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시선으로 본 경제 이야기

유휘량 작가
유휘량 작가

최근에 예술 작품에 대한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가 주목 받기 시작하면서 예술 작품에 대한 저작권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NFT에 관심이 많은 투자자들에겐 어떻게 보면 예술 작품에 대한 안목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오늘은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과 각 예술 장르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예술 작품의 중요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예술의 진위 여부에 따라 ‘아우라’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우라란 예술작품에서 흉내낼 수 없는 그 작품만의 고고한 분위기를 의미한다. 그런데 NFT에 대해서는 이미 벤야민이 앞서 언급한 저서에서 예측한 바 있다. 그의 예측대로 지속적으로 예술 작품과 그에 대한 비평들이 복제되면서 가치를 얻게 되는 현상은 지금까지도 존재하긴 한다.

이에 따라 작품의 진위 여부(특히 미술 작품), 다시 말해 ‘흉내 낼 수 없는 그 작품의 고고한 분위기’는 더 이상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그 대중성 역시도 경제 가치 판단에 기준이 되었다.그래서 어찌보면 NFT에서 아우라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 작품에 대한 경제적 가치에 주목할 뿐이다. 최근에 한 기업이 트위터에서 도는 한 밈(Meme)의 저작권을 구입한 사례가 있다. 이렇듯, 이제 작품의 희귀성에 따른 가치 상승은 의미가 없어졌으며, 대중들의 인식 차원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은 오늘날의 예술 작품의 저작권 문제, 다시 말해 ‘아우라’를 쪼개 갖는 형식의 NFT 문제와 결부되었다. 그래서 아우라의 가치를 쪼개 가지며 그 작품이 주는 분위기, 혹은 이미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더욱 그 가치를 높게 만든다. 아우라는 이제 작품의 희소가치에 대한 경제적 보장을 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대중적 인식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우라의 개념은 사실 미술 작품에 한하지 않는다. 문학, 미술, 음악, 영화/영상 등 다양한 예술 매체에 적용될 수 있다. 이제 다음은 각 예술 분야에 대한 NTF의 가치 판단과 그 시사점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일단 문학이다. 문학의 장르는 시, 소설, 희곡, 비평, 수필 등 다양한 장르로 나눠질 수 있다. 그런데 시는 몰라도 우리가 ‘서사물’이라 부르는, 소설, 희곡, 수필에 해당하는 장르들은 그 ‘서사’성이 중요하다. 스토리 IP가 대세가 되면서 그 작품의 문장이나 문체가 중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내재하고 있는 서사가 중요해진다. 그러면서 부상한 것이 ‘각색’의 기술이다. 각색은 작품에 내재된 서사를 각 양식에 맞춰 변형하는 기술이다. 그러면서 그 스토리텔링이 중요하게 되었고 그 스토리텔링에 대한 저작권의 문제가 NFT의 중요점이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서사물들의 중요점은 스토리텔링의 ‘표절’, ‘저작권’, ‘각색’이라는 3가지 차원의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스토리텔링은 아주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는데, 스토리텔링, 즉 그 작품에 대한 서사의 정의가 중요해지면서 저작권은 표절의 문제를 구분할 수 있는,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를 적용한다면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서사의 분위기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스토리텔링의 저작권의 문제는 표절과 저작권의 문제가 가장 중요해졌다. 그 스토리텔링의 저작권, 그리고 서사의 문제는 그 서사의 표절 문제를 가릴 수 있는 비평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서사를 변용할 수 있는 ‘각색 기술자’의 역할역시도 NFT 판단에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반면 시는 그 스토리텔링에 적합하지 않는, 그 문자 자체의 고유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미술의 경우 ‘이미지’가 중요해졌다. 그 작품을 미술 작가가 직접 만들었다의 사실 여부에 따른, 그 작가의 소유권 문제가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미술 작품이 주는 이미지의 대중성이 중요해졌다. 고흐의 작품의 진품 여부, 진품이 주는 아우라는 중요하지 않다. 그 작품이 쓰이는 대중들과 소비자들에게 경제적 가치가 생기게 되면서 이제 미술 작품은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의 개념, 다시 말해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라 ‘소유권’의 문제로 변질하게 되었다.

반면 음악은 아우라라는 개념이 애초에 없다. 녹음 기술의 발달 이전에 음악은 ‘휘발성’이 강하며 이 휘발성 때문에, 순간의 아우라가 중요했다. 그러나 음악 녹음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그 순간의 아우라가 사라졌으며 오히려 음악 원음 자체가 중요해졌다. 음악은 더 이상 아우라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장르가 되었다.

그런데 영상은 이미지의 연속, 이미지의 반복이기 때문에 아우라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그 색감, 화소와 같은 미술적 요소는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상과 영화는 그 자체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장르가 되었으며 영상의 가치는 계속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정리하자면 NFT 투자를 한다면 서사물의 서사, 그리고 영상, 음악이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 필자의 예측이다. 오히려 미술 작품의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그 예술 작품이 가지는 원론적 본질, 그것이 중요하게 되었으며 경제인들은 이 원론적 본질에 대한 미적 탐구가 중요하게 되었다. 

유휘량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 석사 졸업, 현대문학 현대소설 전공 박사수료

지금까지 시를 꾸준히 써왔고,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부마항쟁기념재단, 숲과나눔재단,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책임자로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으며, 통일인문학단, 통일부, 국방부, 국가인권위원회, 한국정신문화재단 등에서 논문으로 여러 차례 수상을 하였다. KCI에 논문을 다수 게재하였으며, 공저로 <몸의 미래 미래의 몸>이 있다. 현재 한겨레교육에서 문학, 정신분석, 철학 등 문예창작에 필요한 이론들을 강의하고 있으며 2022년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에 시부문 <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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