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석 금융부 기자
최윤석 금융부 기자

[현대경제신문 최윤석 기자] 금융당국이 일부 대형 증권사를 대상으로 1조 규모의 추가 채안펀드 조성에 나설 것을 요청한데 대해 증권사의 반발이 거세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4일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 주재로 열린 긴급회의에서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메리츠증권, 하나증권,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국내 9개 금융투자사 최고경영진은 1조원 규모의 중소형 증권사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전용 펀드를 조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회의에 참여한 대부분의 증권사는 시장 논리 왜곡 등의 이유로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에 열심히 유동성 관리를 해온 대형사들이 위기를 겪는 중소형사에게 돈을 퍼주는 것은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또 자칫하면 경영진의 배임 문제로 불거질 수 있어 이사회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고 인수한 ABCP가 부실화될 경우 사태는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금융당국과 대형 증권사 간 의견차를 보이자 채권 시장의 부실화 우려는 개별 회사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 금융투자업계 전체가 당면한 과제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2022년 2분기 증권·선물회사 잠정 영업실적에 따르면 채권 관련 손익은 금리 상승 여파로 1조 412억원 손실을 기록해 1분기 1조 3,651억원 손실에 이어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이어 지난 3분기엔 증권업계 채권 대차거래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매입 확약을 해준 부동산 PF도 이달에만 메리츠증권 2조 344억원, 삼성증권 1조 8,434억원, 한국투자증권 1조 4,412억원, KB증권 1조 1,899억원, 하이투자증권 8,668억원, 하나증권 7,693억원, 현대차증권 6,442억원, BNK투자증권 5천332억원 등 14조 9,392억원어치가 돌아온다.

현재의 채권시장에선 대형 증권사라고 해서 홀로 안심을 장담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오히려 시장 참여자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게 되는 상황이다.

특히 대형사는 중소형사보다 더 크고 다양한 사업영역을 영위하고 있어 시장의 작은 사태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1조원의 ABCP 매입 펀드 창설은 불필요한 비용이 아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는 미래를 위한 투자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금융당국의 요구는 중소형사만이 아닌 대형사를 포함해 증권사 모두를 위해 권하는 조치라는 의미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렇기에 서로 선을 권하고 행하라는 연기설(緣起說)을 주장한다.

실제로 세상이 연기설의 원리로 돌아간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본시장에선 시장의 참여자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연기설은 꽤 유효해 보인다.

대형 증권사 입장에서는 당장의 위험을 감수하라는 요청이 부담스럽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의 손익과 후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로 주저하다보면 시장 전체의 안정을 뒤흔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시장 논리 왜곡과 배임을 내세우기에 앞서 미래 투자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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