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시선으로 본 경제 이야기

 
 

미래 기술의 가치를 계산하는 것은 경제인에게 있어서 참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소비자들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경제적 가치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환경 관련 미래 기술들은 분명한 필요성이 존재하면서도 그 기술적 비용과 경제적 이익 때문에 투자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래서 경제인들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미래 기술이 어떤 경제적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 기술이 실효성이 있는가의 문제부터, 미래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기술인지까지, 너무나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 대체로 미래 기술에 있어 경제인이 고려하는 것은 그것의 과학 기술 원리가 아니라, 그 기술이 파생하는 사회적 효과를 고려하게 된다. 아무리 엄청난 기술적 원리나 대단한 과학적 사실이 미래 기술에 있다 하여도 실상 그것을 소비자들이 사용하지 않으면 경제인들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경제인들에게 있어 과학적 사실이나 업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집중하는 것은 그 미래 기술의 파급 효과이다.

필자가 지난 칼럼에서 미래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사실에 있다. 미래학적으로 그 파급효과를 계산하지 않으면 미래 기술의 실용성은 무가치한 게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것은 아무리 실효성이 없는 기술이라도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미래 기술의 가치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는 철학자 지젝이 말한 것과도 유사하다. 우리는 이 미래 기술이라는 대상을 어떠한 가치와 관점에서 볼 것이냐에 따라서 그 실효성이 달라진다. 우주 기술은 당시에 우주에만 한하여 그 가치를 검증했으나, MRI나 여러 우주 과학 기술들이 현재에 가치가 있게 된 것은 우리가 ‘우주’라는 관점을 버리고 ‘현재’라는 관점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현재에 이 우주 기술이 우리에게 어떤 경제적 이익과 실용성을 가지게 될 것인가는 과학 기술자의 고려 대상이 아니라 오롯이 경제인의 관점에 따라 달려있다. (물론 과학 기술자가 이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을 아닐터 이다.)

역설적이게도 미래 기술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기술의 본래 목적을 버려야 새로운 가치가 보인다는 것을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기존 미래 기술은 특정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환경이든, 사람들의 편의든, 어떤 사회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관점에 묶여 있다면 오히려 그 가치에 규정되어 다른 파생적인 이익 효과들은 바랄 수 없다.

그래서 미래 기술은 두 가지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누가 사용하는가?’ 그리고 ‘이 기술을 다른 분야에 응용이 가능한가?’ 두 가지다. 누가 사용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그 소비자의 가치 판단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 질문은 소비자가 전문가일 때 효과가 발생하는 질문이다. 신약 분야의 경우 환자와 의사라는 두 주체를 중심으로 경제적 이익을 고려하게 된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경우 누가 사용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변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술에 사람이 맞춰가는 혁신적인 제품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여러 가지 시장이 형성된 것은 그 제품 자체가 애초에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마트폰은 여러 관점들, 통수신의 관점을 버리고 커뮤니케이션이나 여러 앱과 같은 새로운 관점을 흡수하는 하나의 경제적 장르가 된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이 기술이 해당 분야에만 적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오히려 그 분야에서 떠나면 새로운 ‘신대륙’이 발견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우주 기술처럼 그 분야를 버리고 보면 현재에 쓸모 있는 지점들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미래 기술의 가치 평가에서는 오히려 한 가지 분야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의 효과도 고려해봐야 한다. 그래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경제적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정수 기능을 들 수 있다. 정수 기능이 있는 제품의 타깃은 깨끗한 물을 마시려는 소비자들이다. 그런데 정수 기능을 화학 분야에서도 적용해볼 수 있다. 물론 이때는 어느 정도 과학적 이해를 동반해야 하지만 ‘한 가지의 기능에 한 가지만의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경제인들은 기술에 대한 과학적 이해보다는, 여러 분야에 대한 다층적인 이해가 필요하며, 때로는 내가 하나의 기술적 장르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미래 기술은 숫자 싸움이 아니라 ‘상상력’의 싸움이다. 얼마나 경제인들이 다채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 상상력이 현실적인가?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미래 기술을 판단하는 것이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유휘량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 석사 졸업, 현대문학 현대소설 전공 박사수료

지금까지 시를 꾸준히 써왔고,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부마항쟁기념재단, 숲과나눔재단,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책임자로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으며, 통일인문학단, 통일부, 국방부, 국가인권위원회, 한국정신문화재단 등에서 논문으로 여러 차례 수상을 하였다. KCI에 논문을 다수 게재하였으며, 공저로 <몸의 미래 미래의 몸>이 있다. 현재 한겨레교육에서 문학, 정신분석, 철학 등 문예창작에 필요한 이론들을 강의하고 있으며 2022년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에 시부문 <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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