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조민성 화백>
<삽화=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레트로 가든(2)

언젠가 당신은 건설회사 거래처 사장들 앞에서 결재서류를 집어 던지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늘상 있어 온 일이니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다만 그날은 당신에게 먹혔을 또 한 곳의 하청업체 사장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병원에 실려 간 날이었고, 나는 결재를 받다 당신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 네 일이나 똑바로 하라며 서류를 집어 던지던 당신. 아들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닌가, 하며 비웃던 목소리. 나는 당신의 성난 마음을 고스란히 견뎠지. 당신은 그날 밤 나를 술집으로 불러들였어. 내가 도착한 줄도 모르고 당신은 함께 술을 마시던 손 대표에게 내 얘기를 떠들고 있었지. 나보다 훨씬 어린 여자애들이 당신과 손 대표 옆에 앉아 키득거렸지.

“무조건 강하게 키워야 돼. 개처럼 패서라도 강하게 키워야 한다니까. 그래야 절대 못 대들어.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 방식이야.”

“다 큰 아들한테 너무 그러지 말지. 걔도 자존심이 있지, 젊은 녀석이 기가 너무 죽어서 보기가 안쓰럽더라고.”

당신은 정색하며 말했지.

“권력이란 건 대물림이야. 손 대표도 잘 알잖아. 내가 강하지 않으면 권력이란 건 순식간에 약화돼서 결국 무너지고 마는 거란 말이지. 아아 손 대표는 딸만 있어서 잘 모르겠구만.”

당신은, 지에미를 닮아 내가 약해빠진 거라고 한탄했지. 당신은 어머니를 몰라. 어머니가 약해빠져서 당신의 폭력에 맞서지 못하고 굽신거렸을까? 천만에. 어머니는 모든 것을 방치하는 것으로 주어진 것들을 지켰던 거지. 나를 지켜주겠다는 약속 역시 당신을 견디는 일이었다는 걸 당신이 알 리 없었겠지. 나도 최근에 깨달은 거니까. 물론 어머니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내 곁을 떠나고 말았지만.

당신은 나를 작품으로 완성 시킬 때까지 삼 일에 한 번씩 무조건 패야 한다는 농담까지 하며 한바탕 호기롭게 웃었어. 나는 목덜미가 후끈 달아오르고 목구멍에선 뜨거운 물체 같은 게 올라왔어. 부모가 자식에게 수치심을 일깨워준다는 게 말이 돼? 당신 앞에서 나는 최소한의 인격마저 무시되는 비참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지. 물론 그런 경험이야 수시로 겪은 탓에 단련이 된 줄 알았지. 그런데 바닥까지 추락하면서도 웃기게 한편으론 최고 성능의 완벽한 기계가 되고 싶었거든. 당신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인정받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발동해서. 이건 정말이지 웃기는 아이러니가 아니고 뭐겠어.

퇴폐가 진동하는 그 방에 들어서다 당신의 비아냥을 듣고 곧장 돌아서서 밖으로 뛰쳐나왔지. 그땐 진짜 개가 된 기분이었어. 술자리를 엎고 나왔어야 했는데 후회가 되었지. 당신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해. 강하게 키운다는 명목 아래 당신은 나의 팔다리를 모두 잘라내고 목소리마저 빼앗았다는 것을. 어디서든 나는 몹쓸 마법에 걸린 듯 주눅 든 상태에서 풀려나질 못하는, 소극적이고 눈치만 보는 병든 개란 걸. 업체들과 미팅을 할 때마다 쩔쩔 매고 잦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것도 모두 당신 탓이란 걸.

*

약해진 체력 탓인지 어느 순간 잠에 빠져들었다. 갈비뼈의 통증 때문에 꿈속에서 야생 개떼들에게 끊임없이 쫓겼고 몇 번은 사나운 개들에게 물리기도 했다. 아무리 도망을 쳐도 야생 개떼는 나를 놓아주지 않고 끈질기게 쫓아와 내 몸 곳곳을 물어뜯어 만신창이를 만들었다. 그때마다 갈비뼈가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아파 비명을 질렀고, 잠결에 내 비명소리를 들었지만 쉽사리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 그러다 기타소리에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났다. 주위가 어두워서 밤인지 낮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빌어먹을, 또 시작이군!’

