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鄭나라의 정변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仁而不武 無能達也 인이불무 무능달야
선한 뜻을 가졌어도 힘이 없으면 선에 이를 수 없다 (<左傳> 선공 4년)
鄭나라 대부 자가가 자공의 역모에 반대하면서도 마지못해 가담한 일에 대하여

송나라 문공이 오른팔처럼 중용한 대부는 화원(華元)이다.

송나라에서 소공이 죽고 문공이 즉위한 후 초(楚) 장왕은 군주가 시해된 일을 문책하기 위해 정(鄭)나라를 시켜 공격했다. 패자인 초나라가 주도하는 연합군이란 명분이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초나라군이 도달하기 전에 정나라가 단독으로 송나라를 치게 됐다. 송나라는 화원을 대장으로 삼아 방어에 나섰다. 그런데 제대로 전투를 벌이기도 전에 화원이 정나라에 포로가 되는 바람에 전쟁은 싱겁게 끝났다.

동기는 사소했다. 송나라군은 접전을 앞두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양을 잡아 고기를 나눠주었는데, 대장 화원은 자신의 수레를 모는 마부에게 고기를 나누어주는 것을 잊었다(혹은 나누어준 고기를 마부가 먹지 않으므로 화원이 화를 낸 것이라고도 한다). 양고기 때문에 기분이 상한 화원이 곧장 돌격명령을 내렸다. 마부 양잠은 대장에게 앙심을 품었으므로 돌격 명령과 함께 수레를 몰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수레가 적진 한가운데 고립되는 바람에 화원은 한번 싸워보기도 전에 포로가 되었다. 

대장이 사로잡히자 송군은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하여 돌아갔다.

송나라가 화원을 잃는 것은 전쟁 패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국정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으므로 송나라는 화원의 석방을 위해 정나라에 병거 100승과 아름다운 말 400필을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선물을 다 전달하기도 전에 화원은 스스로 탈출하여 송나라로 돌아왔다.

이듬해 정나라에서는 목공이 죽어 아들 희이가 뒤를 이었다. 영공(靈公)이다.

초나라 왕이 영공에게 큰 자라를 보내왔다. 영공이 이것을 요리사에게 맡겼다.

다음날 아침 정나라 대부 자가와 자공이 조회에 나오다가 마주쳤다.

자공이 기분이 좋은 듯 말했다.

“나는 가끔 집게손가락이 저절로 떨릴 때가 있어요. 그런 날은 반드시 무언가 진귀한 음식을 먹게 된답니다. 오늘은 어떤 진귀한 음식을 먹게 되려고 그런 건지 궁금합니다.”

궁중에 들어가니 마침 영공이 요리상을 받고 있었는데, 큰 솥에 자라탕이 나왔다.

자공이 자가를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하, 이런 뜻이 있었나 봅니다. 과연 신통하지 않소?”

영공이 보고 궁금해서 웃는 이유를 물었다. 자공이 슬금슬금 영공의 밥상머리로 다가서며 자초지종을 말했다. 하지만 영공은 그런 자공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맛보라는 말 한 마디 없이 자라를 혼자서 먹어치웠다. 머쓱해진 자공은 화가 나기도 해서 손가락으로 자라탕 국물을 찍어 맛보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영공 또한 그런 자공에게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단지 먹을 것 이전에 서로에게 어떤 감정이 쌓여있었는지 모르지만, 영공은 이 일을 계기로 자공을 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공이 손을 쓰기 전에 자공이 영공의 계획을 먼저 알아차리고 선수를 쳐서 영공을 죽여 버렸다. 자공은 영공을 치기 전에 자가를 끌어들였다. 자가는 처음에 거사에 반대하였으나, 자공이 강요하고 위협하자 어쩔 수 없이 그 책략에 따랐다. 이에 대하여 군자는 “선한 뜻을 가졌어도 힘이 없으면 그 선을 이룰 수 없다(仁而不武 無能達也).”고 비판했다.  


이야기 PLUS       

고기 한 점 때문에 마부가 자기 대장을 적진 한가운데로 끌고 갔다든가 왕과 대부가 갈등을 빚어 마침내 역모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요즘 같이 고기가 흔한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뜻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그러나 기원전 600년경의 시대상을 감안한다면, 고기는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먹을 수 있는 진귀한 음식들이었다. 그런 만큼 그것을 누구에게 보낸다거나 나누어 준다는 것은 그 행위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 해도 자신과 생사를 같이할 측근에게조차 그것을 나누어주지 않는다면 어찌 그들의 충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신과 생사를 같이하는 마부에게 양고기를 나눠주지 않은 송나라 대부 화원이나 측근 대부에게조차 자라고기 살점 하나 권유하지 않은 정나라 영공은 아무래도 자기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은 못되었던 것 같다. 지나치게 인색한 주인은 자기 목숨을 스스로 위태하게 만든다. 한 사람은 죽을 뻔했고, 한 사람은 목숨을 잃었다. 오늘날에는 이런 일이 부모자식 사이에도 벌어진다.

다른 사람을 부리면서 그들에게 목숨을 맡기고 살림을 맡기는 정도의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 사람을 존중하고 아끼는 태도는 필수적인 덕목일 것이다. 정치계나 기업인들의 경우를 고찰해보면, 그들의 목숨은 대개 측근에게 달렸다. 온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의리로 뭉친 측근에 의해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의 평판이 그리 나쁘지 않았어도 측근의 배신으로 실패한 사람들도 있다. 사람의 생사는 철저한 원칙이나 고상한 인격 보다는 사소한 의리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영공은 자라탕을 한 점 맛보라는 말도 없이 혼자서 먹어치웠다. 자공이 손가락으로 국물을 찍어 맛보고는 나가버렸다. 영공은 괘씸한 생각이 들어 자공을 죽이려 했다. 그러자 자공이 선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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