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AK LOVER 모집 배너 <사진=애경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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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6장 기타 루시퍼(1)

 

용주는 우리를 청계천 악기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우리나라에 단 한 대뿐인 기타를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는 악기사를 차례로 돌며 용주가 설명한 디자인과 비슷한 기타를 찾기 위해 꼼꼼하게 뒤졌지만 끝내 만날 수 없었다. 악기사의 주인들은 그런 기타가 존재할 리 없다며 어이없어 하거나, 애들의 쓸데없는 호기심 정도로 무시했다. 나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확신에 찬 용주의 말을 믿기로 했다.

대부분의 악기사 전문가들은 한 대 뿐인 희귀한 기타 같은 건 프로 뮤지션이 된 다음 관심 갖기를 권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부터 붙는 게 순서라고 했다. 대신 저렴한 입문용 기타를 소개하기 바빴다. 우리는 여러 악기사를 전전하느라 지쳤다.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돌아가자고 누군가 말했고, 용주는 마지막 한 곳 남았다고 했다.

드디어, 비로소, 우리는 한 대뿐인 기타를 만났다.

정확히는 마지막 악기사 아저씨에게 그토록 원하던 기타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놀라운 얘기들이 아저씨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페도라를 쓰고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는 독특한 외모만큼이나 독특한 방식으로 얘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엔 그 기타를 어떻게 아느냐며 오히려 눈빛을 빛내며 우리에게 물었다. 용주는 꼭 그 기타를 찾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페도라 모자를 위로 들었다 다시 쓰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왠지 마술사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루시퍼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 것뿐이다. 그다음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알겠니?”

“그 기타 이름이 루시퍼예요?”

용주가 물었다.

“그래, 루시퍼! 악의 천사, 타락 천사, 알지?”

나와 정대는 고개를 흔들었고, 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중요한 게 아니지만 ‘루시퍼’라는 이름의 상징은 중요하다고 했다.

“위대한 신에게 대항한 오만한 천사라니! 얘들아, 너무 멋지지 않냐? 니들도 무조건 굽신거리지 말고 뭐든 의심해 보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할 땐 막 밀어붙이는 거야. 그게 남자야. 그게 진정한 용기란 말이다.”

“아 진짜, 왜 그 기타랑 전혀 상관없는 얘길 하고 그러세요. 우리는 그 기타에 대한 얘길 듣고 싶다구요.”

“야 임마, 아까부터 자꾸 까분다 너. 인생 대선배님이 말씀하시면 감사합니다 해야지, 암튼 어디까지 했지?”

나는 아저씨의 주먹을 피해 옆으로 몸을 비켜섰다. 용주와 정대가 킥킥거렸다.

아저씨는 그 기타가 존재하는 건 확실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정작 기타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다 아는 기타였지만 실제로 그 기타를 실제로 봤다는 사람은 아직 없다고 했다. 문제는 그 기타를 소유하면 누구든 저주에 걸린다는 소문 때문에 함부로 그 기타에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고 했다.

“어떤 저주가 내리는데요?”

내가 물었다. 아저씨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나를 보고 말했다.

“이 새끼 아주 웃긴 놈이네. 야야 니들, 아무것도 안 살 거냐? 세상엔 공짜란 없는 법이야. 내가 시간이 남아돌아서 니들 데리고 노닥거리는 줄 아냐.”

그러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기타가 진열된 벽 쪽으로 데려갔다. 장난스러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진지해 보이는 아저씨가 나는 맘에 들었다.

“자 봐라, 저 많은 기타들. 물론 생긴 거야 다 다르지만 쟤들이 다 같은 소리를 낼 것 같냐. 또 저쪽에 통기타들을 봐라. 쟤들은 생긴 게 다 비슷비슷하지?”

우리는 아저씨가 기타 루시퍼 얘기를 하다 말고 또 왜 엉뚱한 데로 빠지는지 슬슬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도 아저씨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 많은 기타들이 소리가 다 다르단 말야. 각자 자신만의 소리를 담고 있단 말이지.”

아저씨는 바로 앞 기타 줄을 집게손가락 끝으로 띠리링 튕겼다. 여러 개의 구슬이 유리 위로 경쾌하게 굴러가듯 맑은 소리를 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아저씨는 손에 닿는 기타의 줄을 건드렸고 그때마다 기타는 소리를 냈다. 내 귀에는 그 소리가 다 그 소리로 들렸다.

“어떻냐 어? 이쪽으로 올수록 소리가 깊어지고 오묘해지지 않냐?”

“잘 모르겠는데요.”

우리는 동시에 대답했고, 아저씨는 무식한 놈들, 하며 처음 자리로 돌아가 다시 기타줄을 하나하나 띠리링 건드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사실은 속으로 감탄했다.

“자자, 이래도 구분이 안 가냐? 니들 귀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내가 말한 귀는 이 귀가 아니고 마음의 귀를 열란 말이다. 준비됐니? 자 잘 들어봐.”

아저씨는 다시 기타줄을 띠리링 튕기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아저씨를 따라 줄을 만지려고 하자 아저씨는 깜짝 놀라, 너희들은 함부로 만지는 거 아니다, 정색했다.

