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 산업2팀장
성현 산업2팀장

[현대경제신문 성현 기자]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기업심사위원회가 18일 신라젠의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1년 8개월 동안 주식거래가 정지 중인 신라젠이 대주주까지 바꾸면서 환골탈태에 나섰으나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4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금융당국이 결론 낸 기업을 상장사로 남겨뒀던 것과는 상반된 처사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얘기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4조5000억원대의 고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지난 2018년 11월 결론을 냈다.

이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주식거래가 정지됐지만 기업심사위원회는 개선기간 부여도 없이 상장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2018년 매출이 5358억원이었던 기업이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를 했음에도 장기간의 심사숙고도 없이 상장을 유지시켜 준 것이다.

이 분식회계는 소송이 2018년 11월 시작됐음에도 2022년이 된 현재까지 아직 1심 판결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공방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당시 한국거래소는 아주 간단하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사 지위를 지켜줬다.

또 검찰이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등 회사 경영진이 47억원을 횡령했다고 기소했지만 기준(자기자본의 5%)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상장폐지 심사도 하지 않았다.

국내 1위 그룹인 삼성의 차세대 먹거리를 책임지는 회사고 대주주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삼성물산이기 때문에 기업 안정성이 뛰어난 게 결정적인 이유가 됐을지는 몰라도 사실상의 '면죄부'였다.

한국거래소가 배임·횡령이나 분식회계 기업에 면죄부를 준 사례는 더 있다.

최근에는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의 20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SKC 주식이 지난해 3월 5일 거래가 중단됐으나 한달도 지나지 않아 매매가 재개됐다.

SKC가 심의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거래소가 결정한 덕분이었다.

아시아나항공도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구속기소돼 지난해 5월 말 주식거래가 정지됐으나 두달이 채 지나기도 전인 7월 중순 거래가 재개됐고 5조원이 넘는 분식회계를 저지른 대우조선해양의 주식도 지금은 아무 탈 없이 거래되고 있다.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2조6000억원대 횡령·배임 등 혐의로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STX의 상장은 결과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반면 신라젠은 개선계획 이행내역서, 전문가 확인서를 제출했고 지난해 7월에는 엠투엔을 새로운 대주주로 모셔오면서 경영정상화에 본격적으로 나서 1000억원을 확보했으나 코스닥시장본부는 비상장사가 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버렸다.

이로 인해 이번 상장폐지 결정은 승자가 없는 게임이 됐다.

문제를 일으킨 문은상 전 신라젠 대표는 이미 회사를 떠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고 신라젠은 새 대주주를 맞이했으나 거래소는 옛 대주주의 잘못을 추궁하기 위해 회사의 노력을 의미 없는 행위로 만들어 버렸다.

기업의 부조리를 엄벌하겠다는 한국거래소의 의지를 보여줘 추가적인 비위를 막겠다는 의미를 담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 SKC, 대우조선해양 등 거대기업의 손을 들어준 과거의 사례에 비해 형평성을 잃었다. 전형적인 '대마불사'다.

비록 한국거래소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을 돕기 위해 규정을 바꿨다는 의혹으로 법원 허가 하에 검찰 압수수색까지 당했지만 특정기업을 편들어주는 곳은 아닐 것이다.

건실한 기업만 거래소에 등록시켜 1000만명이 넘는 주식 투자자들이 피땀 흘려 벌은 투자금을 보호하는 의무를 지닌 한국거래소가 그럴 리 없다.

죄가 있는 기업에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단지 형평성과 실효성이 없는 징계로 회사와 투자자들의 불만만 쌓이게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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