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정나라 현신 자산(子産)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子之愛人 傷之而已 자지애인 상지이이
사람을 아낀다는 이유로 (분수에 넘치는 일을 맡겨) 상처를 입히다 <春秋 左氏傳>  
정나라 재상 자피가 젊은 수하에게 고을을 맡기려 하자 대부 자산이 만류하며 


정(鄭)나라의 대부 자산(子産)은, 그의 생시에 오나라의 연릉계자 계찰이 찾아와 존경을 표했고 후일 공자(孔子)가 수차례나 칭송한 당대의 현자였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유력한 현자라 해도 모국인 정나라가 워낙 약소했기 때문에, 군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울어가는 나라를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일 밖에 달리 없었다. 일찍이 계찰은 노나라에서 정나라 노래를 들었을 때 “곡조의 정서가 매우 쇠약하니 백성의 삶이 힘겨워 아마도 가장 먼저 망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를 내다보는 현자들은 모두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할 정도였다.

정나라에서 도공-성공을 이어 희공(釐公)이 군주가 되었을 때 재상은 자사(子駟)였다. 나라의 기운이 이러한데도 희공은 방만했던 모양이다. 자사가 군주를 조회할 때 희공은 실권자에 대한 예를 갖추지 않았다. 모독감을 느낀 자사는 요리사를 시켜 희공의 음식에 독약을 넣게 해서 죽였다. 다른 제후국에 부고를 보내 “희공께서 갑작스런 병으로 별세했다”고 알린 뒤에 희공의 다섯 살 먹은 아들 희가를 군주로 세웠다. 그가 간공(簡公)이다.

자사가 나이어린 공자를 군주로 세운 것은 마음속에 이미 다른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후의 일족인 여러 공자들이 이를 알고 자사를 죽이려고 모의하다가 오히려 자사에게 선수를 빼앗겨 모두 죽고 말았다. 자사는 이제 오만했다. 자기보다 전공이 앞선 사람의 공을 가로채고, 농지의 수로를 정비한다고 하면서 남의 밭을 침범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간공 3년에 마침내 간공을 폐하고 스스로 군주가 되려 하자 사도인 자공이 자사를 죽였다. 자사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자공은 그들을 부추겨 집정관들의 새벽 조회 장소를 기습하게 한 것이다. 자사는 군주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서 덕을 쌓으며 민심을 얻어도 모자랄 마당에 주변에 많은 적을 만들었으니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이때 죄 없는 집정관들이 조회석상에서 함께 피살됐다. 사마 자국이 피살되었으므로 그의 아들인 자산이 뛰어와 군사를 모으고 사태를 수습했다. 제후 간공의 나이 아직 8세에 지나지 않으니 불안요인은 남아있었다. 자공이 규정을 만들어, 간공을 대신해 돌아가면서 정권을 맡자고 제안했다. 대부와 관료들이 이를 거부했다. 자공은 “나라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했으나 대부들은 그 의도를 의심했다. 자산이 경고했다. “자사가 권력을 잡으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당신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또 그를 본받으려 한다면 어지러움은 끝날 날이 없을 것입니다.” 자공이 규정을 불태우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대부들이 마음을 놓았다. 자공은 야심을 버리고 재상이 되었다. 
간공은 겨우 다섯 살의 나이에 군주가 되었고 권력에 욕심을 가진 여러 공자와 대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36년이나 권좌를 지키며 장수한 군주가 되었다. 여기에는 한 마음으로 제후를 보좌하며 지혜롭게 국정을 이끌어간 자산의 공이 크다. 그로부터 10년 뒤 재상 자공은 여전히 세도를 부리며 전횡을 일삼다가 끝내 간공을 분노케 하여 처형되었다. 이후 자산이 재상이 되었다.

 

이야기 PLUS

자산이 재상이 된 과정과 관련하여 좌전은 이렇게 전한다. 자공이 처형된 뒤 10여년이 흘렀다. 자전이란 이가 재상을 맡고 있다가 늙어 죽게 되자 간공은 자전의 아들 자피(子皮)로 하여금 자리를 잇게 했다. 자피와 자산은 같은 또래로 막역한 사이였다. 

자피가 아끼던 젊은 가신 윤하에게 한 고을을 맡기려 하자 자산이 만류했다. 
“그는 아직 어려서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피가 말했다. “그래도 착실한 사람이니, 먼저 부임한 뒤에 배워가면서 해도 될 것입니다.” 
자산이 말했다. “그를 아끼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마땅히 그를 위해 좋은 일인가도 헤아려야 합니다(人之愛人 求利之也). 아직 정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고을을 맡기는 것은 칼질을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에게 벅찬 일을 맡겨 실패한다면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을 안기는 결과가 됩니다(子之愛人 傷之而已). 오히려 당신의 사랑을 받지 않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를 아끼시더라도 좋은 비단을 겨우 재단을 배우는 사람에게 맡기지 마십시오(子有美錦 不使人學製焉). 마땅히 재단이 능숙한 사람에게 맡겨야 비단은 좋은 옷이 됩니다. 나는 배운 뒤에 정사(政事)를 맡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정사를 맡은 뒤에 배워간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사냥터에서는 말타기와 활쏘기에 익숙한 사람이라야 짐승을 잡을 수 있습니다. 말 타기에도 서툰 사람은 말에서 떨어질 것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데 어느 결에 짐승 잡을 엄두를 내겠습니까.”

자피는 논리 정연한 자산의 말에 감복하여 뜻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현명한 자산이 정치를 맡는 게 옳다고 여기고 극구 제청하여 자산에게 재상자리를 넘겨주었다. 뒤에 자산을 해치려는 경쟁자가 나타났을 때도 자피가 자산을 지켜주었다.  


“정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벼슬을 맡기는 것은 칼질을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과분한 일을 맡겨 실패한다면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를 입히는 결과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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