침대에 걸터앉아 손바닥으로 머리를 감쌌다. 두통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불을 켜고 휴대전화를 찾았다. 어디에 던져두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가방을 쏟아 보았지만 수주 계약서와 서류들만 잔뜩 쏟아져 나왔다. 서류뭉치들을 대충 쓸어 모아 가방에 다시 쑤셔 넣고 방안 곳곳을 뒤졌다. 침대와 침대 아래 바닥과 베개 사이를 모두 뒤져 보았지만 휴대전화는 보이지 않았다.

기타 소리는 역시나 귀를 거슬리게 했다. 두통이 심한데다 어깨와 갈비뼈 통증까지 겹쳐 고통은 점점 심해졌다. 엉망진창 기타줄 긁어대는 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돌멩이가 굴러다니는 것처럼 덜거덕거렸다. 몇 시쯤 되었을까.

“에잇, 빌어먹을 노인네!”

나는 벌떡 일어나 창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목을 빼고 밖을 내다보았다. 햇살이 아무 걱정 없다는 듯 해맑은 표정으로 맞은편 주택 건물 위로 쏟아졌다.

기타 코드 긁는 소리가 마치 어제의 연속처럼 반복, 반복, 반복, 끊이질 않았다. 마치 내 몸이 기타줄이 되어 마구 긁히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번씩 줄을 긁을 때마다 온몸이 저릿저릿 아팠다. 지치지도 않나. 그런데 저 노인은 왜 저토록 기타에 집착하는 걸까. 잠깐, 저 기타가 예전에도 저런 소리를 냈었나? 기타 현의 울림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중후하고 깊은 울림이 잔향처럼 희미하게 이끌려 나왔다. 소음 뒤에 남는 여운이 마치 긴 시간 단련된 슬픔처럼 담담하게 깔려 있었다. 착각일지도 몰랐다. 오래전 내가 알던 ‘루시퍼’라고 생각한 탓에 환청이 들리는지 몰랐다. 흘려들으면 결코 눈치챌 수 없는 여음.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여전히 거칠게 긁어대는 소음이 머리를 괴롭혔다.

저 노인네가 끝까지 나를 괴롭히구만. 어쩔 수 없이 죽는 일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기타 소리를 견디려면 뭐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또한 뭐라도 먹어야 죽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 전화로 식사를 주문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음침하고 벌레가 우글거릴 듯한 이곳에서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전 프론트 창구에 앉아 있는 사내 앞으로 갔다. 사내는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을 치켜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저기, 방 청소 좀 해주세요.”

“어디 가세요?”

“밥 좀 먹을까 하고……”

“네 그렇죠, 먹어야 사니까.”

“아 뭐 그렇죠.”

“먹는 건 중요한 일이죠, 안 그래요? 사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요.”

사내는 씨익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괜히 뜨끔했다. 사내는 웃고 있었지만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예,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다 중요하죠.”

나는 말끝을 흐리며 얼버무렸다.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 먹어야 사는 건지 사니까 먹는 건지. 지금 내 처지는 죽기 위해 먹는 것에 가까웠다. 사실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어차피 죽는 건 마찬가지란 생각에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사내의 등 뒤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정오가 한참 지나 있었다. 사내는 밥맛 나는 식당이 있다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지만 내가 어딜 가서 뭘 먹든 무슨 상관일까.

어둡던 실내에서 빠져나오자 따가운 햇빛이 달려들어 눈을 날카롭게 찔렀다. 안과 밖의 차이를 실감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었나 싶었다. 이토록 확연한 차이의 감각이 놀라웠다. 마치 죽음이 도사린 지하세계에 갇혀 있다 막 지상으로 빠져나온 것처럼 바깥은 밝고 눈이 부셨다. 사내가 일러준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노인의 가게 쪽으로 걸었다. 우선은 기타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노인이 왜 그토록 힘겹게 기타를 계속 치고 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섰지만 아까 들었던 기타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입구의 거꾸로 시계를 잠시 쳐다본 뒤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모른 척하던 일을 계속했다. “식사는 하셨어요?”

기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점심 안 드셨죠? 식사 안 하세요?”

이상하다. 좀 전까지 기타 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새 기타를 숨긴 걸까. 궁금증을 참으며 같이 식사나 하러 가자고 했다.

