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객원논설위원
김영인 객원논설위원

아득한 옛날, 치우와 황제가 한판 승부를 다투게 되었다. 하지만 황제는 치우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치우는 수십 마리의 괴물을 동원, 짙은 안개를 일으켜서 황제의 군사를 유인해 순식간에 깨뜨리고 있었다.

참패를 당한 황제는 신하들을 소집, 긴급 작전회의를 소집했다. 한편으로는 날랜 군사를 보내 치우를 정탐하도록 했다. 그런 결과 치우의 약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치우는 용의 울음소리를 두려워한다"는 것이었다.

황제는 즉시 응용(應龍)을 출전시켰다. 용의 조화로 비를 일으켜서 치우의 안개를 물리치자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치우는 용이 조화를 부리기도 전에 풍백(風伯)과 우사(雨師)를 시켜서 폭풍우를 쏟아냈다. 온 천지가 물바다로 변했다. 황제의 군사는 궤멸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황제는 다급했다. 부랴부랴 2차 작전회의를 소집했다. 하늘에 있는 자신의 딸 한발(旱魃)이 물망에 올랐다. 한발을 보내면 치우를 물리칠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한발은 얼굴이 뛰어난 '얼짱'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몸이 항상 이글거리는 '뜨거운 여성'이었다. 용광로 닮은 여성이었다. 한발은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는 것을 '밝히는' 체질이기도 했다.

황제의 명령을 받고 출전한 한발은 불덩이 같은 몸으로 치우의 폭풍우를 증발시켰다. 폭풍우가 사라지면서 다시 햇볕이 내리쬐게 되었다. 무서운 치우의 기세를 일단 진압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한발도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한발은 전쟁이 끝나도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간 세상에 눌러앉았다. 그 바람에 한발이 가는 곳은 비 한 방울 오지 않고 바짝 타 들어갔다. 심한 '한발'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백성의 원성이 높아지자, 황제는 한발에게 적수(赤水) 이북에서만 살도록 지시했다. 그러면 그 이남은 안전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발의 '뜨거운 방랑벽'까지 잠재울 수는 없었다. 한발은 황제 모르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럴 때마다 한재(旱災)는 심각해졌다.

골치를 앓던 황제는 마침내 해결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도랑을 파는 것이었다. 도랑을 파면서 "제발 적수 이북으로 물러가 달라"고 기도하면, 한발은 마지못해서 발길을 돌렸다는 얘기다.

장마가 물러가는가 했더니, 또 폭염이다.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이 벌써 여럿이라는 보도다. 뙤약볕을 받으며 일을 하다가 쓰러지고 있었다. 지난해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오는 2050년대에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연평균 134명에 달할 수 있다고 했다.

폭염은 온실가스와는 무관할 것 같았던 시대에도 있었다. 조선 때 시인 이언진(李彦璡· 1740∼1766)은 찌는 듯한 서울 거리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흘리는 땀이 마치 간장 흐르듯(街頭汗流如醬)/사람들이 손에서 부채를 놓지 못하는구나(箇箇扇不離手)/대석교 다리에 있는 사자상의 목에도(大石橋獅子項)/ 물 한 방울 흘러내린 흔적이 남아있네(看水痕一顆走)."

얼마나 더웠으면 '소금땀'이 간장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돌다리 위에 놓여 있던 '돌사자'까지 땀방울을 굴릴 정도였다. 오늘날 더위가 '땀 흘리는 돌사자' 당시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서 '검색'해본 '폭염의 과거사'다.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