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조민성 화백>
<삽화=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3장 수상한 밥집(1)

모텔의 사내가 일러준 식당은 건물 모퉁이를 돌자 곧바로 나타났다. 분식 종류를 퓨전식으로 파는 곳이었다. 모던한 분위기가 메뉴와 잘 어울렸다. 식당은 4인용 탁자 한 개와 2인용 탁자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고 긴 탁자를 창가에 붙여 간이의자 네 개를 놓아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구조였다. 한쪽 벽면을 모두 밥 말리의 공연사진으로 도배를 하여 천장에서 두 개의 조명을 쏘아 마치 밥 말리가 막 공연이라도 할 것 같은 착시효과를 주었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네 가지의 메뉴와 단순한 인테리어가 미니멀리즘 밥집처럼 보였다. 이상할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위기였다.

이름도 외우기 힘든 김밥 한 줄과 김치 불떡라면과 만두 종류의 메뉴를 주문했다. 이상하게 생긴 김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처음 보는 이상한 김밥은 고소했고 만두는 담백했다. 작은 냄비에 담긴 김치 불떡라면은 침샘을 자극했다. 국물을 떠 입에 넣었다. 억,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이 터졌다. 너무 매웠다. 너무 매워서 사래가 걸려 기침이 나왔다. 주인남자가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컥컥거렸다. 주인남자는 냅킨 뭉치를 내밀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괜찮다고 손을 저었지만 남자도 괜찮다며 몇 번 더 등을 두드려주었다. 나는 갈비뼈 쪽을 움켜쥐고 짧게 비명을 터트렸다. 남자가 깜짝 놀라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대답 대신 입에서 윽윽 신음소리만 새어나왔다. 남자는 재빨리 물을 내밀었다. 나는 물을 한 모금 삼켰다. 매운맛이 조금 가시자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 다른 매운맛처럼 목울대로 올라왔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 일은 내겐 몹시 낯설었다.

냅킨을 들고 식당 밖으로 나와 코를 풀었다. 목구멍이 따갑고 쓰렸다. 옆구리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뼈가 들썩이는 것 같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온몸이 삐그덕 거리며 지금까지의 내 몸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한 줄기 햇살이 맞은 편 오피스텔 유리창에 부딪혀 잠깐 눈이 부시는가 싶더니 금세 건물 뒤로 넘어갔다. 봄이 한창 진행 중이었지만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피부에 차갑게 와 닿았다. 열이 오른 얼굴에 찬공기가 닿아 열이 식자 가빴던 호흡과 통증이 진정되었다. 놀랍게도 개운한 느낌이 들면서 내 몸이 새롭게 재건되는 기분이었다. 내 몸을 진흙으로 입혀놓은 듯한 당신의 기운들을 조금씩 부서뜨리는 것 같았다.

걱정하는 남자에게 사래가 걸렸을 뿐이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남자는 씨익 웃으며 다행이라고 했다. 천장 한쪽 구석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밥 말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뭐 그런 내용의 노래였다. 김밥을 씹으며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밥 말리에 빠졌던 때가 떠올랐다. 지나간 기억들이 모두 휴지통에 버려진 쓰레기나 다름없다는 것이 슬펐다. 한편으론 버려졌던 기억들이 음악을 통해 부활의 기미를 보인다는 것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음악이란 이런 걸까. 한 시대를 건너와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빛처럼 어디선가 숨 쉬고 있는 것? 원하면 언제든 그 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누군가에겐 기억과 추억을 담는 유리병 같은 것?

라면의 면발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환하게 웃었다. 콧수염 아래 치아가 화사하게 빛이 났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의 웃음 탓인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매운 국물을 묻힌 김밥이 갑자기 더 맛있게 느껴졌다. 혼자 먹는 음식은 언제나 맹맹하고 무덤덤했다. 그동안 내게 음식이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지금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따뜻한 맛이었다.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남자가 마치 오랜 친구 같았다. 누군가와 이렇듯 편한 웃음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나. 한쪽 가슴이 저릿하게 감동이 밀려왔다.

음식을 삼키며 고개를 들자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기타 소리 때문에 죽음을 방해받았지만 어쩐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세계가 나를 자꾸만 끌어들이는 것 같았고 나는 속수무책 그 안으로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의도치 않은 곳에서,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것들에서도 위로 받는 순간들이 존재하다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 남자는 기타 치는 폼으로 머리를 흔들며 음악에 몸을 맡겼다. 볼수록 재밌는 사람 같았다.