“아직 살아있구만. 왜 또 집중이 안 되던가?”

“죽는 것도 힘 없으면 어렵잖아요.”

“허허, 죽는 일이 사는 일보다 어렵다는 건가?”

나도 모르게 모텔 사내와 비슷한 말로 대꾸를 했다. 배가 고프다 못해 쥐어짜듯 위가 아팠다. 정말로 밥을 빨리 먹지 않으면 일부러 죽으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죽을 것 같았다.

“죽을 사람은 이러나저러나 다 죽어, 살 사람은 다 살고.”

“그러니까 일단 좀 먹자니까요.”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나는 순간 멍해졌다. 그런가. 죽을 사람은 다 죽게 되는 건가. 나는 어떻게 될까? 어머니도 죽기 전 비슷한 말을 했다. 어떤 음식을 사다 바쳐도 어머니는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먹어야 산다고 화를 내던 내게 죽을 사람은 뭘 먹어도 죽는다고 했다. 죽기 위해 먹겠다는 나를 본다면 어머니는 뭐라고 할까. 결국 잘 먹든 먹지 못하든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어머니처럼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먹는 것도 다 소용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어머니 생각이 나자 갑자기 우울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없는 그곳에서 행복을 찾았을까. 유난히 요즘 어머니 꿈을 자주 꾸었다.

“볼 일 없으면 그만 가보게.”

“어 좀 전까지 기타 치시더니, 기타가 안 보이네요?”

“파는 거 아니라는데 왜 자꾸 신경을 쓰나?”

“그게 원래 내 기타였으니까 그렇죠.”

“뭐? 자네 기타라니! 무슨 소리지?”

갑자기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노인이 내 눈을 쏘아보았다. 좀 전까지 어깨를 움츠리고 물건을 정리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뭐 내 것이라고 하긴 그렇고, 제가 아는 기타랑 똑같다 그, 그런 얘기인 거죠 하하.”

순식간에 변한 노인의 눈빛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얼버무렸다. 기괴하게 빛을 내던 노인의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세상에 비슷한 기타가 어디 한둘이겠나.”

“쟨 일반 통기타랑은 완전 다르죠. 일단 디자인부터 특이하잖아요.”

“저 기타는 자네랑 아무 상관도 없을 테니 신경 끄게.”

내 속을 꿰뚫고 있는 거야 뭐야, 하여간 이상한 노인네라니까, 속으로 투덜거렸다. 노인은 의자 뒤쪽에서 케이스를 꺼내어 바닥에 펼치고 기타를 케이스에 넣었다.

어어, 기타를 보자 나는 다시 흥분했다. 나무의 결이 많이 거칠어지긴 했지만 오크무늬목 바디는 여전히 정교하고 매끈하게 곡선이 살아 있었다. 물론 금색 왕관 형태였던 헤드머신이 은색으로 바뀌었고 많은 부분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루시퍼 기타가 맞을 거라는 확신은 점점 더했다. 나는 네임카드가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얼떨결에 기타에 손을 댔다. 노인이 내 팔을 탁 쳤다. 동시에 어깨뼈와 옆구리에 통증이 날카롭게 찔렀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엄살은, 노인은 한 마디 내뱉고 기타를 케이스에 넣어 지퍼를 채웠다.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통증을 견뎠다. 아무래도 갈비뼈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노인에게 조율이 됐나 봐주겠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참견하는 걸 좋아하지 말게.”

“소리가 거슬려서 집중할 수가 없어서 그런다니까요.”

“자네도 더 살아보면 알겠지. 어떤 건 저절로 되는 게 있고 억지로도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이야.”

하 이건 또 뭔 소린지, 노인이 내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5초 정도에 불과했지만 노인의 눈빛은 이상해 보였다. 따사로운데도 그늘로 들어서면 싸늘한 추위를 느낄 때처럼 서늘했고, 해석하기 힘든 음악처럼 복잡하고 기괴했다. 나는 당황하여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움푹 팬 노인의 눈동자에서 기이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노인은 몸을 숙여 기타가 담긴 케이스를 품에 안고 일어섰다. 노인의 입에서 끙 소리가 났다. 볼수록 이상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기타를 품에 안고 가게 안쪽으로 연결된 통로 쪽으로 사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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