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6장 기타 루시퍼(2)

 

*

청계천을 다녀온 뒤 우리 멤버는 자주 모였다. 우리가 다니던 교회 옆 맥도널드 2층은 언제나 한산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용주를 중심으로 모의를 했다. 용주는 우리들만의 기타를 마련해야 한다며 썰을 풀기 시작했다. ‘진정한 음악가에겐 최고의 장비는 필수조건’이라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용주의 말을 정리하면,

‘진정한 음악가 = 좋은 악기 소유 = 비싼 악기’

이런 등식이 성립했다. 최상의 기타를 찾아야 했다. 그것도 단 한 대 뿐인 기타 ‘루시퍼’여야 했다. 우리의 가슴에 별을 품게 만든 신비의 기타 루시퍼를 우리 것으로 만들자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내노라 하는 뮤지션들도 찾기 힘들다는 루시퍼를 고등학생일 뿐인 우리가 찾겠다고? 황당한 계획이었지만 꿈을 꿀 수 있다는 건 좋았다.

우리는 그날, 기타 루시퍼를 찾는 것과 훔치는 것까지, 엄청난 계획을 공모했다.

며칠 뒤 용주는 비장해 보였다. 드디어 루시퍼를 찾았다는 거였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우리는 모두 어리둥절했다. 악기사를 다녀온 뒤 작전 모임 이후 우리는 매일 흥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루시퍼에 얽힌 이야기에 또 다른 이야기를 덧대고 부풀려 27클럽 회원들에게 삽시간에 번졌다. 시간이 갈수록 루시퍼는 감히 아무나 차지할 수 없는 성스러운 물건이 되었다. 그런 기타를 용주가 찾았다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비밀에 휩싸인 신비로운 기타를 대체 어떻게 찾았다는 건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27클럽 임원들(그래봐야 나와 용주, 정대, 소라, 재림이 전부였지만)은 매일 만났다. 만날 때마다 용주는 루시퍼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들고 왔다. 명목상 작전이었지만 우리는 용주가 물어오는 정보를 듣는 게 다였다. 물론 그 정보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세뇌 당하듯 루시퍼 얘기에 열을 올렸다. 특히나 한 달 뒤 처음 시행한다는 동두천 록 페스티벌 때문에 루시퍼에 대한 환상은 극에 달했다. 우리는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수업 시간 외에 나머지 시간은 몽땅 연습에 바쳤다. 용주는 루시퍼를 들고 참가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고 했다.

용주는 매일 비장한 계획을 차곡차곡 세워나갔다. 나는 2학기가 되면 동아리 활동을 대폭 줄이고 수능 공부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형편없이 추락한 성적으론 인서울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아버지 몰래 음악을 계속 할 수 있는 방법은 무리 없이 아버지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주는 것이었다. 록 페스티벌 참가 연습과 공부를 병행하는 건 두 마리 토끼를 다 포기하겠다는 의미였다. 멤버들은 처음으로 열리는 록 페스티벌 소식에 환호성을 내지르며 흥분했다. 나 역시 가슴이 뛰고 흥분됐지만 대회와 대학 사이의 갈등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그런 상황에 용주가 루시퍼를 찾았다니, 이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용주는 페스티벌에서 우승을 하게 되면 특기생으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어서 여러모로 도전해 볼 만 하다고 했다. 우승을 못 했을 경우의 상황은 알고 싶지 않은 듯 했다. 용주는 기타 루시퍼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며 집착증을 보였다. 루시퍼만 있으면 뭐든 가능할 것이란 생각은 나와 나머지 멤버도 모두 같았다. 그동안의 수많은 계획은 이제 두 가지로 압축됐다. 용주의 계획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용주의 계획은 딱히 계획이랄 것도 없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1번, 산다.

 

“미쳤어?”

“돈이 어딨어?”

“가격이 어마어마할 텐데?”

“당장 술 마실 돈도 없잖아.”

우리는 제각각 한 마디씩 했다.

“좋아, 그럼 1번은 탈락!”

 

2번, 빌린다.

 

또 제각각 한 마디씩 마구 던졌다.

“너 같으면 빌려 주겠냐?”

“우리나라에 단 한 대 뿐인 기타를 우리한테 빌려주는 멍청이가 어딨어?”

“우리가 최고의 유명밴드라 해도 빌려줄 리가 없지, 네버네버네에버!”

“빌려주면 그게 무슨 희귀기타겠냐?”

“빌려주면 그건 진짜가 아니라 짝퉁이지.”

나는 찬물을 끼얹듯 한 마디 내뱉었다. 용주가 너무도 당당하게 소리쳤다.