“아이구 어서 오세요, 오늘은 늦으셨네요. 어서 와, 꼬마야.”

남자가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출입문 쪽을 쳐다보았다. 허름한 차림새에 행색이 꼬질꼬질한 나이 든 사내와 예닐곱 살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막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두 사람의 행색은 몹시 남루했다. 사내가 입고 있는 감색 점퍼는 군데군데 헤져 있고 검정색 바지 역시 때가 절어 많이 닳아 있었다. 여자아이는 핑크색 점퍼와 청바지 차림에 핑크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아이의 운동화 역시 많이 낡았다. 사내의 인상은 무표정이었다. 단발머리인 아이의 눈은 초롱초롱했고 피부는 약간 검은색을 띠었다. 한눈에 다문화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당 남자는 마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눈치였다. 남자는 잠깐 기다리라며 주방으로 갔다. 아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남자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잘못 본 걸까. 다리 한쪽을 절었다. 그런데도 저토록 환하고 당당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니. 어떻게 그토록 자유롭고 여유가 있는 것일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이런, 편견에 갇힌 바보 같은 꼴이라니! 그러나 남자의 행동은 편견 따위 개나 줘버려! 하는 것처럼 당당했다. 사내와 여자아이는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여자아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남은 김밥을 찌개 국물에 넣고 뒤적거렸다.

두 사람은 부녀관계로 보기엔 사내가 너무 늙어 보였고, 할아버지라 보기에도 젊어 보이는 어정쩡한 외모였다. 주방으로 들어간 주인남자는 금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과 김밥 두 줄을 얹은 쟁반을 들고나왔다.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 옆을 지나 그들 앞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후르륵 소리를 내며 국물부터 마셨다.

“부족하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사내가 고개를 세게 젓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싫다고 했다가 좋다고 하는 것인지, 괜찮다며 사양한 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인지 애매한 제스처였다. 식당남자는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꼬마야 맛있게 먹어라. 먹고 싶은 거 있음 언제든 말해. 아저씨가 다 해줄게.”

“저 꼬마 아니라니까 왜 맨날 꼬마래.”

여자아이가 맹랑하게 쏘아부쳤다.

“헐 나도 아저씨 아니거든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대화가 국물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처럼 주변을 따뜻하게 감쌌다. 남자는 귀엽다는 듯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곤 원래 앉았던 의자에 다시 걸터앉아 음악에 맞춰 고개와 다리를 까닥거렸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김치찌개에 든 고기를 떠먹었다. 고기의 식감은 부드러웠다. 여자아이와 사내는 말 없이 먹는 데에만 열중했다. 이곳이 너무 따뜻한 탓인가.

문득 정신이 확 깼다. 그만 가야겠다. 이젠 정말로 가야겠다. 사사로운 감정은 중요한 결정에 늘 방해가 됐었다. 꿈에서 깨어난 듯 현실이 차갑게 달려들었다. 나는 냉정을 되찾기 위해 수저 끝을 탁자 끝과 정확하게 맞춰 나란히 놓았다. 나는 탁자 위에 음식을 흘린 흔적이 없나 살펴보았다. 밥알이 그릇에 남아 있거나 잔반 역시 뒤적거린 흔적이 남는 걸 나는 참지 못했다. 음식을 먹을 때나 먹고 난 뒤에도 깔끔한 뒷정리는 말을 배우기 전부터 훈련받은 결과였다.

아버지는 식사 예절이 인간으로 성장하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굳게 믿는 타입이었다. 식탁 앞 예절은 곧 성공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바른 자세는 기본이고 수저를 아무렇게나 놓거나 식탁에 딱딱 소리가 나게 놓는다거나 밥이나 국그릇에 꽂아 놓으면 안 되었다. 음식을 씹을 땐 입을 절대 열어선 안 되고 쩝쩝 소리나 후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서도 안 되었다. 반찬은 한 번 집었다 놓거나 뒤적거리면 곧바로 커다란 손바닥이 날아왔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도 그릇들은 똑바로 놓여 있어야 하고 반찬이나 국물 자국이 튀는 건 참을 수 없어 했다. 아버지의 식탁 교육은 명령에 가까웠다. 아버지에게 소속된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아버지의 법을 따라야 했다. 그런 아버지의 강압적인 성격 때문에 어머니와는 수시로 부딪쳤고, 그 불똥은 언제나 내게로 튀었다. 나는 묻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은 인간으로서 제대로 성장하셨습니까.