“봐라, 악기마다 자신만의 소리를 갖고 있지. 그래도 질에 따라 소리가 다 다르단 말야. 즉 어떤 장인이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 이 말씀이야. 싸구려 기타는 왜 소리가 구린지 아냐? 몰라? 아무도 몰라? 이 새끼들 이거 기타 치는 애들 맞아? 바로 장인의 정신이 담겨 있지 않아서지.”

아저씨는 페도라의 각 잡힌 주름을 잡아 올려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린 뒤 다시 페도라를 썼다. 나는 아저씨의 동작 하나하나가 꼭 마술사 같아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야 너 안경, 루시퍼는 어떤 소리를 낼 거 같냐?”

정대는 깜짝 놀라 얼버무렸고 아저씨는 정대 녀석의 반응이 재밌는지 으하하하 웃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기왕 음악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으면 좋은 소리를 찾아내고 거기에 맞게 죽도록 연마하라 이런 말씀이시다.”

나는 루시퍼가 어떤 저주를 내리는지 궁금했지만 아저씨는 얘기를 할 듯 말 듯 시간을 끌었다.

“니들, 진짜 아무것도 안 살 거냐? 이런 양심에 털 난 놈들 봐라. 공짜로 얘길 듣겠다는 거냐.”

어휴 결국 꼰대, 사기꾼.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휴,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놈의 짜식이 한숨은, 하며 아저씨는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용주는 저가의 튜닝기, 나는 피크 한 통, 정대는 카포를 각각 계산했다. 계산을 마친 뒤에야 루시퍼의 얘기를 마저 들을 수 있었다. 손님이 없어서 봉 잡은 줄 알라며 아저씨는 너스레를 떨었다. 아저씨는 이야기를 고무줄처럼 늘여 우리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애를 태웠다. 손님이 없어 심심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암튼 재밌는 사람인 건 인정했다. 이야기가 빨리 전개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저씨의 늘일 대로 늘인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이랬다.

그 기타가 어느 나라에서 들어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알 만한 해외 유명 악기사 제품이라는 말도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상표나 제품 번호도 없고 심지어 기타의 출처를 알 수 있을 만한 흔적도 없다. 디자인은 어쿠스틱 종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헤드머신이나 바디를 멋지게 뽑았다고 했다. 외관상으론 전자기타를 흉내 낸 것 같지만 어쿠스틱 기타가 맞다고 했다. 게다가 그 기타에 대해선 떠도는 소문 외엔 어떠한 정보도 없다고 했다. 한동안 기타 전문가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지만 추측만 무성할 뿐 실체를 본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문제는, 그 기타를 소유하거나 연주를 하게 되면 누구라도 영혼을 빼앗긴 듯 정신이 이상해져서 사고사를 일으키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그 대목에선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소름이 돋았다. 호기심과 두려운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우리는 모두 눈동자를 반짝였다.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도 비슷한 예가 종종 있어 왔는데, 우리나라 기타리스트 중에도 몇 명 있다고 했다. 정확하게 드러난 건 아니지만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해 음악을 포기하거나 자살까지 간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많은 뮤지션들이 암암리에 그 기타를 소유하고 싶어 하거나 연주해보고 싶어 안달을 내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루시퍼가 내는 소리라도 듣고 싶어 한다는 거다. 한 번 들으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신비한 소리를 내는 기타라고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 기타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단 하나라고 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

그것은 또한, 세상 끝에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이기 때문이라는 것.

 

“에에이 연주자가 실력이 있어야 신비한 소리도 내는 거지, 아무나 친다고 그러겠어요? 그럼 그건 악기가 아니라 그냥 신비한 물건이겠죠.”

“오 너 말 잘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죽어라 연주를 연마하란 뜻이다.”

아저씨는 말을 하는 내내 눈동자에서 초롱초롱 빛을 냈는데, 마치 악기사 주인이 아닌 재밌는 이야기꾼 같았다. 스스로 자신의 얘기에 심취해서 이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아저씨와 계속 같이 있다 보면 어떤 신비의 세계나 마술의 세계로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야야 들어봐, 어디선가 신비의 소리가 들리는 거 같지 않냐?”

아저씨는 옆에 있는 기타를 들고 로망스를 치며 말했다. 아저씨는 갑자기 분위기를 오싹하게 바꾸었고, 우리는 다시 아저씨의 페이스에 휘말려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홍채가 수축하고 동공이 확장됐다. 온몸의 털이 쭈뼛하게 일어설 정도였다.

“하하하, 요 순진한 녀석들!”

아저씨는 기타를 제자리에 놓고 모자를 고쳐 쓰며 말했다.

“꿈꾸기 좋을 때다!”

우리는 최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처럼 멍하니 아저씨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가 우리 얼굴 앞에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 튕기며 레드 썬! 하고 외쳤다. 우리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나는 아저씨 말이 사실이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모든 게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쯤에서부터 갑작스러운 의문사를 당했거나 갑자기 활동을 멈추고 사라진 몇몇 뮤지션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렸을 것이다.

루시퍼의 악마천사라는 의미의 이름에서 오는 강렬한 느낌 탓인지 신비로우면서도 두려운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날 악기사에서 우리는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별 하나가 몇억 광년을 헤치고 쑥 가슴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음을 깨달았다. ‘루시퍼’라는 커다랗고 환한 별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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