를 옮겨다녀야 했다.

조비는 '효심의 눈물'을 흘리고도, 아버지 조조의 궁녀들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조비가 병들어 누워 있을 때 어머니가 문안 왔더니 궁녀들의 낯이 익었다. 확인 결과, 조조의 궁녀들이었다. 실망한 모친은 나중에 조비가 죽었어도 곡을 하는 예를 갖추지 않았다고 했다. 권력다툼은 아버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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