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객원논설위원
김영인 객원논설위원

'고용(雇傭)'이라는 말을 풀어보자.

'품살 고(雇)'는 집(戶·호) 속에 새(隹·추)가 들어가 있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까 새장 속에 갇힌 새를 의미하는 글자다.

'품팔이 할 용(傭)'은 원래 글자가 용(庸)으로, '용(用)'과 같은 말이다.  철저하게 써먹는다는 뜻이다.

새장 속에 새를 가두려면 먹이를 줘야한다. 주지 않으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은 어떤 사람을 일정한 기간 동안, 또는 평생을 부려먹으면서 '새 모이'만큼 '보수'를 주는 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새는 좁쌀 한 톨을 주더라도 반드시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숙이고 부리로 찍어야 먹을 수 있다. 숙이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 사람이 보면 마치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다. '인사성'이 이렇게 밝은 짐승은 아마도 없다.

더구나 새장 속의 새는 빠져나갈 재간도 없다. 풀어주기 전에는 주는 모이를 받아먹으며 주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지지배배' 울어야 한다.

'고용'도 다르지 않았다.

농업이 산업의 전부였던 옛날에는 가뭄이나 홍수를 만나면 농사를 망쳤다. 그러면 먹을 것이 없었다.  굶주린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떠돌 수밖에 없었다. 유민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재수가 좋으면 농토를 가지고 있는 지주(地主)를 만났다.  지주는 그 떠돌이에게 음식을 주며 일을 시켰다.

지주 덕분에 굶어죽지 않게 된 떠돌이는 뼈가 빠지도록 일해서 보답했다. 뚜렷하게 갈 곳이 없는 떠돌이는 새 모이만큼 보수를 주더라도 고마워하고 충성을 다했다. 그것이 '고용'이었다.

그랬으니, 월급이라는 것은 애당초 넉넉하게 주는 게 아니었다. 그럭저럭 빠듯하게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주는 것이었다. 월급쟁이는 새장 속의 새와 '닮은꼴'이었다.

오늘날의 '고용'은 물론 달라졌다. '평균연봉'이 '억'인 직장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곳도 많았다.

어떤 호텔이 그랬다. 상시근로자의 70%를 '현장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채우더니, 고작 30만 원의 월급을 줬다는 고용노동부 조사다. 이 호텔은 근로계약서조차 생략하고 있었다. 어떤 미용실은 손님이 없는 시간은 '휴식시간'이라며 월급을 깎았다. 고용노동부가 '수시 감독'한 결과, 151개 업체 가운데 103개가 이른바 '열정 페이'였다

'최저임금'도 그렇다. 내년 최저임금은 '시급'이 올해보다 8.1% 오른 6,03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126만 270원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월급에는 '월 209시간 근무'라는 '단서'가 있었다.

한 달 30일에서 일요일 4번을 빼면 26일이다. 하루 8시간씩 26일을 일해야 209시간과 비슷한 208시간을 채울 수 있다. 일주일에 5일만 일을 할 경우, 월 209시간은 어림도 없다. 일요일만 쉬고 토요일에도 일하는 '주 6일 근무'를 해야 월 209시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시급 6030원×8시간×26일=월급 1,254,240원이다.

'주 5일 근무'에 '대체휴일', '시간선택' 근무까지 하라는 대한민국이다. 그렇지만 최저임금은 예외다. '주 6일'을 꼬박 일해야 126만 원 가량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 최저임금도 못 받는 월급쟁이가 올해 3월 현재 232만 명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사상 최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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