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공자 (7)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可以速而速 可以久而久 가이속이속 가이구이구
서둘러야 할 때 서두르고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다 (<孟子>만장 하편)
맹자가 역사속의 성인들을 비교하면서 공자에 대해 설명한 말

“백이(伯夷)는 맑은 성인이었고, 이윤(伊尹)은 백성에게 책임을 지는 성인이었으며, 유하혜는 화합하는 성인이었다. 그리고 공자는 시의를 따르는 성인이었다.”

맹자는 자기 이전에 활약했던 역대의 성인들에 대하여 이렇게 평했다.

‘백이는 나쁜 것은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정치가 올바르면 벼슬길에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물러났다. 이윤은 정치가 잘 다스려질 때도 나아갔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도 물러서지 않았다. 정치가 어지러울 때라도 백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하혜는 비열한 군주를 만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낮은 벼슬도 사양하지 않았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이니, 비록 내 곁에서 벌거벗은들 내가 더럽혀지겠느냐. 그러므로 유하혜의 풍도를 듣는 사람은 옹졸하던 사람도 넓어지고 인색한 사람도 후해졌다. 공자는 때에 맞게 행하는 사람이어서, 서둘러야 할 때 서두르고 기다려야 할 때 기다렸으며, 머물러야 할 때 머물고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갔다(可以速而速 可以久而久 可以處而處 可以仕而仕 孔子也=<맹자>만장 하편)’

귀부인 남자(南子)의 유혹

시대의 스승이며 천하에 예(禮)의 화신으로 소문난 공자도 일생에 단 한번, 추문에 휩싸인 일이 있었다.

위나라를 떠났으나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온 공자는 다시 위나라로 돌아왔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 아직 때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그를 초조하게 했다.

어떤 사람이 찾아와 귀띔했다. “위나라에서 우리 군주와 친하고 싶은 사람들은 먼저 그 부인을 만납니다. 군주께서 워낙 애처가시라 모든 정사가 군부인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죠.”

영공의 부인은 남자(南子)라고 불렸다. 젊은 부인은 늙은 남편으로부터 총애를 받아 그 힘이 대단했는데, 평소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다. 주로 잘난 남자들을 자주 만났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야릇한 소문도 돌았다.

공자에게 말을 건넨 사람은 사실 남자가 사주하여 보낸 심부름꾼이었다.

그가 부인과의 독대를 주선하겠다고 제안했다. 사실상 초대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공자는 거절했다. 거듭 사양했지만 심부름 온 사람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아무리 아녀자라 해도, 남자는 군주를 손에 넣고 주무르는 권력자였다. 제후 부인의 초대를 사양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공자는 그를 따라나섰다.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가자 남자는 휘장 안에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공자는 고개를 숙여 신하의 예로 인사했다. 휘장 안에서 답례하는 남자의 허리에 매달린 장식들이 아름다운 방울소리를 냈다. 공자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 소리만 들었다. 잠시의 독대였으니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나이와 상관없이 잘난 남자라면 만나보고 싶어 하는 남자의 호기심은 곧 세간에 무성한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숙소로 돌아온 공자를 제자들은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만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계속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므로 부득이 한 번 인사하고 온 것이다.”
 
제자들은 곧 김빠진 표정이 되었지만, 성질 급한 자로는 기어코 불만을 나타냈다. 남자에 대해 워낙 화려한 소문이 많았기 때문에, 이 일로 스승의 체면이 손상됐다고 여긴 것이다.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인가. 공자도 역정이 나서 하늘을 가리키며 맹세했다. “만일 내게 조금이라도 사악한 마음이 있었다면 나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 내가 천벌을 받을 거야(予所不者 天厭之 天厭之).”

소풍 행렬의 들러리 

공자의 마음은 단호했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나 이 소동이 잊혀질만해서 남자는 또 공자를 보고 싶었던가 보다. 이번에는 영공의 힘을 빌어 공자를 초대했다. 군주의 호출을 받고 기대에 차서 들어가 보니 영공은 외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처럼 시원한 야외로 나갈 것이니 함께 가시지요.”

군주와 담론할 기회를 기다리던 공자로서는 맥 빠지는 일이었으나, 거절할 수도 없어서 뒤를 따랐다. 영공 부처의 화려한 수레가 앞서 가고 그 뒤를 공자의 수레가 따라갔다. 연도에는 구경나온 백성들이 가득했다. 군주도, 그 유명한 공자도 그들에겐 좋은 구경꺼리였다.

소풍은 그저 소풍으로 끝났다. 단지 위대한 성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영공의 처사에 공자는 분통이 터졌다. 권력자의 들러리가 되었다는 데 수모감마저 느꼈다.

“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吾未見 好德如好色者也).”

우울한 마음을 경과 거문고 연주로 달래며 번민의 날을 보내고 있을 때 위나라에서 정치적 변란이 일어났다. 태자 괴외가 아버지의 후처인 남자를 제거하려다 들켜 달아나는 사건이 이 때 일어난 것이다. 영공이 괴외를 제거하기 위해서 전략을 물어오자 공자는 ‘군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라며 얼버무렸다.

부자간에 권력 다툼이 일어난 위나라에서 더 이상 덕을 기대할 수 없음은 명백해졌다.
아직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공자는 제자들을 거느리고 위나라를 떠났다.

영공 부처의 화려한 수레 뒤를 공자의 수레가 따라갔다. 연도에는 구경나온 백성들이 가득했다. 단지 위대한 성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영공의 처사에 공자는 분통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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