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앉히기 위한 손태승 밀어내기 빌드업인가
관치금융에 흔들리지 않는 금융사 뚝심 보여주길

차종혁 금융부장
차종혁 금융부장

[현대경제신문 차종혁 기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금융사를 휘어잡아 군림하려 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9일 정례회의에서 우리금융지주 손태승 회장에게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확정했다. 라임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당시 은행장이었던 손 회장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결정이다.

시기가 묘하다. 지난해 4월 금감원이 금융위로 넘긴 제재안을 임기철에 즈음해 결정한 것이다. 이번 문책경고로 내년 3월 임기만료를 앞둔 손 회장은 연임이 불투명해졌다.

금융위의 제재안 확정 후 며칠 지나지 않은 14일, 이번에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8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소집해 또 압박을 가했다. 당시 이 원장은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며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전달했다.

이 정도면 콕 집어 어디어디라고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이사회 의장들에게 CEO 인사 지침을 하달한 셈이다.

인사철을 앞두고 금융사 CEO의 인사에 관여해 군림하려는 모양새가 어색하다고 느꼈는지 당근도 함께 내밀었다.

같은 날 금융위는 은행에 비금융업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금산분리제도 개선 방향’을 발표했다. 금융사 성장을 발목 잡았던 40년 묵은 오랜 숙제를 풀어준 것이다.

금융산업 선진화를 이루겠다는 양 기관의 본연의 역할에는 부합한다. 다만 타이밍이 참 절묘할 뿐이다.

‘CEO 선임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멘트에 놓여넣은 금융산업 선진화의 구색은 참 그럴싸하다. 금융당국의 인사 지침을 따르는 곳이 향후 비금융업 진출에 있어 더 수월할 것이라는 예고를 한 것 같은 추측도 가능케 한다.

또 며칠 뒤에는 정말 묘하게도 일부 언론사를 통해 손태승 회장이 은행장 시절 라임펀드 부실을 미리 보고받았는데도 투자자를 모집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됐다. 물론 아니라고 하겠지만 불을 보듯 뻔한 치졸한 언론 플레이다.

누군가를 자리에 앉히기 위한 포석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손 회장을 밀어내기 위한 작업이 탄탄하게 짜여진 느낌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손발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찰떡 협업이 놀라울 정도다.

금융사 CEO의 임기만료를 앞둔 시점에 왜 갑작스레 금융당국이 금융사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거세게 하는지에 대한 의심이 자꾸만 든다. 이쯤되면 이미 점찍어둔 누군가를 앉히기 위한 밀어내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곳곳에서 신(新)관치금융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이런 영화같은 우려는 우려로 끝나길 바랄 뿐이다. 영화 시나리오 같은 이런 추측이 내년 초에 현실이 된다면 금융당국이 외쳐왔던 금융산업 선진화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은 끝날 거라고 본다. 금융당국은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 확립을 위해 멀리서 지켜보며 금융사가 정해진 선을 넘을 때만 본연의 임무인 관리·감독 역할만 하면 된다. 금융 판에 당국이 직접 선수로 뛰어들려고 욕심을 내는 순간 금융산업은 불공정해지고 퇴보하게 된다. 금융사의 CEO 인사에 관여하고 입김을 내는 순간 금융당국은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의미다.

이참에 금융당국에 다시 묻고 싶다. 피해 규모가 2조원에 달하는 라임 사태가 벌어지도록 무얼 했는지, 그리고 사태 이후에 어떤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는지. 금융사에 라임 사태의 책임을 물을 거라면 그 전에 금융당국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최근 금융당국의 라임 사태 제재를 보면 마치 북한 김정은이 국제정세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는 듯하다. 금융사 위에 군림하기 위해 라임 사태를 무기로 쓰는 금융당국의 행태는 치졸해 보일 뿐이다.

작년에도 금감원은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 제재안을 내놓으며 압박을 가했지만 중징계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법원 판결로 무력화된 바 있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또 해를 넘겨 라임 사태를 빌미로 금융사 위에 군림하려는 금융당국의 빌드업이 치졸해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다.

우리은행의 민영화는 관치금융에서 벗어나 금융사 스스로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다. 관치금융에서 꽤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은 최근 CEO 인사에 개입하려는 금융당국의 전방위 압박에 무색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내 금융업계를 대표하는 금융지주 의장들이 흔들리지 않고 뚝심을 보여줘야 한다. 금융당국이 아무리 압박을 하더라도 금융사의 인사와 사업에 흔들림이 없다는 걸 보여줘야 관치금융에서 단호하게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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