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신문 최보람 기자] 주류 제조사들에 이어 소매점까지 ‘갑질’을 하는 탓에 주류도매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도매상의 역할은 주류 제조사로 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소매점에 납품하는 단순 업무의 연속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이쪽저쪽에서 모두 차이는 철저한 ‘을’의 입장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류도매상으로서는 주류 제조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주류 제조사들이 도매사를 상대로 카스ㆍ하이트, 참이슬ㆍ처음처럼 등 스테디셀러 제품들의 납품을 줄이거나 지연 배송을 할 경우 주류도매상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도산한 주류도매상 오션주류도 오비맥주 측의 카스맥주 물량 조절로 최대 거래처인 코사마트와의 계약이 끊기면서 운영상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제조업체가 도매상과 도매상간의 거래를 허용케 한 일본의 주세법과 달리 한국 주세법은 도매상 간의 거래를 금지시켰다. 이러한 법적 사항을 이유로 주류 제조사와 도매주류상이 철저한 갑을 관계로 굳어지기 십상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한 주류도매상 관계자는 “도매상 간의 거래가 법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에 제조업체들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한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롯데주류의 대표 제품 배송이 단 며칠이라도 늦어지면 소매점 배달에 큰 차질이 생기고 결국 거래처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소연 했다.

최종 판매처인 소매업자들의 ‘갑질’도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공급처를 찾아야 하는 도매상을 상대로 영업용 냉장고와 TV, 맥주잔뿐만 아니라 ‘공짜 맥주’까지 요구하는 곳도 있다.

이러한 소매점의 ‘물품 요구’를 제조사 측이 거부하거나 일부만 지원할 경우 나머지 금액 또는 전액을 도매주류상이 지원해야 한다. 결국 손해를 불사하고 수익이 적은 소매점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상습적으로 외상을 일삼는 소매점에도 아쉬운 소리를 할 수가 없다. 경쟁 도매상에 거래처를 뺐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도 도매상들은 제조사에 한 달에 최대 세 차례 대금결제를 정확히 지켜야 하고, 납기일을 못 맞출 경우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

이러한 주류 유통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세법’개정으로 도매사간의 주류 거래를 가능케 하고, 주류 업계의 과점 시장을 극복해 기존 제조사들의 시장지배력을 약화시킬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이와 함께 소매점을 둘러싼 도매상간의 과당 경쟁을 지양해 스스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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