 

3번! 훔친다.

 

우리는 모두 용주를 쳐다보았다. 용주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를 차례로 둘러보며 하나하나 눈을 맞췄다. 재림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아 어쩔, 이 싸한 분위기?”

“훔치자고!”

우리는 동시에 뭐? 하며 용주를 쳐다 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훔치는 게 아니라 잠깐 빌리자는 거지. 페스티벌 끝나면 돌려주는 걸로. 그 기타가 아니면 우린 절대 우승 못 해. 다들 우승하고 싶지 않아? 우리 다들 대학은 가고 싶고 수능은 자신 없잖아. 아 우빈이 넌 빼고.”

멤버들은 모두 용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모두의 표정은 쓰디쓴 가루약을 삼킨 것처럼 일그러졌다. 나는 침묵을 깨고 물었다.

“그 기타 진짜 루시퍼가 맞긴 한 거야?”

“백퍼!”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어?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가 전에 말한 적 있지? 우리 삼촌이 기타계의 전설이었다고. 삼촌이 자주 얘기했던 거랑 디자인도 똑같고, 암튼 진짜야, 이거 완전 팩트라고!”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용주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더 중요한 얘기가 있어.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그 기타를 노리는 팀이 많다는 거야. 우리나라 첫 록 페스티벌이니 음악계가 발칵 뒤집힌 거지.”

정대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다른 팀 손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훔쳐버리자고 했다. 재림이도 찬성했다. 소라와 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용주가 소라에게 의향을 물었다. 소라는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 본 다음 결정하자고 했다. 나는 소라 의견에 찬성했다. 그러나 오래 가진 못했다. 용주와 정대와 재림은 이미 훔치는 것에 동의한 뒤 계획에 돌입했다.

다음 날까지 그렇게 루시퍼를 훔칠 계획을 세우느라 다시 모였다. 다른 친구들은 페스티벌 연습을 핑계로 야자를 쉽게 뺄 수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뺄 자신이 없어 몰래 도망 나왔다. 우리는 루시퍼가 있는 동네를 돌며 사전탐사까지 마쳤다. 한시라도 빨리 루시퍼를 데려와 연습을 본격적으로 하자는 게 용주의 의견이었고, 나는 꼭 루시퍼가 아니라도 상관없지 않냐고 반대했다. 몇 배로 연습량을 늘리는 게 낫지 않겠냐며 용주와 자주 충돌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훔칠 계획을 짜고 탐사까지 마친 뒤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소라에게 전화가 왔다.

“있잖아, 아깐 다 같이 있어서 말 못 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우리가 굳이 기타를 훔쳐서까지 페스티벌에 나가는 게 맞을까?”

나는 소라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소라와는 따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닌 탓에 더 긴장했다. 사실 동아리 활동 외에도 27클럽 회원으로 외부활동을 하게 된 건 소라를 보기 위한 이유가 컸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 그래, 맞아. 훔치는 건 좀 그렇지.”

“용주 말야. 걔, 루시퍼 기타에 너무 심하게 빠진 거 같지 않니? 어쩌지? 막아야 하지 않을까?”

“막는다고 들을 거 같진 않은데.”

“그러다 누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소라와 무슨 얘길 어떻게 주고받은 건지 정신이 없었다. 통화하는 동안 나는 흥분을 감추느라 애를 먹었다. 루시퍼 얘기와 록 페스티벌과 멤버들과 용주의 얘기를 나눴지만 주로 소라가 얘기하고 나는 대답만 했다. 우리 사이에 음악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참 얘기를 나누는 중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고백을 할 뻔했다. 만약 그날 고백을 했더라면 소라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

소라와 재림은 집 앞에서 망을 보기로 했고 정대는 현관 입구에서 망을 보기로 했다. 나와 용주가 안으로 들어가 루시퍼를 가지고 나오기로 했다. 용주의 정보에 따르면 루시퍼 주인은 마침 지방공연 때문에 집이 비어 있다고 했다. 루시퍼는 특별한 공연이 아니면 집에 모셔둔다고 했다. 행운의 여신이 우리 편이라도 된 것 같았다. 우리는 골목 어귀에 둘러서서 손바닥을 포개어 무음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조용한 동네였다. 어느 집 개가 짖을 만도 한데 다행히 개 짖는 소리 없이 조용했다. 루시퍼가 있는 집은 생각보다 허름하고 낡은 집이었다. 담이 낮아 쉽게 뛰어오를 수 있었다. 달빛이 담 안쪽 비좁은 공간으로 쏟아졌다. 하필 이런 날 보름달이 환하게 뜨다니, 오늘만큼은 아름다운 달빛이 방해가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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