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세 나라 섬긴 신공무신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天下多美婦人 何必是 천하다미부인 하필시
천하에 아름다운 부인이 많은데, 하필 이 여자라야만 합니까.  (<左傳> 성공2년)
초나라 장군 자반이 잡아온 요녀 하희를 취하려 하자 신공무신이 만류하면서    


신공무신(申公巫臣)이란 인물이 있었다. 실력도 있고 요령도 좋은 사람으로, 본래 초 장왕의 근신(近臣)이었다.
 
진(晉)나라에서 하징서가 자기 군주인 영공을 시해했을 때 초나라가 출동하여 그를 죽이고 사건의 원인이 된 요녀 하희(夏姬)를 잡아왔을 때, 장왕은 하희를 첩으로 삼을 욕심이 있었다.
 
그러자 무신은 “임금께서는 죄지은 자를 토벌하기 위해 제후들을 동원하신 것인데, 붙잡아온 여자를 첩으로 삼으신다면 마치 색을 탐해서 전쟁을 벌인 꼴이 될 것입니다”라고 직언하여 장왕이 포기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장군 자반이 하희를 취하려 했다. 무신은 또 만류했다. “이 여자는 정나라에 있을 때 남편을 요절케 했고, 진나라 어숙에게 시집간 후 그 남편이 또 죽었으며, 진나라 영공도 그 여자로 인해 죽고 두 사람의 대부가 망명해야 했습니다.
 
그로 인해 나라가 망했고, 결국 자기 아들도 죽었으니 이처럼 불길한 여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 여자를 취하는 남자마다 죽습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여자가 얼마든지 있는데, 하필 이런 여자를 취하려 하십니까(天下多美婦人 何必是).”
 
결국 장왕은 하희를 영윤인 양로에게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로 역시 전쟁터에 나가 죽었다. 실로 기구하거나 기가 센 여자였다. 양로가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된 가운데, 집을 지키고 있던 양로의 아들 흑요가 하희와 간통했다. 
 
무신은 하희를 친정인 정나라로 보내도록 일을 꾸몄다. 정나라 사람들에게는 “남편 양로의 시신을 찾을 수 없으니 와서 찾아가라”는 명분으로 하희를 불러들이게 했으며, 초 장왕에게는 정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외교적으로 유익하다는 논리로 허락을 종용했다. 하희는 “남편의 시신을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례하고 떠나갔다. 
 
얼마 뒤 장공이 죽었다. 새 임금 공왕이 즉위하여 제나라에 친선사절을 보내게 되자 신공무신이 사절을 자청하여 길을 떠났다. 무신이 떠나면서 식솔을 모두 거느리고 갔기 때문에 초나라 대부들은 그제야 무신이 초나라를 떠나버린 것을 눈치 챘다. 무신은 왕족인 자반이 하희를 취하려는 것을 막았고, 뒤에 토지 문제로 또 갈등이 생겼기 때문에 어차피 편안히 머물 수 없었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속셈이 있었다. 하희를 정나라로 보낼 때 무신은 하희와 내통하여 “정나라로 돌아가 있으면 가서 아내로 맞겠소”라고 약조했던 것이다. 
 
무신은 제나라로 가는 척하며 정나라를 지나가다가 함께 온 일행에게 제나라에 보내는 예물을 가지고 초나라로 되돌아가게 하고는 정나라에 눌러앉았다. 그는 정나라 군주 양공의 양해를 얻어 하희를 아내로 취했다. 애초에는 제나라로 가서 살 생각이었지만 마침 제나라가 진(晉)과 싸워 패했기 때문에 “패한 나라에 가서 살고 싶지는 않다”면서 진나라로 가버렸다. 무신과 친분 있는 극지가 그를 천거하여 무신은 진나라의 대부가 되었다.
 
신공무신은 후에 진나라 군주의 명을 받아 새롭게 떠오르고 있던 오(吳)나라로 들어갔다.
중원의 신 병법인 마장술과 기병의 운용을 무신이 오나라에 가르쳤다. 이 또한 무신 스스로가 진나라 군주에게 청하여 이루어진 일이다. 당시 오나라는 19대 수몽(壽夢)이 왕이 되어 바야흐로 세력을 넓히면서 중원진출을 꾀하고 있을 때였다. 무신은 오나라를 무장시켜 진나라의 경쟁국인 초나라를 견제하는 데 활용하려 했다.  
 
이야기 PLUS
 
신공무신은 보기 드문 영웅이다. 본래 초나라의 유력한 대부였고, 진나라로 들어가 대부가 되었으며, 오나라에 와서 강성대국의 기틀을 마련해주고 자기 아들을 행인(行人)으로 남게 했다. 세 나라에서 세도를 누리고 그 때마다 공을 쌓았으니 어느 군주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비록 제후를 섬기는 신하의 신분이었지만 여느 제후 부럽지 않은 여의함을 누렸다.
 
무신이 처음 초를 떠나 진나라로 갔을 때 그를 시기한 초나라 자반이 무신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진나라에 뇌물을 쓰려 했으나 초나라 왕이 반대했다. 그 때 초나라는 장왕이 죽고 공왕이 즉위한 직후였다. 공왕이 자반에게 말했다.
 
“무신이 오직 자신을 위해 떠나간 일은 잘못이지만, 선왕을 모실 때 충성스러웠으며 그의 충성으로 인해 사직이 튼튼해졌으니 그 잘못을 갚고도 남음이 있소. 그가 진나라에 이익이 될 사람이라면 우리가 많은 뇌물을 쓴다 해도 진나라가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무익한 사람이라면 장차 그를 버릴 터인데 무엇 때문에 굳이 그의 벼슬길을 막으려고 애를 쓴단 말이오.”
 
그러나 자반이 남아있던 무신의 일족들을 몰살시켰기 때문에 무신은 이를 갈며 오나라로 건너가 병법을 전수했던 것이다. 그의 의도대로 오나라는 강성해져서 초나라와 그 속국들을 잇달아 공격했다. 자반은 오나라의 공격을 막기 위해 1년에 일곱 차례나 왕의 명을 받고 전쟁터를 전전하다가 결국 자기 왕의 오해를 받아 자결해야 했다. 그 뿐인가. 그로부터 1백년이 안되어 등장한 오왕 합려는 중원을 제패하고 강대국인 초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힘을 갖게 되거니와, 이러한 기틀을 마련해준 사람이 바로 신공무신이다. 그는 역사의 앞날까지도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신공무신은 또 보기 드문 사내다. 제후들도 감당하지 못한 절세의 요녀 하희 또한 무신을 남편으로 받아들인 뒤에는 평생을 그와 함께 했다. 영웅호색이란 말도 있지만, 절세의 가녀(佳女)도 진정한 영웅은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하희를 첩으로 얻은 양로가 죽자, 그의 아들 흑요가 하희와 간통했다. 신공무신은 하희를 친정인 정(鄭)나라로 돌려보내게 하고는 곧 그 자신도 정나라로 건너가 하희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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