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준 연내 금리인하 없다 공언
예견된 금리인상 그럼에도 피해 속출
증권가 “일단 회색코뿔소 피해야 산다”

경제 용어 중 ‘회색코뿔소’라는 말이 있다. 2톤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의 코뿔소와 부딪히면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느릿느릿 움직이는 코뿔소의 움직임에 알면서도 방심하다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처럼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에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상황을 비유할 때 쓰이는 말이다. 미국발 고금리는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이에 시장 전문가들은 변동성이 커진 시장에서의 리스크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편집자주]
현지시간으로 22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현지시간으로 22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연내 금리인하 없다”...회색코뿔소 된 고금리

현지시간으로 22일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3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4.75%에서 0.25%포인트 인상한 5%로 인상했다.

앞서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7일 상원 은행위 청문회에서 "3월 회의 때 기준금리를 50bp(1bp=0.01%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한 바 있으나 최근 발생한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 등 금융권의 위기가 심화하자 0.25%포인트 인상으로 속도조절에 나섰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경제 방향이 불확실해 올해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하지 않는다”라고 말해 최근 노무라증권 등 시장이 전망한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연내 금리 인하 기대감이 사그라들자 시장의 실망은 주식시장에서 이어졌다.

외신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22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지수는 전날 대비 1.63% 하락한 32,030.11로 장을 마감했다. S&P500지수는 전날 대비 1.65% 하락한 3,936.97로 나스닥지수도 1.60% 밀린 11,669.96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뉴욕증시 전문가들은 연준이 다음 회의에서도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토머스 시먼스 제프리스 이코노미스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결정은 연준이 금리를 5.125%까지 인상한 후 장기간 중단할 것이라는 우리의 전망에 부합한다"라며 "은행 부문에 전이 위험이 커지지 않는 한 연준은 5월에 유사한 상황에 직면해 추가 인상을 단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긴축 발 위기 피하지 못한 시장

현지시간으로 19일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UBS의 크레디트스위스 인수 관련 기자회견에서 악셀 레만 크레디트스위스(CS) 이사회 의장과 콜름 켈러허 UBS 회장(사진 왼쪽부터)이 발언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UBS는 크레디트스위르를 32억3천만달러에 인수키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현지시간으로 19일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UBS의 크레디트스위스 인수 관련 기자회견에서 악셀 레만 크레디트스위스(CS) 이사회 의장과 콜름 켈러허 UBS 회장(사진 왼쪽부터)이 발언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UBS는 크레디트스위르를 32억3천만달러에 인수키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예견된 일이었다. 아울러 지난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원자재 가격상승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겼고 금리 인상에 불을 당겼다. 하지만 시장에선 회색코뿔소를 피하지 못한 피해자가 속출했다.

지난 19일 스위스 최대 금융기관 UBS는 자금 위기에 빠진 세계적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를 32억 달러에 인수했다.

앞서 크레디트스위스는 2022년 연례 보고서에서 “중대한 약점을 발견했으며 고객 자금 유출을 아직 막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크레디트스위스의 최대주주 사우디국립은행의 암마르 알 쿠다이 은행장은 “크레디트스위스에 더 이상 추가 재정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 시장의 우려는 가중됐다.

결국 스위스중앙은행이 크레디트스위스 측에 500억스위스프랑(약 71조원) 규모의 긴급자금을 지원하고 또한 최대 30억 스위스프랑(약 4조2천억원) 규모의 선순위 채무증권 발행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사태는 좀처럼 진화되지 않았고 결국 위기는 UBS의 울며 겨자먹기식의 인수로 마무리됐다.

최근 이 같은 주요 금리 인상의 후폭풍이다는 평가다. 크레디트스위스는 2021년 그린실캐피탈, 아케고스캐피탈 투자 실패와 각종 스캔들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지급한 합의금과 보상금만 총 40억 달러(약 5조2천500억원)에 달했다. 위기는 계속돼 증자를 통해 총 5조6,000억원의 자본조달 계획을 발표했지만 각국 중앙은행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맞물리면서 결국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사태에 앞서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SVB)도 미국 장기국채라는 초우량 안전자산에 투자했으나 급격한 금리 인상의 충격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가 고객의 대규모 예금 인출로 이어지며 파산에 이르렀다.

SVB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늘어난 고객들의 예금을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에 투자했으나 갑자기 늘어난 고객의 예금 인출 요구에 보유 자산을 매각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그동안의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제이 R.리터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SVB를 둘러싼 우려는 2008년의 상황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며 "SVB의 근본 문제는 근래의 금리 인상"이라고 지적했다.

증권가 “일단 회색코뿔소 피해야 산다”

‘회색코뿔소’는 어떠한 위험의 징조가 지속해서 나타나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을 간과하여 온전히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하는 경제학 용어다.<사진=픽사베이>
‘회색코뿔소’는 어떠한 위험의 징조가 지속해서 나타나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을 간과하여 온전히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하는 경제학 용어다.<사진=픽사베이>

고금리와 불황 장기화로 국내 증권업계에선 위기를 대응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 강한 증권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금리와 불황이 겹친 시장 상황에서 업계의 지속적인 리스크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한국신용평가는 16일 발행한 금융업 2023년 정기평가 계획에서 국내 증권업계에 대해 2023년 1~2월 금리 상승국면이 다소 안정화되며 운용부문 실적 회복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시장금리 불확실성으로 인해 증권사의 주력 사업 부문인 IB부문,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이익창출력 회복은 더딜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2023년 증권업 주요 평가 요소로 이익창출력 회복 수준, 위험 요소의 위험정도, 재무안정성 훼손 여부, 사업기반 안정성 유지 여부 등을 뽑았다. 사실상 리스크관리를 얼마나 잘하고 위기를 넘기는가가 올해 시장의 화두가 될 것으로 본 것이다.

앞서 금융당국도 올해 금융투자업권 최대 화두로 리스크관리를 뽑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일 진행된 증권사 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도 부동산 PF 관련 ‘리스크관리’를 업계에 주문한 바 있다. 이어 16일 금융감독원은 업계 관계자 270여 명이 참석한 금융투자 부문 금융감독 업무설명회에서 "지난해 하반기 증권사 리스크 발생 원인에 대한 종합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리스크 관리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해식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증권사 우발채무 중 매입 확약 비율이 높다는 것은 증권사가 부동산 PF대출 관련 신용위험에 크게 노출됐다는 의미”라면서 “시공사의 신용 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증권사의 우발채무는 확정채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비우호적인 경제환경 지속 시 부동산 PF 대출 부실화를 대비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최근 SVB 파산과 같은 사태는 금융회사의 위험관리와 이에 대한 규제체계가 금융회사의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다”며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익과 건전성 간의 균형 맞추고 현재 이어지고 있는 위험증가 시기에 건전성 관리에 집중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부실화 위험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부동산PF 부실화 우려, 대외로부터의 추가적인 충격 가능성 등에 대한 위험흡수능력 강화조치는 그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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