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신문 이금영 기자] 추석 전후로 서민생활과 밀접한 가공식품의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정부가 식품업체를 향해 “담합 등 부당한 가격 인상 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업계에서는 환율, 원부자재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환율과 금리 등의 오름세가 지속되면서 이같은 물가 급등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편집자주]

1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라면 매대에서 고객이 라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
1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라면 매대에서 고객이 라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

 

정부, 물가 급등에 출범 이래 첫 ‘경고’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9일 민생물가 점검회의를 열고 식품업계의 연이은 가격 인상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를 중심으로 식품 물가 점검반을 운영해 매일 동향을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업계와 가격 안정을 위한 협의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겠다”며 “지금도 많은 경제 주체가 물가 상승 부담을 감내하고 있으니 가공식품업계에서도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인상 요인을 최소화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지난 16일 취임한 한기정 신임 공정거래위원장도 업계를 면밀히 살피겠다고 예고했다.

한 위원장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상승을 야기하는 독과점 행위나 담합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열심히 살펴보고 적절한 조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의 이번 발언은 지금까지 물가 대응과 관련해 내놓은 가장 고강도 발언으로 평가된다. 이는 새 정부가 출범 이후 쭉 시장 친화적 물가 관리를 강조해 온 것과 대비된다.

정부는 그동안 인위적인 가격 통제보다는 감세 등으로 생산자 비용 부담을 줄여, 소비자 가격을 자율적으로 낮추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추석 물가가 한풀 꺾일 시기로 지목된 추석 명절 이후에도 식품 가격 인상이 잇따르자 정부는 다급해진 모습이다. 환율 급등과 수입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되면서 식품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가격 인상이 줄 이은 라면·김치·과자 등 가공식품과 농산물은 서민이 체감하는 생활물가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라면업계, 추석 이후 일제히 가격 올려

판매가격이 오른 대표적인 가공식품은 라면이다.

농심은 지난 15일부터 라면 브랜드 26개 가격을 평균 11.3% 인상했다. 신라면 1봉지당 판매 가격은 편의점 기준으로 900원에서 1000원이 됐다.

용기면은 큰컵이 1250원에서 1400원, 작은컵이 1000원에서 1150원으로 각각 올랐다. 새우깡(6.7%), 꿀꽈배기(5.9%) 등 과자 제품 가격도 인상됐다.

팔도는 다음달 1일부터 라면 12개 제품 가격을 평균 9.8% 인상할 예정이다. 공급가 기준으로 팔도비빔면 9.8%, 왕뚜껑 11.0%, 틈새라면빨계떡 9.9% 등이다.

오뚜기는 다음달 10일부터 라면류의 출고가를 평균 11.0% 올린다. 앞서 지난해 8월 13년 만에 가격을 조정한 후 1년 2개월만이다.

대형마트 판매가 기준으로 진라면은 620원에서 716원으로 15.5%, 진비빔면이 970원에서 1070원으로 10.3%, 진짬뽕이 1495원에서 1620원으로 8.4%, 컵누들이 1280원에서 1380원으로 7.8% 오른다.

오뚜기 관계자는 “원재룟값 상승에 고환율이 지속되고 물류비 등 국내외 제반비용이 급등해 가격을 조정하게 됐다”며 “이번 가격 조정에도 오뚜기라면 가격은 주요 경쟁사보다 낮은 편이면서 더 좋은 맛과 품질의 제품·서비스로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심 관계자도 “그간 라면과 스낵 가격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내부적으로 원가절감과 경영효율화를 추진하는 등 원가인상 압박을 감내했지만 2분기 국내에서 적자를 기록할 만큼 가격 조정이 절실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밥상 단골’..김치·간편식 가격도 올라

CJ제일제당은 지난 15일 비비고 김치(11.3%)와 국·탕·찌개류(6%), 백설 파스타 소스(14%) 등의 값을 높였다.

다음달에는 대상이 종가집 김치(9.8%), 청정원 순창 장류(12.8%)를, 동원F&B는 양반 국·탕·찌개류(6%) 가격을 각각 올릴 예정이다.

오리온도 9년 만에 초코파이 등 16개 제품 가격을 평균 15.8% 조정했다. 특히 오리온은 9년째 가격을 동결해 왔으나 지난해부터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유지·당·감자류 등 주요 원재료의 가격이 급등해 8월에는 전년 대비 최대 70% 이상 상승했다”며 “제품 생산에 사용하는 에너지 비용도 90% 이상 올랐다”고 밝혔다.

제품별 평균 인상률은 초코파이 12.4%, 포카칩 12.3%, 꼬북칩 11.7%, 예감 25.0% 등이다.

농심도 지난 15일부터 새우깡, 꿀꽈배기 등 스낵 23개 브랜드의 출고가를 5.7% 인상한 바 있다.

인상 이유에 대해 올해 4월 이후 국제 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고 환율이 상승해 원가부담이 심화됐다고 농심은 설명했다.

 

원유 가격 올라…흰 우유 3000원 넘나

낙농가와 유업계는 유제품 원료인 원유(原乳) 가격 인상폭을 1ℓ당 47~58원 사이에서 결정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구체적인 인상 단가가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협상 폭을 봤을 때 흰우유 가격은 1ℓ당 500원 안팎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급등한 인건비나 포장비용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더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같은 예상대로라면 현재 1ℓ 당 2000원 후반대인 흰우유 가격이 3000원을 넘어서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우유가격 인상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우유가격이 오르면 유제품은 물론 빵과 아이스크림, 커피 등의 가격도 줄줄이 뛰는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범수 농식품부 차관보는 지난 20일 “정부가 유업체에 가격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지시할 순 없다”면서도 “흰 우유 가격은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고 올리더라도 물가에 영향이 적은 가공유 제품 가격을 조정하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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