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익 경제부장.
구자익 경제부장.

SK그룹의 ‘맏형’격인 SK이노베이션이 최대의 위기다.

선장을 잃고 침몰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65조8천756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전년(66조6천695억원)에 비해 9.2%나 줄었다.

특히 2천24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1조3천828억원)에 비해 무려 8천757억원이나 줄어든 규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일쇼크(1980년)이후 34년 만에 배당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까지 1주당 약 3천원 상당의 배당을 받았던 주주들 입장에선 쓴맛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SK이노베이션 계열사들의 실적도 줄줄이 곤두박질쳤다.

SK에너지는 7천83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SK인천석유화학도 3천944억원의 손실을 봤다.

SK종합화학의 영업이익은 3천592억원으로 전년(8천461억원)보다 58.4%나 감소했다.

전년에는 석유화학 및 석유개발사업이 정유사업의 부진을 만회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평가손실로 천문학적인 손해를 봤다. 일을 하는 만큼 손실이 생겨났다.

이는 최태원 회장의 공백이 낳은 현실이다. 단호하고 과감한 오너의 결단이 없었기 때문에 주주들은 빈손이 됐다.

최 회장의 긴 공백은 SK이노베이션의 탈출구로 점쳐졌던 신사업 포기로 이어졌다.

투자의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호주에서 300여곳의 주유소를 운영하는 페트롤리엄(UP)의 지분을 인수하려고 했다가 발을 뺐다.

호주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석유수입량이 많다. 게다가 석유정제시설 노후화에 따른 석유제품 생산량 감소로 수년 내 최대 석유수입국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컸다.

SK이노베이션은 호주를 선제적으로 공략해 고정적인 석유제품 판로로 확보한 뒤 정제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본 입찰에서 빠졌다.

무려 8천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결정할 오너가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충칭BDO 합작법인에 대한 투자도 접었다.

이 사업은 연간 20만톤의 BDO와 초산(60만톤), 암모니아(25만톤)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대형 플랜트를 건설해 운영하는 것으로 최 회장이 직접 지휘했다.

최 회장이 직접 중국 시노펙 왕티엔푸 총경리와 합의해 추진했지만 최 회장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타이밍을 잃고 흐지부지 됐다.

‘골든타임’은 사고나 사건에서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금쪽같은 시간’을 말한다.

기업의 투자와 성장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제때에 투자해야 탄탄하게 제대로 성장한다.

이제 2년 넘게 복역한 최 회장. 아직도 최 회장이 대가를 제대로 치르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가 침해한 법익이 개인인지 사회인지, 아니면 국가인지 따져보고 그를 지켜보는 눈길이 투자와 성장의 골든타임을 막아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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