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공자(1)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與其進也 不與其退也 여기진야 불여기퇴야
오는 사람은 받아들이고 가는 사람은 막지 않는다. <論語>述而편)
편벽하기로 소문난 互鄕 사람이 배우러 오자, 공자가 과거를 묻지 말고 받아들이라며

그 때 노나라 곡부에서 만년의 공자(孔子)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춘추(春秋)>를 집필하고 있었다. 노 애공 14년(BC481)이다.

애공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사냥터에 나가 하루를 보내고 돌아올 무렵 신비로운 짐승을 잡았다. 사슴이나 고라니보다 훨씬 크며 온몸에 얼룩무늬가 있고 머리 위해 하나밖에 없는 뿔에서는 광택이 흘렀다.

짐승은 사람들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발목이 부러져 붙잡혔는데,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이름을 알지 못하니 상서로운지 여부도 알 수 없어 시신의 처리방법도 결정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모든 사물에 통달하여 모르는 게 없는 공자에게 묻기로 하고, 다음날 일찍 숙손씨가 공자의 제자인 자공과 함께 공자에게로 갔다.

공자는 두 사람의 설명을 듣더니 즉시 일어나 그들과 함께 짐승이 쓰러져 있는 사냥터로 갔다. 직접 동물을 살피던 공자는 안색이 변하면서 말했다.

“이 동물은 기린이다. 왜 이곳에 나타났을까. 왜 지금 나타났을까. 내가 걸어온 길도 여기서 다했단 말인가.”

그는 옷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꼈다.

“기린은 어진 동물이라 그것이 나타나면 상서로운 조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째서 눈물까지 흘리시나요.”

집으로 함께 돌아와 자공이 궁금증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스승이 대답했다.

“네가 어찌 알겠느냐. 물론 기린은 상서로운 동물이다. 그러나 상서로운 동물은 현명한 군주가 다스릴 때에 나타나는 법이다. 옛날 요 임금 때 기린이 교외에 나타나 거닐었고, 백성들은 그 상서로움을 알기 때문에 감히 기린을 다치게 하지 않았느니라. 주 왕조가 일어날 때는 기산에서 봉황이 울었고 기린이 들판에 나타났더니라. 기린은 태평성대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기린이 나타난 것은 이상하지 않으냐. 천하를 이끄는 성군은 그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시기가 아닌데 나타났다가 발목이 부러져 죽게 되다니, 이것은 길조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슬퍼하는 것이다.”

한동안 공자의 슬픔이 제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며칠 뒤에 공자가 노나라 안에 있는 제자들을 모이게 했다.

“때가 아닌데도 기린이 나타났다가 죽음을 당했다. 이것으로 나의 도도 이제 끝났다. 저술을 이제 끝내야 하는데, 주나라 역사를 기록한 <춘추>를 보완하는 일이 남아있구나. 이것도 그대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제 붓을 꺾을 터이니 그것을 이 책의 마무리로 삼아라.”

일을 제자들에게 맡긴 후에 선생은 하루하루를 한가로이 소일했다.

이듬해 공자는 강당의 두 기둥 사이에 앉아있는 꿈을 꾼 뒤 병석에 누웠으며, 7일이 지나 제자들이 모여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노 애공 16년 4월, 향년 73세였다.

이야기 PLUS   

공자(551-479 BCE)가 활동한 시기는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전환되던 무렵으로 중원에는 급격한 권력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30대에 낙양으로 가 노자(老子)를 만난 뒤 노나라에서 벼슬을 시작해 소공과 정공을 도왔고, 50세 무렵부터는 위(衛)-진(晉)-진(陳)-정(鄭)-송(宋)을 다니며 제후들을 만나고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 했으나 끝내 기회를 얻지 못했다.

굶어죽을 위기도 넘겼고, 그를 시기한 벼슬아치에 의해 암살될 위험도 겪었으며,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떠돌 때는 ‘상갓집 개’에 비유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50대에 노나라를 떠나 다시 돌아갈 때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이었다.

그의 사상이 중국의 정치 문화 역사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이후 2천5백년 가까운 세월동안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각국의 문화는 공자의 그늘에서 한 시도 벗어난 적이 없다. 거대하다고 일컬어지는 그 어떤 황제나 학자 문인 예술가나 정복자들도 그만큼 큰 영향을 남기지는 못했다.

공자는 평생을 공부하며 살았다. 공부가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무슨 문제를 안고 온종일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깨닫는 바가 없었다. 결국 생각과 반성만으로는 위태로우며, 배우는 것이 제일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또 성질이 강직한 제자 자로를 불러 공부의 중요성을 이렇게 가르쳤다.

“6언6폐라는 말을 들어보았느냐. ①사람이 인자하되 공부를 싫어하면 어리석은 폐해가 있고(好仁不好學 其蔽也愚), ②알고 싶은 게 많으면서도 공부를 싫어하면 방탕하기 쉬우며(好知不好學 其蔽也蕩), ③신의를 좋아하면서 공부는 싫어하다면 도둑떼가 되기 쉽고(好信不好學 其蔽也賊), ④강직하되 공부를 싫어하면 가혹해지기 쉽고(好直不好學 其蔽也絞), ⑤용맹을 지니고 공부를 싫어하면 난폭해지는 폐단이 있고(好勇不好學 其蔽也亂), ⑥굳센 사람이 공부를 싫어한다면 광분하게 되느니라(好剛不好學 其蔽也狂).”

다음 회부터 <사기>에 나타난 공자의 주요 행적들을, 그의 유훈들과 함께 거칠게나마 연대순으로 훑어보기로 한다.

“어진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어리석고, 호기심 많은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방탕하며, 의리 있는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도적떼가 되고, 강직하며 배우지 않으면 가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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