 

먹다 남은 밥을 깔끔하게 정돈한 뒤 일어서려는데, 음식을 다 먹은 건지 사내와 여자아이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나는 도로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벌써 다 드셨어요? 꼬마야 맛있게 먹었니?”

여자아이가 대답하는 사이 사내는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지폐를 꺼내어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고 사내는 한사코 남자에게 지폐를 줬다. 남자가 잠깐만 기다리라며 재빨리 주방으로 뛰어가 검은 봉지를 들고나왔다.

“이거 떡볶이랑 김밥이니까 이따 먹어.”

“잘 먹을게요, 아저씨.”

“아저씨 아니고 삼촌, 해봐.”

여자아이는 혀를 쏙 내밀며 자주 있어 온 일처럼 자연스럽게 봉지를 받아 쥐었다. 사내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지만, 여자아이는 이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여러 번 고개를 숙이며 사내가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갔다. 남자는 문밖까지 따라 나가 인사를 한 뒤 안으로 들어왔다.

음악은 젊은 층에 속하는 영국 록커의 노래로 바뀌었다. 나는 그릇을 치우는 남자에게 물었다.

“특별한 손님들인가 봅니다.”

“하하, 이곳에 오신 분들이야 모두 특별하죠. 사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뭐 좀 전에 아저씨랑 딸은 좀 더 특별하긴 하지만요.”

“예… 그렇게 보이긴 했어요.”

“뭐가요? 어떤 점이 그렇게 보이던가요?”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오해는 마시고요. 내 생각엔, 일반 사람들과 조금만 달라 보이거나 또는 자신과 좀 달라 보이면 특별하게 보는 거 같아서요. 사실 각자의 삶 안으로 들어가 보면 다들 특별한 사람들인데 말이죠. 저기 눈에 잘 안 띄는 스노우볼 있죠? 저걸 카메라로 클로즈업 시키는 순간 갑자기 특별해지는 것과 같지 않겠어요?”

“아 뭐 그렇긴 하죠.”

“좀 전에 그 아저씨는 딸한테 매일 한 끼는 여기서 김밥을 먹여요. 벌써 일 년째요. 예전에 아저씨 아내 분이 여기서 일한 적이 있거든요. 지금은 아예 볼 수 없게 되었지만요.”

“예? 왜요? 멀리 가셨나 보죠? 그분, 말을 못하시는 것 같던데……”

“일 년 조금 넘었죠 아마, 말을 잃으신 게요. 아내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거든요.”

“아 그렇군요……”

남자는 잠깐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더니 짧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타인의 사생활에 너무 깊이 끼어든 것 같아 어색하고 불편했다. 남자는 빈 그릇들을 쟁반에 담아 주방으로 옮겼다. 초록색 행주를 들고 와 탁자를 닦다가 음악이 빨라지자 갑자기 기타 치는 폼을 잡았다. 그러곤 음악에 심취한 표정으로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갑작스런 돌발행동에 나는 놀랐지만 모른 척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닌데도 희한하게 남자의 그루브 타는 모습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오히려 나 역시 남자와 함께 음악에 빠지고 싶을 정도였다. 남자가 지나가는 투로 가볍게 물었다. 여전히 기타 치는 폼을 유지하면서.

“혹시 기타 칠 줄 아세요?”

“아 뭐, 예전엔 좀……”

“오 어쩐지, 뭔가 딱 통하는 느낌이 들더라니!”

“오래전 얘기일 뿐인데요 뭐.”

“과거야 늘 현재랑 연결돼 있는 거 아닌가요? 맘만 먹으면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게 과거잖아요. 음악이 그래서 좋은 거고요.”

“기타를 잘 치시나 봐요.”

“하하, 전 기타 아예 못 쳐요. 폼만 잡아 본 거죠. 멋지잖아요 하하. 근데, 어떤 장르 좋아하세요?”

나는 음악 얘기로 화제가 진전될까 봐 괜한 조바심에, 저랑 한 잔 하실래요? 물었다.

“전 술 완전히 끊었습니다. 사실 제 인생을 망친 것도 살린 것도 다 술 때문이랍니다. 술 대신 차나 한 잔 하면서 음악 얘기 나누는 건 대환영입니다.”

“아아, 전 음악 얘기는, 그다지……”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누구라도 경계심을 풀고 마음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 한 번쯤은 같이 편안한 대화를 나누고픈 흔치 않은 대상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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