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전관 변호사 대거 선임…"제도 취지에 반해"

[현대경제신문 차종혁 기자] 올해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고위 검사를 지낸 법조인들이 한창 수사나 재판을 받는 재벌그룹의 지주사와 계열사 사외이사로 대거 선임됐다.

부정부패 척결이 우리 사회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오너의 전횡을 막고 기업 비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사외이사 제도 취지에 반하는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CJ오쇼핑은 김종빈 전 검찰총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김 전 총장은 2012년 3월 주총에서 임기 3년의 사외이사로 처음 선임된 후 올해 연임됐다.

CJ대한통운은 최찬묵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2011년에 이어 한 차례 더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최 전 부장검사는 2013년 이재현 CJ그룹 회장 변호인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주주를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가 거꾸로 그를 변호한 셈이다.

효성은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김 전 차관은 2007년 3월 주총에서 임기 2년의 사외이사로 처음 선임된 후 올해까지 무려 네 차례나 임기를 연장했다.

이밖에 포스코에는 선우영 전 서울동부지검장이 사외이사로 선임돼 있다. 현직에서 제이유 사건 등을 수사 지휘한 선우영 전 검사장은 작년 3월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고위 검사 출신을 사외이사로 불러들인 이들 기업은 수사·재판을 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각에서는 사외이사들이 대주주 등을 위해 사실상 로비스트 역할을 한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전관 변호사들은 사외이사를 맡는 대가로 매년 약 4천만∼7천만원의 보수를 지급받지만, 이사회 주요 의결사항에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가 거의 없어 외관상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사외이사가 변호사로서 기소된 대주주를 변호하는 것은 상법상 불법은 아니어도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며 "법 개정으로 이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사법처리 단계에 있는 재벌그룹은 각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판·검사 출신 변호사를 굉장히 선호한다"며 "제도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능력 있는 법조인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게 볼 일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고위 검사를 지낸 법조인은 기업의 준법 경영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준다"며 "경영진이 사외이사에 수시로 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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